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한용운-김좌진… 항일운동 큰별들의 고향

이기진 기자

입력 2019-03-15 03:00 수정 2019-03-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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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함성, 그 현장속으로]
의병군 유해 잠든 ‘홍주의사총’ 독립운동가 생가 등 흔적 곳곳에


충남 홍성읍에 있는 홍주의사총은 일제에 맞서 항거하다 숨진 수 백명의 의병들이 영면해 있는 곳이다. 홍성군 제공
충남 홍성 지역은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장군, 지산 김복한 등 항일독립운동의 큰 별들을 배출한 곳이다. 이들의 찬란한 활동도 대단했지만 갈산보통학교 윤석규 학생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학생만세운동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100년 전 독립을 갈망한 민초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 홍주의사총(塚)이다. 홍성읍 의사로 79에 있는 홍주의사총은 구한말 홍성에서 의병운동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우다 희생된 분들의 유해를 모셨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이듬해 홍주에서는 전 이조참판 민종식이 채광묵 박인기 이만식과 농민들을 이끌고 홍주성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무력의 열세는 어쩔 수 없었다. 대포를 앞세운 일본군의 공격에 수백 명이 전사했다. 이후 1949년 4월 5일 홍성군과 홍성경찰서 직원들이 나무를 심다가 수백 구 유골을 발견했다.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 전사한 의병의 유골이 가매장된 것으로 판명됐고 이들을 합장해 무덤을 만들어 구백의총(九百義塚)이라 이름 지었다. 1992년 홍주의사총으로 이름을 바꿨다. 매년 5월 30일 추모제가 열린다.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 있는 만해 한용운의 생가. 홍성군 제공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만해 한용운은 1879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났다. 3·1독립선언의 주도적 역할을 했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다. 옥중에서 ‘독립의 서(獨立의 書)’를 썼다. 풀려난 뒤 1926년 시 88편을 묶은 ‘님의 침묵’을 발간했다. 일제와의 타협을 거부한 채 1944년 6월 29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별세했다. 성곡리 생가가 복원됐고 그곳에 문학기념관과 사당도 있다.

만해 생가에서 차로 몇 분 걸리지 않는 갈산면 행산리에는 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가 있다. 명문대가(名門大家) 출신으로 15세 때 집안 노비를 해방시킬 정도로 시대를 앞서갔다. 을사늑약 이후 재산을 정리해 호명학교를 세우고 대한협회 홍성지부를 조직해 애국계몽운동에 힘썼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 무장독립군을 이끈 백야의 북로군정서군(軍)은 만주 일대의 가장 막강한 군대로 일컬어지며 무장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다. 일본군 3300명을 섬멸한 청산리전투는 무장항일투쟁 사상 최대 승리로 꼽힌다.

만해와 백야 생가지를 들른 뒤 고암 이응로 선생의 생가가 있는 홍북읍을 찾아도 좋다. 홍성 서해안 남당항과 궁리포구에는 천수만에서 잡은 수산물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홍성지역 한우는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광천읍 토굴새우젓과 광천김도 외면할 수 없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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