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자리 코세페” 업계 반발에…한 발 물러선 공정위

뉴시스

입력 2019-10-31 10:02 수정 2019-10-3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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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약매입 지침'서 "백화점, 가격할인분도 50% 이상 비용 내라"
코세페 위축 우려 나오자…산업부가 공정위에 업계 요구 전해
공정위, 내년 1월1일로 적용시점 미루기로…세부내용도 조정



코리아세일페스타(코세페)가 ‘반쪽짜리’가 될 것이란 논란 끝에 공정거래위원회가 결국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대형유통업체가 세일 등 판매촉진행사를 할 때 관련 비용의 절반 이상을 납품업체에게 떠넘기지 못하도록 하는 공정위 심사 지침에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다.

공정위는 31일 ‘대규모 유통업 분야의 특약매입거래에 관한 부당성 심사지침(특약매입 지침)’을 제정해 시행한다면서도 세부 내용은 기업의 준비기간을 고려해 내년 1월1일부터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공정위는 제정과 동시에 적용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장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되는 코세페가 흥행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까지 등장하자 결국 적용 시기를 뒤로 미룬 셈이다. 여기에 세부 내용도 업계 건의를 수용해 일부 조정이 이뤄졌다.

공정위의 결정에는 업계 반발 외에 산업통상자원부의 설득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정위 관계자는 “코리아세일페스타 참여 위축에 대한 업계의 우려를 산업부가 전달하는 등에 따라 시행 시기를 연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특약매입이란 대형유통업체가 반품 조건부로 상품을 외상 매입해 판매하고, 판매수수료를 공제한 상품대금을 입점업체에 지급하는 거래 방식이다. 백화점의 경우 매출액 중 72%가 이같은 특약매입 거래를 통해 발생한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대규모유통업자가 입점업체들에게 가격 할인 행사 참여를 강요하면서 자신이 부담해야 할 판촉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 공정위의 시각이다. 특히 행사를 원하지 않는 입점업체들에게는 매장 임대에 불이익을 준다거나 하는 수법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런 ‘갑질’ 관행을 끊어내기 위해 공정위는 2014년 특약매입 지침을 마련했고, 지난 30일자로 이 지침의 존속 기한이 만료되자 이번에 다시 제정하게 된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공정위가 새 지침을 통해 대형유통업체가 최소 50% 이상의 비용을 부담토록 하는 원칙을 ‘가격할인분’에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예를들어 백화점은 물건값의 30%를 판매수수료로 가져가고, 할인 행사 땐 28%를 떼어 간다. 할인 행사로 판매가가 낮아지는 만큼 백화점도 입점업체에게 판매수수료를 덜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정상가 1만원짜리 상품을 할인 행사를 통해 8000원으로 판매하는 경우 할인분 2000원의 50% 이상을 유통업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려면 유통업체는 판매수수료율을 25% 이하까지 낮춰야 한다.

백화점 등 업계는 반발하며 코세페 보이콧 주장까지 등장했다. 할인 폭이 커질수록 판매수수료율을 낮춰야 하니 “차라리 세일을 안 하겠다”는 불만이다. 이런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도리어 공정위의 정책이 세일 폭을 줄여 소비자 후생을 깎아먹는 게 아니냔 목소리도 나왔다.

여론을 의식해 결국 뒤로 물러난 모양새가 됐지만 공정위는 유통업계의 갑을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이같은 정책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장 눈 앞의 코세페에는 악영향이 있을지라도 입점업체와 백화점간 공정한 판촉비 부담 원칙이 자리를 잡으면 중장기적으로 더 활발한 세일 행사가 이뤄질 것이란 논리다.

고병희 공정위 유통정책관은 30일 기자들과 만나 “입점업체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세일폭을 정하고 이것을 백화점이 세일 효과를 증진시키는 형태로 상호협의가 잘 된다면 오히려 세일폭도 증가하고 소비자 판매기회도 더 늘어나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한편 새 지침에선 이같은 ‘판촉비 50% 이상 부담’ 원칙에서 예외가 인정되는 ‘자발성’, ‘차별성’ 요건도 깐깐해졌다. 자발성·차별성 요건이란 입점업체들이 스스로 세일 행사를 원하는 경우나 특정 입점업체에게만 차별적인 할인행사가 기획된 경우로, 이땐 꼭 유통업체들이 50%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새 지침은 단순히 입점업체의 요청 공문이 있는 것만으로는 자발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실제론 강제로 할인 행사에 동원해놓고 마치 입점업체가 자발적으로 원했던 것처럼 보이는 공문을 받아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 정책관은 “나중에 가면 입점업체는 ‘(백화점이) 보내라 해서 어쩔 수 없이 보낸 것’이라고 말한다”며 “또 세일 품목이나 할인율을 두고 백화점이 입점업체로부터 사전에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동의하지 않으면 페널티가 올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대신 거꾸로 백화점이 먼저 행사를 기획했다는 사실만으로 자발성이 없는 것으로 단정하지도 않기로 했다. 고 정책관은 “행정예고 이후 업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차별성 요건의 경우 판촉행사위 경위나 목적, 진행과정,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행사를 진행한 입점업체가 다른 업체와 구분될 수 있는 경우에만 인정토록 강화됐다.

공정위는 “앞으로 동 지침 내용에 대해 업계 홍보·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서면실태조사 등을 통해 판촉비 분담실태를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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