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애환 서린 남대문시장 120년

김상운 기자

입력 2017-04-24 03:00 수정 2017-04-2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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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1897년 선혜청 창내장 개설 효시… 광복 후엔 ‘도깨비시장’으로 명성


이탈리아 외교관 카를로 로세티가 1900년대 초반 숭례문 근처에서 촬영한 ‘선혜청 창내장’. 창내장은 현 남대문시장의 뿌리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초립(草笠)이나 삿갓을 쓴 상인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각종 곡식을 팔고 있다. 짐꾼과 상인, 손님들이 뒤엉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뒤쪽으로는 쌀부대를 차곡차곡 쌓아둔 기와 건물이 살짝 보인다.

서울 남대문시장의 전신으로 조선 말기인 1897년 개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상설시장 ‘선혜청(宣惠廳) 창내장(倉內場)’을 촬영한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 중심부에 자리 잡은 남대문시장은 늘 인파로 붐볐다. 현재 남대문시장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약 40만 명. 1만 개 점포에서 1700종의 상품을 팔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올해 남대문시장 개장 120주년을 맞아 남대문시장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한 특별전을 열고 있다. 창내장이 생기기 전 남대문(숭례문) 부근에선 아침시장(조시·朝市)과 도성 밖 칠패(七牌)시장이 열렸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상인들이 남대문시장을 인수한 중앙물산의 횡포에 맞서 상인연합회를 구성했다. 광복 이후에도 6·25전쟁과 잇단 화재로 남대문시장은 평탄치 않은 세월을 겪었다. 휴전 직후 남대문시장은 미군 군수품이 활발히 거래돼 ‘양키시장’ ‘도깨비시장’으로 유명해졌다. 1980년대 들어 이른바 ‘남싸롱’ 또는 ‘남문패션’으로 불린 숙녀복이 핵심 품목으로 부상했다.

박물관은 1908년 조선시대 선혜청을 측량한 뒤 그린 선혜청건물지도(宣惠廳建物之圖) 등 유물 120건을 선보인다. 특히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거래된 상품 120가지를 선별해 시대순으로 전시하고 있다. 조선 상인들이 실제 사용한 주판과 되 등을 살펴볼 수 있다. 7월 2일까지. 02-724-0274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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