휘는 디스플레이에 군용 방탄복까지… ‘꿈의 그래핀’ 실용화 임박

김진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8-07-20 03:00 수정 2018-07-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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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 ‘그래핀스퀘어’ 대량화 성공… 그래핀 디스플레이 양산 가능
5000개 쌓아 총알도 막을 수 있어… 치매-파킨슨병 치료에도 응용 활발


그래핀으로 휘어지는 곡면 디스플레이를 코팅하면 산소와 수분에 약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그래핀스퀘어 제공
가볍고 유연하면서 철보다 단단하다. 2004년 등장해 꿈의 소재란 별칭을 얻은 벌집 모양의 육각형 2차원 나노탄소물질, 그래핀의 특성이다. 차세대 물질로 각광받았지만 대량생산이 까다로워 산업 현장 등에 활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그 돌파구가 열리고 있다. 최근 국내외 기업과 의료진이 그래핀을 활용하기 위한 기술적 해법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국내 기업인 그래핀스퀘어는 성능 좋은 그래핀 대량생산 공정을 개발해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와 단단한 군용 방탄복 소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래핀스퀘어는 그래핀 대량생산장비 공급을 목표로 2012년 설립됐다.

그래핀스퀘어의 창업자인 홍병희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는 수분과 산소에 약하다”며 “그래핀을 쓰면 수분과 산소로부터 디스플레이를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핀스퀘어는 이렇게 확보한 안정성을 바탕으로, 마치 신문을 찍어내듯 폭 40cm 길이 100m의 평면 그래핀을 대량으로 만드는 기술을 확보했다. 특히 기존 기업의 디스플레이 생산공정 중 사용되는 필름만 그래핀으로 바꾸면 되므로 적용하기도 쉽다. 현재 국내 기업과 성능을 검증 중이며, 검증을 통과할 경우 1∼2년 안에 그래핀 디스플레이가 양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핀스퀘어는 그래핀 기술을 적용한 방탄복을 개발해 지난해 9월 말 미군과 약 6억 원 규모의 납품계약을 체결해 현재 납품 중이다. 그래핀은 여러 겹 쌓으면 두께에 비례해 견고해진다. 그래핀스퀘어는 그래핀을 1000∼5000층 쌓아 총알을 막는 강도의 방탄복을 완성했다.

그래핀을 1000∼5000개 층으로 겹겹이 쌓아 보강재로 사용하면 효과적으로 총알을 막는 방탄복을 만들 수 있다. 그래핀스퀘어 제공
삼성전자는 이달 11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8년 나노코리아에서 ‘그래핀 볼’로 불리는 그래핀 파우더(가루)를 이용해 리튬전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삼성은 그래핀을 리튬전지에 넣으면 용량이 45% 증가하고 충전 및 방전 효율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여러 연구팀이 실험실에서 확보한 기술”이라며 “시장에 적용되려면 현재의 리튬전지 생산 공정을 대체할 만큼의 경제성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 분야에 그래핀을 응용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단백질과 비슷한 크기의 나노물질을 설계해 생체 분자를 조절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그래핀을 이용해 파킨슨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동물실험에서 입증됐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와 서울대 공동 연구팀은 탄소와 산소 비율을 조절해 만든 ‘그래핀 양자점’으로 파킨슨병을 일으키는 노폐물 단백질인 ‘알파-시뉴클레인’의 결합을 막고, 이미 응집된 노폐물은 분해하는 데 성공해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9일자에 발표했다. 그래핀 양자점은 탄소섬유를 황산에 넣고 잘게 부순 뒤 물을 넣은 용액이다. 연구팀이 이를 세포에 주입하자 알파시뉴클레인이 뭉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뭉쳐져 있던 알파시뉴클레인이 풀려서 분해되는 것이 확인됐다.

이 연구는 그동안 한번 진행되면 되돌릴 수 없다고 알려진 치매나 파킨슨병을 치료할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팀은 현재 명확한 생체 내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중이며, 그래핀 양자점의 산소와 탄소 비율을 조절해 치매나 동맥경화 같은 각종 섬유조직화 질병을 치료하는 표적치료제로 개발할 계획이다.
 
김진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tw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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