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유혹하는 디자인… 명품 안경 판 뒤집는다

손택균 기자

입력 2020-01-09 03:00 수정 2020-01-0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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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사동 안경소매점 ‘리웍스120’

‘리웍스120’ 이승현 대표, 김태균 이사, 장기문 안경사(왼쪽부터)가 커틀러&그로스 0772 모델을 보고 있다. 수공 명품안경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한국에서 특정 브랜드 컬렉션 독점 유통으로 승부수를 던진 리웍스는 골목 모퉁이에 숨은 듯한 출입구(왼쪽 사진)를 열고 안경테 마니아들을 기다린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세계 최신 안경 디자인의 흐름은 매년 이탈리아 밀라노와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안경 디자인 엑스포에서 파악할 수 있다. 공개 부스를 차린 군소 제조업체들과 달리, 수공 명품 제작자들은 두툼한 칸막이를 두른 부스에서 예약제로 각 나라 유통업자들을 만난다.

그 폐쇄부스 중 하나인 영국 명품 안경업체 ‘커틀러&그로스’에 6년 전 업계 신인이었던 이승현 씨(35)가 문을 두드렸다. 커틀러는 영화 ‘킹스맨’으로 국내에도 마니아 소비자들을 확보한 브랜드다. 한국 중견 판매업체들의 제안을 거절해온 커틀러와 독점 계약에 성공한 이 씨는 지난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안경소매점 ‘리웍스120’을 열었다.

“기업 경영인, 유명 연예인의 단골 안경점은 한두 곳으로 굳어 있다. 그 ‘판’을 변모(rework)시키려면 확 차별되는 시도가 필요했다. 국내에는 ‘여러 브랜드와 디자인의 제품을 소량씩 두루 구비한 안경점’만 존재해 왔다. 안경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브랜드 컬렉션을 완비한 ‘플래그십 스토어’를 내겠다는 제안을 커틀러가 받아들였다. 평생 안경 유통을 해 오신 아버지가 다행히 지지해 주셨다.”

주택가 좁은 골목의 빌라를 개축한 아담한 상업건물에 자리 잡은 것도 ‘지나치다 들른 손님’보다 ‘찾아오는 손님’을 우선시하는 커틀러의 전략을 가져온 선택이다. 눈에 띄지 않게 숨겨진 듯한 스타일로 매장 전면을 단정하게 절제해 디자인했다.

소박한 외관과 대조적인 ‘킹스맨’ 양복점 내부처럼 문 안쪽은 별세계다. 경쾌한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이 울리는 1층 창가에서 안경사(점장) 장기문 씨가 원두커피를 내리며 손님을 맞는다. 온라인으로 예약하고 방문하면 커피 향을 즐기며 여유롭게 맞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리웍스의 핵심 공간은 2층에 있다. 사무공간 앞 별실에 커틀러 테만 따로 배치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말하며 콜린 퍼스가 고쳐 쓰던 아세테이트 테의 다양한 모델을 만날 수 있다. 2, 3년 전만 해도 거북 등갑, 물소 뿔 등 희귀 재료 테들이 주요 고가 제품이었지만, 요즘은 아세테이트 테 가격도 디자인 정밀도에 따라 100만 원을 웃도는 경우가 허다하다.

장 안경사는 “최신 디자인 정보를 확인해 원하는 스타일의 명품 안경테를 구매하는 20, 30대 소비자가 부쩍 늘었다. 정보력이 워낙 뛰어나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손님보다 뒤처진다”고 말했다. 금속 테는 독일의 ‘하프만&뉴마이스터’ 제품을 역시 국내 독점 유통하며 매장에서 판매한다. 하프만은 얇은 스테인리스 강판을 레이저로 재단한 간결미 넘치는 일체형 테로 널리 알려진 수공업체다.

이승현 대표는 “안경 디자인 유행은 돌고 돈다. 지난해부터 유행한 굵직한 뿔테는 1960년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스타일의 반복”이라고 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레스카 뤼네티에’는 20세기 중반에 배우, 건축가, 작가들이 애용했던 모델을 미묘한 디테일 변화만 주고 복각해 내놓았다. 60여 년 전 만들어둔 부품을 모아 조립한 오리지널 제품을 찾는 이도 적잖다.

리웍스는 스스로를 알리는 길도 ‘전에 없던 방식’을 택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일본 인기 패션 브랜드 ‘레졸루트’의 창업자 겸 디자이너 하야시 요시유키의 트렁크쇼를 열었다. ‘데님청바지 장인’으로 불리는 노(老)디자이너가 손수 방문객들의 바짓단을 조절해 줬다. 2월에는 벨기에를 대표하는 안경 브랜드 ‘테오’의 믹 소머스 대표가 시즌 트렁크쇼를 진행한다. 김태균 마케팅이사(34)는 “새로움이 아닌 ‘다름’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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