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건당 16분 검토… 지자체 현금복지 눈감고 통과시킨 정부

동아일보

입력 2019-05-03 00:00 수정 2019-05-0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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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 간 현금복지 경쟁이 불붙어 나라 곳간을 다 태울 기세인데 정부의 제동장치가 마비된 상태다. 지난해 연간 예산 10억 원 이상 지자체 현금복지 사업 36건이 정부와 협의를 마치고 신설됐는데 이 중 11건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 전문가 검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나마 사업 1건당 검토시간은 평균 16분에 불과했고, 회의록도 남기지 않았다. 졸속 심사로 사업 시행 이후 예산이 폭증한 사업도 있었다. 지자체가 복지제도를 신설·변경하려면 기존 제도와 중복되지 않는지 정부와 협의를 거치는데, 이 협의를 위한 심사가 ‘엉터리’였다는 것이다.

정부가 손을 놓은 사이 이름만 바꾼 지자체의 현금복지 제도가 남발되고 있다. 강원 출산장려수당과 충남 아기수당은 정부가 시행 중인 아동수당과 상당 부분 중복되지만 정부는 이를 허용했다. 복지제도는 한번 시행되면 되돌리기 힘들다. 늘면 늘었지, 재정 형편에 따라 줄이거나 뺏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더욱이 지자체 간 현금복지 경쟁은 지역 간 복지 격차를 벌어지게 하고,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재정 파탄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형식적인 심사로 현금복지 제도의 무분별한 도입을 방조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지자체의 신설 사업에 ‘부동의(不同意)’ 결정을 내릴 수 없도록 관련 지침을 바꿔 스스로 제동장치를 포기했다. 지난해 지자체 복지사업 동의 비율은 91%까지 높아졌다. 정부가 더 이상 지자체의 현금복지 경쟁을 ‘강 건너 불 보듯’ 해선 안 된다. 현행법상 복지제도를 관리해야 할 책임은 바로 정부에 있다. 세금이 아니라 자기 돈이라면 과연 이렇게 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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