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최저임금 위반 月 176건으로 늘어… ‘범법 사업주 양산’ 현실로

유성열 기자 , 조소진 인턴기자

입력 2018-08-22 03:00 수정 2018-08-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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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재난]청년층 임금체불 올해 898억원

취업준비생 김모 씨(26·여)가 일하는 카페는 서울의 한 대학가에 있다. 김 씨의 시급은 8000원. “최저임금만큼은 지켜주겠다”는 고마운 사장 밑에서 일한다.

하지만 방학이 되자 사장의 태도가 바뀌었다. 학기 중에는 하루 평균 매출이 100만 원 수준이지만 방학 때는 매출이 30%가량 줄어들었다. 특히 올해 최저임금(7530원)이 지난해보다 16.4%나 올라 인건비 부담이 급증했다. 사장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생들을 상대로 ‘꺾기’를 시작했다. 근무 중 1시간을 무조건 쉬라고 하거나 1시간 일찍 퇴근시켜 이 시간만큼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이다.

꺾기는 엄연한 불법이다. 노동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이 업주는 임금체불 혐의로 처벌을 받는다. 특히 김 씨는 주휴수당(근로자가 일주일 개근할 때마다 지급해야 하는 유급휴일수당)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김 씨는 “최저임금을 지켜주는 것은 고맙지만, 꺾기로 임금을 깎는 건 참을 수 없다”며 “노동청에 신고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영세사업장에서 임금체불 집중

올해 1∼7월 청년층(15∼29세) 임금체불이 898억4300만 원으로 사상 최대로 급증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세사업주들의 ‘지불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일자리를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취약계층의 임금체불과 이로 인해 영세사업주가 범법자로 전락하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근로기준법상 임금체불로 기소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실제 대다수의 임금체불은 영세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1∼7월 임금체불을 신고한 청년 3만9907명 가운데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 청년은 83.4%(3만3270명)에 이른다.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823명에 그쳤다. 같은 기간 업종별 임금체불 신고액은 제조업이 282억6200만 원으로 가장 많지만, 신고자 수로 보면 도소매·음식숙박업이 1만5905명(230억7000만 원)으로 가장 많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세사업주들은 지불능력을 잃고, 청년들은 임금체불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이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직원 1명을 고용해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정모 씨(47)는 “우리라고 법대로 월급을 주고 싶지 않겠느냐”며 “경기 자체가 침체된 상황에서 세무조사 면제나 일자리 안정자금과 같은 근시안 정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임금체불 문제는 청년을 넘어 전 연령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1∼7월 전체 연령층의 임금체불은 9992억8700만 원으로 이미 1조 원에 육박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사상 최대였던 2016년 기록(1조4286억3100만 원)을 가뿐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 영세사업주 대거 범법자 되나

임금체불이 급증하는 만큼 처벌받는 영세사업주도 급증하고 있다. 올해 1∼7월 최저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 고용노동부에 적발된 사업장은 1233곳에 이른다. 이 추세대로라면 역대 최대인 2016년 단속 건수(2058건)를 넘어설 것이 유력하다. 월평균 단속 건수는 올해 176건으로 이미 2016년(172건)을 넘어섰다. 최저임금 위반도 임금체불이기 때문에 적발되면 덜 준 임금을 더 줘야 한다.

특히 소상공인연합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 오른 8350원으로 확정되자 최저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불복종운동’에 들어갔다. 앞으로 단속건수가 크게 늘어나고 영세사업주들이 대거 범법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이런 와중에 고용부와 국회는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업주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임금체불 사업주만 1년에 한 번 이름을 공개하지만, 앞으로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도 함께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악의적, 상습적으로 위반한 사업주만 공개하려는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지만 정부가 소상공인들을 벼랑 끝으로 더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이 모든 걸 설명하진 않지만 최저임금이 현재의 노동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 것은 사실”이라며 “통계가 주는 ‘경고’를 정부가 잘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조소진 인턴기자 고려대 북한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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