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인공지능 도입하려면 그 이유부터 분명히 하라

장재웅기자

입력 2018-01-15 03:00 수정 2018-01-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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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뱁슨대 토머스 대븐포트 교수 분석

2013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MD앤더슨 암센터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IBM의 인공지능 시스템 ‘왓슨’을 이용해 특정 형태의 암을 진단하고 치료법을 추천하는 프로젝트다. 비용이 6200만 달러(약 660억 원)나 들어간 이 프로젝트는 2017년 중단됐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기업이나 병원 등 여러 조직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다.

토머스 대븐포트 미국 뱁슨대 경영학과 석좌교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코리아 2018년 1·2월호에서 기업의 야심 찬 인공지능 프로젝트가 왜 자꾸 실패하는지 그 이유를 분석했다. 그리고 현업에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는 데 필요한 4단계 프레임워크도 제시했다.

대븐포트 교수는 먼저 기업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프로세스 자동화, 인지 통찰력 활용, 인지 교류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현재 가장 많이, 성공적으로 활용되는 분야는 프로세스 자동화다. 신용카드 회사의 예를 들면, 고객이 카드를 분실해서 재발급을 해줄 때 일일이 직원의 손으로 작업하는 대신, 자동화 프로그램이 분실과 재발급, 고객관리에 관련된 여러 시스템에 접속해 일괄 처리하는 식이다.

두 번째로 인지 통찰력을 활용하는 방식이 있다. 알고리즘을 사용해 방대한 데이터에서 패턴을 도출하고 의미를 짚어내는 것으로, 흔히 머신러닝 방식이라고도 불린다. 이런 기술을 이용하면 고객이 무엇을 구매할지 예측하고 그에 따라 온라인상에서 개인 맞춤형 광고를 보여줄 수 있다. 또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낭비를 줄일 수도 있다. GE는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협력업체 거래 데이터를 분석했다. 예전에 과거 각 사업부 단위로 관리하느라 중복되곤 했던 계약들을 찾아서 없앨 수 있었고 도입 첫해에 8000만 달러(약 850억 원)를 절약했다.

세 번째로 인지 교류에 활용하는 방식이 있다. 사람의 말과 글을 알아듣고 자연스럽게 대응할 수 있는 챗봇, 지능형 에이전트 등이 그 예다. 미국의 뮤추얼펀드 운영사인 뱅가드는 고객 서비스 담당자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쓰도록 하고 있다. 고객들이 자주 묻는 질문을 처리할 때 우선 자동화된 시스템에 맡기고, 해결이 안 될 때만 직원이 직접 개입하는 것이다. 스웨덴 최대 은행인 SEB은 여성의 모습을 한 인공지능 온라인 아바타 ‘아멜리아’를 사내의 안내 데스크에서 이용하고 있다.


○ 데이터 과학자 영입이 우선

연구팀에 따르면 기업에서 진행하는 인공지능 기술 적용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담당자가 인공지능 기술을 제대로 이해 못한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처한 상황에 맞지 않는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하려다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 이를 막기 위해서 연구팀은 먼저 인공지능 기술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인공지능을 이해하는 데 필수인 통계학 지식이나 빅데이터 기술을 가진 전문 인력, 즉 데이터과학자를 적극 영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반 기술을 이해한 이후에는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인공지능을 도입하려는 이유, 그리고 현재 우리 회사의 역량을 냉정하게 평가해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이는 다시 기회 파악, 활용사례 확인, 기술 선택의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 기회 파악 단계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응용해 가장 큰 이득을 낼 수 있는 영역을 선정해야 한다. 두 번째 활용사례 확인 단계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큰 가치를 창출한 실제 활용사례들을 검토한다. 마지막, 기술 선택 단계에서는 적용하려는 인공지능 기술이 해당 업무에 적합한지 검증하는 단계다. 아무리 훌륭한 인공지능 기술이라도 지금 당장은 여러 가지 현실적 제한조건으로 특정 업무에는 도입하기 어렵거나 아직 큰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공지능을 도입할 업무 분야의 우선순위가 정해진 후에는 반드시 일부 부서에서 시범 운영을 해봐야 한다. 우리 회사는 무엇을 원하고 인공지능은 무얼 할 수 있는지가 언제나 명확하지는 않기 때문에 실제로 테스트를 해서 효과를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다.

시범 운영에서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이를 어떻게 전사적으로 확장시킬 것인지, 즉 ‘스케일업’을 고민해야 한다. 스케일업 단계에서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업무 시스템 및 프로세스와 새로운 인공지능 기술이 통합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연구팀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글로벌 기업 임원들은 인공지능 이니셔티브를 진행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이 통합 과정을 꼽았다. 기술 담당자와 비즈니스 담당자의 협업이 꼭 필요한 부분이다.


○ 직원의 위기감도 고려해야

통합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내부 반발을 겪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반 직원 입장에서는 인공지능이 업무에 도움이 되기는 해도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가치를 위협하는 존재로 느껴질 수 있다.

미국의 한 의류 소매업체는 일부 지점에서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시범 운영했다. 온라인 상에서의 제품 추천, 재고 관리 최적화를 위한 예측, 빠른 제품 보급 프로세스 구축, 상품 기획 등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했다. 그러자 매장 바이어들이 반발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경험과 직관을 이용해 상품을 주문하고 재고를 관리해왔는데, 같은 일을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등장하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인공지능 시스템의 시범 운영기간이 끝나자 바이어들은 본사 경영진에게 이 프로그램을 없애라고 항의했다. 그러나 경영진은 좋은 성과가 검증된 이상 중단할 수는 없다며 원래 계획대로 프로젝트를 모든 지점으로 확장하기로 했다.

결국 인공지능 기술 도입으로 운영 효율성은 향상시켰지만 내부 반발을 잠재우고 직원에게 새로운 작업 방식을 교육하는 데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다. 일감이 없어진 바이어들에게는 ‘젊은 세대 소비 트렌드 알아내기’ 등 아직 사람이 기계보다 잘하는 일을 맡기기로 했다.

인공지능 기술 도입에 애를 먹는 기업이 많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기업의 업무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것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인공지능 기술은 대량 실업의 공포를 불러온다. 인간이 했던 업무를 똑똑한 기계가 대신하면서 일자리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임은 자명하다.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 대븐포트 교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인간의 일자리 모두를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며 인간과 인공지능이 상호 보완하는 방식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앞으로 기업의 인공지능 기술 도입도 인간 직원을 도와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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