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신, 마세라티의 트라이던트로 지상을 질주하다

강홍구기자

입력 2019-05-30 03:00 수정 2019-05-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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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ERATI STORY

지난해 ‘마세라티’는 국내에서 총 1660대 팔렸다. 전년(980대) 대비 70%가량 판매량이 늘었다. 하이 퍼포먼스 럭셔리 세단 마세라티의 판매가 이처럼 가파른 상승세를 탄 이유는 소비자들이 마세라티 특유의 매력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그 배경에는 105년 전통의 브랜드 스토리와 역사가 뒷받침하는 성능, 이탈리아 감성의 인테리어가 있다.

여섯 형제의 손에서 시작된 105년 전통

마세라티의 시작은 105년 전인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세라티가(家)의 여섯 형제 중 넷째이자 유명 레이싱 드라이버, 기술자였던 알피에리가 주축이 돼 이탈리아 볼로냐에 사무실을 열었다. 당시 업체 이름은 ‘오피치네 알피에리 마세라티’였다. 알피에리는 형제들과 함께 레이싱카를 주문 제작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꾸렸다. 1926년 자체 제작에 성공한 마세라티는 ‘티포 26’을 처음으로 출시했다.

마세라티의 상징인 엠블럼 제작에는 형제 중 유일하게 자동차 전문가가 아닌 예술가로 활동했던 다섯째 마리오가 실력을 발휘했다. 볼로냐 마조레 광장의 넵투누스(바다의 신 포세이돈) 조각상의 삼지창에서 모티브를 얻어 마세라티 특유의 트라이던트(삼지창) 엠블럼을 만들었다. 바다 신의 강인함과 활력을 상징하는 이 엠블럼은 모든 경주용 자동차에 적용됐다.

마세라티는 1937년 오르시 가문에 인수되며 본사를 볼로냐에서 모데나로 옮긴다. 양산차 제작을 시작하면서 1947년 ‘레이싱용 엔진을 탑재한 승용차’라는 콘셉트로 ‘A6 1500’을 출시했다. 현 ‘그란투리스모’의 기본 모델이다. 창업주인 알피에리의 이름 앞글자 A와 6기통 엔진의 6을 의미하는 A6 1500은 일반 도로용 모델로 성공을 거뒀다.

마세라티가 형제들(위사진 )과 알피에리 마세라티.
1960년대부터는 8기통 엔진 모델 개발에 전념했다. 미개척 분야였던 럭셔리 스포츠 세단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1963년에는 첫 번째 4도어 세단 ‘콰트로포르테’를, 1966년에는 이탈리아의 대표 카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손잡고 ‘기블리’를 선보였다. ‘보라’, ‘바이터보’ 등도 출시했다.

시트로엥, 피아트를 거쳐 1997년 피아트 계열사 페라리에 소유권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본격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공장에 현대식 설비를 갖추고 종전의 각진 디자인도 곡선 디자인으로 변화를 꾀했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라이벌 관계였던 페라리와의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그 결과 페라리의 V8 엔진을 장착한 ‘3200GT’를 선보이기도 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탑승한 3세대 콰트로포르테(위사진), F1경기에서 이름을 날린 마세라티 250F.
2003년 선보인 5세대 콰트로포르테와 2007년 2도어 4시트 쿠페 그란투리스모는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모델 모두 스포츠카 디자인의 대부로 꼽히는 세르지오 피린파리나의 작품이다. 마세라티는 이후에도 브랜드 최초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르반테 GTS와 르반테 트로페오를 잇따라 출시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레이싱 대회를 휩쓴 고성능 혈통

마라넬로의 페라리 공장에서는 수작업으로 만든 마세라티 전용 V6, V8 엔진을 장착한 고성능 모델을 생산한다. 차량 앞 뒤 무게를 50 대 50으로 정교하게 배분할 뿐 아니라 동급 차량 대비 가장 적은 무게를 구현해 역동적이면서 정교한 핸들링을 발휘한다. 앞차축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 엔진을 프런트 오버행 가장 뒤편에 배치하기도 했다. 서스펜션은 전륜에 더블 위시본, 후륜에 멀티링크 레이아웃을 활용해 온·오프로드를 가리지 않고 강력한 주행 성능과 조종안정성을 보장한다.

지금의 고성능 기술력을 선점하기 위해 마세라티는 설립 초기 모터스포츠 부문에 전념했다. 창립자 알피에리는 1926년 회사가 처음 생산한 티포 26으로 타르가 플로리오 대회에서 우승하며 주목을 받았다. 1929년에는 16기통 초대형 엔진을 장착한 V4가 이탈리안 그랑프리에서 최고속도 시속 246.069km로 세계기록을 세우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50년대에는 아르헨티나 출신 드라이버 후안 마뉴엘 판지오와 만나 황금기를 보냈다. 1953년 마세라티 레이싱팀에 합류한 판지오는 마세라티 250F로 1954년 아르헨티나,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등 총 51회의 그랑프리에서 24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23개의 챔피언십과 32개의 F1 그랑프리 등 총 500여회의 우승 신화를 써내려간 마세라티는 1957년을 끝으로 레이싱 대회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이탈리아 장인의 감성이 깃든 인테리어

내부 장식에 쓰인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최상급 원단.
마세라티의 인테리어 하나하나에도 이탈리아 장인의 감성이 깃들었다. 인테리어에 사용하는 가죽은 최고급 이탈리아 가죽 브랜드 ‘폴트로나 프라우’의 제품이다. 창조적이고 탁월한 작품을 추구한다는 신념이 두 브랜드의 손을 맞잡게 했다.

폴트로나 프라우의 탁월한 품질은 특유의 가죽처리 공정에서 시작한다. 차량 내장에 사용하는 가죽 마감재의 경우 시뮬레이션을 통해 특정 활용기준에 적합한지 측정한다. 특허제품 펠레 프라우는 약 20단계의 태닝 공정을 거칠 정도다. 그 과정에서 가죽의 탄성과 강도가 증가해 더욱 안락한 승차감을 제공한다. 특히 겨울에는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을 준다.

시트에 선택 적용되는 피에노 피오레 최상급 천연 가죽.
2019년식 전 모델에 선택 가능한 ‘피에노 피오레’는 마세라티만을 위해 제작되는 최상급 천연 가죽이다. 북유럽 지역 황소 가죽을 활용한 이 제품은 일반 가죽 대비 제작 기간이 20% 더 걸리는 만큼 내구성과 촉감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다.

실내에는 이탈리아의 유명 럭셔리 남성복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최상급 원단을 사용했다. 최고의 안목과 디테일을 중시하는 고객들을 위해서다. 100% 천연 섬유 멀버리 실크 소재를 도어 패널, 차량 천장 라이닝, 차양 및 천장 조명기구 등의 내장재에 적용해 럭셔리 브랜드의 가치를 높였다. 다양한 테스트를 거쳐 완성하는 제냐 실크는 통기성이 뛰어나다. 특수 코팅을 입혀 마모를 최소화하고 얼룩을 철저하게 방지한다. 패셔너블한 컬러 마감과 핸드 메이드로 마감한 스티치 역시 이탈리아 장인 정신의 정수를 보여준다.


명품 바이올린을 닮은 엔진음

마세라티의 V8엔진. 강렬하고 단단한 예술적 사운드를 낸다.
마세라티 브랜드의 힘은 성능을 넘어 소리로까지 이어진다. 섬세하면서도 묵직한 마세라티의 엔진음은 예술적 가치를 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마세라티는 본사 엔진사운드 디자인 엔지니어에 튜닝 전문가, 피아니스트, 작곡가 등을 초빙해 악보를 그려가며 소리를 조율한다. 이때 실제 ‘작곡한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각별히 공을 들인다.

마세라티 고유의 엔진음은 20세기 최고의 테너라는 평가를 받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와도 인연이 깊다. 마세라티의 본사가 있는 모데나는 파바로티의 고향이기도 하다. 마세라티 본사에 방문해 예술적인 사운드가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봤던 파바로티는 1963년 세브링을 구입한 고객이기도 하다. 당시 사람들은 “마세라티 엔진음의 치솟는 고음파트가 파바로티의 강렬하면서도 단단한 음색을 떠올리게 했다”고 평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한 마세라티의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2012년 9월에는 일본 시즈오카에 있는 사운드디자인라보합동회사, 주오대 음향시스템 연구실과 함께 ‘엔진음 쾌적화 프로젝트’ 실험을 진행했다. 콰트로포르테의 엔진음과 5가지 바이올린의 소리를 들려준 뒤 피실험자의 심박 수, 혈류량 등을 측정해 어떤 악기와 비슷한 반응을 이끌어내는지를 확인해보는 실험이다. 콰트로포르테의 엔진음은 세계적인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비슷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소음으로 여겨지는 소리마저 도로 위의 감미로운 예술품으로 만들어내는 마세라티의 자부심이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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