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물림 사고는 생존 위협하는 사건… 천천히 자신감 회복해야
홍은심 기자
입력 2019-08-14 03:00 수정 2019-08-14 03:00
[홍은심 기자의 낯선 바람]트라우마
이번엔 기자 이야기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곳은 넓은 마당을 가진 주택들이 모여 있는 조용한 동네였다.
기자가 대여섯 살 때쯤 일이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유치원을 다녔다.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개 한 마리를 키우는 집이 있었다.
개는 대부분 목줄에 묶여서 대문 아래 틈으로 입만 겨우 빼놓고 조용히 누워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도 짖지 않고 그저 심드렁하게 눈동자만 위아래로 움직일 뿐이었다.
나는 조용한 그 개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매일 대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다. 가끔 내가 혼잣말을 하다 지치면 손을 뻗어 개의 입을 쓰다듬기도 했다. 그때도 개는 거의 미동 없이 심지어 귀찮은 듯 무심하게 코를 좌우로 움직일 뿐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그 집으로 향했다. 대문 앞에 도착. 그런데 뭔가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다. 개는 보이지 않고 닫혀 있던 대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나는 열린 문을 밀고 개가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곧 마당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개를 발견했다.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다. 그동안 한 번도 그렇게 몸을 모두 일으키고 서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항상 문틈으로 봐서 개가 그렇게 큰 줄도 몰랐다. 개도 동공이 커질 대로 커진 나를 발견했다. 개와 눈이 마주친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집으로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목줄이 풀린 개는 대문 밖으로 뛰어나와 나를 쫓기 시작했다.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는 개가 너무 무서워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 소리에 더 흥분한 개는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나와 개의 쫓고 쫓김은 100m가량 이어졌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조용한 동네라 아무리 소리쳐도 주변에 도와 줄 어른은 보이질 않았다.
다리도 짧고 평소 달리기도 많이 해보지 않은 내가 건장한 개를 상대로 이길 수는 없었다. 곧 나의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개는 나의 무릎 뒤쪽을 힘껏 물었다. 절규에 가까운 어린아이 비명에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뛰어나오셨고 개는 그제야 나에게서 떨어졌다.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가 나자 지나가던 행인 몇 분이 다가왔다. 멀리 엄마가 달려오는 것도 보였다. 엄마는 정신없이 나를 들쳐 업고 어디론가 뛰었다. 그 뒤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빨리 병원으로 옮기라고 소리쳤고 다른 누군가는 개를 붙잡고 소리쳤다. 그 와중에 슈퍼마켓 아주머니는 상처에 된장을 발라야 한다며 가게로 뛰어들어 가셨던 것이 기억난다. 내 울음소리와 어른들이 놀라서 지르는 소리들이 섞이고 나는 점점 정신을 잃어갔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개만 보면 식은땀이 났다. 중학교 때는 집 앞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개 때문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세 시간 넘게 방황한 적도 있다.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에 개가 있으면 먼 길을 돌아서 가야만 했다. 친구들이 강아지를 보며 귀엽다고 만지고 할 때도 나는 멀찌막이 떨어져 보기만 했다.
하지만 밖을 활보하는 개는 너무나 많다. 매번 이렇게 개를 피해 다닐 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새끼 시추 한 마리를 안고 집에 왔다. 친구 집에서 분양받았다며 귀엽지 않으냐고 호들갑이다. 한참을 신발장 앞에서 들어가기를 망설이던 나는 마침내 정면 승부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갓 태어난 강아지를 한참 지켜봤다. 다리도 작고 아직 이빨도 없는 거 같다. 용기를 내서 강아지 털에 손가락 몇 개를 대어본다. 기분이 이상했다. 떨리기도 했고 간질거리는 느낌도 생소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이번엔 기자 이야기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곳은 넓은 마당을 가진 주택들이 모여 있는 조용한 동네였다.
기자가 대여섯 살 때쯤 일이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유치원을 다녔다.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개 한 마리를 키우는 집이 있었다.
개는 대부분 목줄에 묶여서 대문 아래 틈으로 입만 겨우 빼놓고 조용히 누워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도 짖지 않고 그저 심드렁하게 눈동자만 위아래로 움직일 뿐이었다.
나는 조용한 그 개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매일 대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다. 가끔 내가 혼잣말을 하다 지치면 손을 뻗어 개의 입을 쓰다듬기도 했다. 그때도 개는 거의 미동 없이 심지어 귀찮은 듯 무심하게 코를 좌우로 움직일 뿐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그 집으로 향했다. 대문 앞에 도착. 그런데 뭔가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다. 개는 보이지 않고 닫혀 있던 대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나는 열린 문을 밀고 개가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곧 마당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개를 발견했다.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다. 그동안 한 번도 그렇게 몸을 모두 일으키고 서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항상 문틈으로 봐서 개가 그렇게 큰 줄도 몰랐다. 개도 동공이 커질 대로 커진 나를 발견했다. 개와 눈이 마주친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집으로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목줄이 풀린 개는 대문 밖으로 뛰어나와 나를 쫓기 시작했다.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는 개가 너무 무서워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 소리에 더 흥분한 개는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나와 개의 쫓고 쫓김은 100m가량 이어졌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조용한 동네라 아무리 소리쳐도 주변에 도와 줄 어른은 보이질 않았다.
다리도 짧고 평소 달리기도 많이 해보지 않은 내가 건장한 개를 상대로 이길 수는 없었다. 곧 나의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개는 나의 무릎 뒤쪽을 힘껏 물었다. 절규에 가까운 어린아이 비명에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뛰어나오셨고 개는 그제야 나에게서 떨어졌다.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가 나자 지나가던 행인 몇 분이 다가왔다. 멀리 엄마가 달려오는 것도 보였다. 엄마는 정신없이 나를 들쳐 업고 어디론가 뛰었다. 그 뒤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빨리 병원으로 옮기라고 소리쳤고 다른 누군가는 개를 붙잡고 소리쳤다. 그 와중에 슈퍼마켓 아주머니는 상처에 된장을 발라야 한다며 가게로 뛰어들어 가셨던 것이 기억난다. 내 울음소리와 어른들이 놀라서 지르는 소리들이 섞이고 나는 점점 정신을 잃어갔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개만 보면 식은땀이 났다. 중학교 때는 집 앞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개 때문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세 시간 넘게 방황한 적도 있다.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에 개가 있으면 먼 길을 돌아서 가야만 했다. 친구들이 강아지를 보며 귀엽다고 만지고 할 때도 나는 멀찌막이 떨어져 보기만 했다.
하지만 밖을 활보하는 개는 너무나 많다. 매번 이렇게 개를 피해 다닐 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새끼 시추 한 마리를 안고 집에 왔다. 친구 집에서 분양받았다며 귀엽지 않으냐고 호들갑이다. 한참을 신발장 앞에서 들어가기를 망설이던 나는 마침내 정면 승부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갓 태어난 강아지를 한참 지켜봤다. 다리도 작고 아직 이빨도 없는 거 같다. 용기를 내서 강아지 털에 손가락 몇 개를 대어본다. 기분이 이상했다. 떨리기도 했고 간질거리는 느낌도 생소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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