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소리 터진 듯한 절창… 노래 한 곡에 목숨 건 이 사람

고양=임희윤 기자

입력 2019-03-18 03:00 수정 2019-03-18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유튜버로 제2 음악인생 가수 권인하

경기 고양시의 연습실에서 1일 만난 가수 권인하 씨는 대단한 열창을 선보였다. 누군가 그의 노래를 노래방 부장님 창법이라고 했다던데, 아니다. 부장님은 목숨 걸지 않는다. 고양=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천둥호랑이’라는 종은 학계에 보고된 바 없다. 이 상상 속 동물은 서울에서 서식한다. 신세대 가요를 자기 식으로 열창하는 가수 권인하 씨(60)의 요즘 별명이다. 목청이 파괴될 듯 진성으로 몰아붙이는 그의 창법에 놀라 누군가 단 동영상 댓글에서 유래했다.

유튜브 ‘권인하’ 채널 구독자 수는 18만여 명으로 현재 국내 남성 솔로 가수 중 톱이다. 권 씨는 1989년 강인원, 고 김현식과 부른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이후 이렇다 할 히트곡이 없었다.

경기 고양시 강송로의 음악 작업실에서 1일 만난 권 씨는 아기 주먹만 한 액션캠(초소형 캠코더)을 마이크 앞에 손수 설치하더니 누가 보든 말든 열창을 시작했다.

“세상이 널 뒤통수 쳐도 소주 한잔에 타서 털어버려∼!”

노라조의 ‘형’ 절정부에서 권 씨의 목에 핏발이 섰다. 천둥소리가 터졌다. 노래 한 곡에 목숨 건 사람 같았다.

“가짜 노래는 못하겠어요.”

권 씨가 숨을 가다듬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2년 전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재해석해 부른 태연의 ‘만약에’ 영상이 젊은이들 사이에 화제더라고요. 20대 아들내미가 ‘아빠, 유튜브 한 번 해보자’ 하더군요.”

아들이 권하는 ‘요즘 핫한 노래’에 도전했다. 박효신의 ‘바보’, 멜로망스의 ‘선물’, 윤종신의 ‘좋니’, 벤의 ‘180도’…. 모창은 안 했다. 자기 창법으로 돌진했다. 이런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박효신의 ‘바보’가 이별이라면 권인하의 ‘바보’는 사별이다.”

‘좋니’는 연습 가창만 300번 넘게 했다. 운전하며 열창하는 영상이 화제다. 마지막 구절, ‘그런 사람’의 ‘람∼’을 15초간 끌며 우회전 핸들을 돌리는 장면이 압권. “혼자 귀갓길 운전석에 액션캠을 달고 1시간 40분간 불러 해냈다”고 했다.

권 씨는 1980, 90년대 솔로 가수로 나섰지만 성과가 적었다. 사업가로 변신했다.

“골프채 수입, 인터넷 방송, 라이브 클럽…. 다 들어먹었어요. 2년 반 만에 5억 원 정도 까먹었죠.”

요즘 젊은 가수들의 노래에 도전하면서 그는 비로소 ‘다 건다’의 뜻을 알았다고 했다. 오전 9시 반부터 노래한다. 오후 1시에 라면 하나 끓여 먹고 5시까지 달리다 성에 안 차면 고양 연습실로 나온다.

권 씨의 ‘올인’에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다. 그는 22∼24일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콘서트 ‘포효2’를 연다. 예매자 중 절반이 20대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발표할 때 태어나지도 않은 이들이다. 30대도 29%나 된다.

또래들이 논어, 맹자를 펼쳐들고 들여다볼 삶의 지혜를 그는 뜻밖의 매체, 유튜브에서 깨치고 있는 셈. 권 씨가 주섬주섬 일어서더니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부딪치고 실컷 깨지면서 살면 그게 인생 다야∼!(노라조 ‘형’) 젊었을 때는 ‘이 정도면 돼’ ‘여지를 남겨야 다음에 뭐가 더 있지’ 생각했죠. 요즘은 이런 맘으로 살아요. ‘다음이 어딨어? 이게 끝이야.’”

고양=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