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으로 정치라는 마약 끊어…완주땐 국회의원 당선보다 더 기뻤다”[양종구 기자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기자

입력 2019-03-02 14:00:00 수정 2019-03-02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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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원장이 저서 ‘내 인생의 마라톤은 끝나지 않았다’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KITRI) 원장(대한요트협회 회장)은 올해로 만 77세지만 10년은 넘게 젊어 보인다. 인사를 하고 나이를 알게 되면 깜짝 놀란다. 이런 ‘젊음’의 원동력에 마라톤이 있다. 유 원장은 만 65세인 2007년부터 마라톤에 입문해 인생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며 살고 있다.

“고려대 후배의 끈질긴 권유 때문에 달렸다. 또 재보만고(財寶滿庫) 건실무용(健失無用)(재물과 보배가 창고에 가득해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란 그 절실한 깨달음이 한 이유였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봉사와 감사로 살아보자, 그러려면 무엇보다 건강이 최우선이다’라는 결의도 나를 달리게 만들었다.”

달리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말. 2004년 총선에서 낙마한 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을 때였다. 최근 마스터스마라톤계에서 ‘맨발 마라톤 전도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박필전 씨(62)가 2년 넘게 쫓아다니며 “달리면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고 해서 시작했다.

“달리기로 맘먹고 한강으로 나가서 달렸는데 200m도 못 가서 숨을 헉헉거리며 멈췄다. 하지만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하는 것 아니냐. 1km, 3km 계속 달리며 거리를 늘려갔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거리도 늘고 재미도 있었다.”

유 원장은 2007년 4월 제4회 호남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해 5km 완주했고 5월 제3회 보성녹차 마라톤대회 10km 완주했다. 그리고 10월 강남마라톤대회에서 하프를, 11월 제5회 스포츠서울 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 완주했다. 마라톤 입문 1년도 안돼 풀코스를 완주했다. 4시간40분. 초보자치고도 괜찮은 기록인데 환갑을 넘어 시작한 초보로서는 아주 좋은 기록이었다.
“42.195km 완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벅찬 감동이었다. 솔직히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보다 더 기뻤던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이젠 총선에 출마 안하기로 결심했다. 마라톤으로 정치란 마약을 끊은 셈이다.”

유 원장은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정치권을 떠났다. 39세에 고향인 전남 보성에서 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유 원장은 14대까지 내리 4선을 한 ‘정치인’이었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고 한나라당으로 옮겨 16대(2000년), 17대(2004년) 총선에 서울 광진을 후보로 나섰으나 연패했다. 정치를 계속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상황에서 마라톤은 그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건강하게 살며 인류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유 원장은 유도 5단으로 배구와 테니스, 스키, 수영 등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마라톤이 주는 감동은 달랐다. 유 원장은 “아편이 따로 없었다. 달리는 즐거움에 매일 달렸다”고 말했다. 매일 새벽 한강을 달렸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유 원장은 이명박 후보 선거운동을 하러 다녔는데 서울에서 선거운동이 끝나면 광진구 집까지 거의 매일 뛰어 다녔단다.
“여의도에서 선거운동이 끝나면 집까지 달렸다. 차를 미리 보내고 집까지 뛰어 갔다. 한 20km 되는데 전혀 힘들지 않았다. 자주 가는 사우나에서 샤워하고 집에 가니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지금까지 풀코스를 20여 차례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4시간37분이지만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달리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유 원장은 그냥 달리진 않았다. 2008년 독도사랑 마라톤대회 하프코스에 참가한 인연으로 2009년부터 독도수호마라톤대회를 기획해 만들었다. ‘독도 사랑을 실천’하고 싶은 이유 때문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말은 틀렸다. 일본 사람들도 똑같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한다.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그리고 일본을 싫어하면서 왜 일제는 쓰나?”

유 원장은 1996년 국회의원 공천에서 탈락한 뒤 7월 일본 와세다대학 사화과학연구소에 방문학자로 가 3년 반 일본을 공부했다. 일본에 대해 전혀 모른 상태에서 일본 및 일본인 연구했고 ‘한국인 변해야 산다-일본이 싫다면서 일제는 왜 써’라는 책도 썼다.

“단순히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독도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서 달리며 독도를 생각하는 독도수호마라톤대회를 만들었다. 올해로 12회째다.”
유 원장은 2009년 4월 11일 제주 국제울트라마라톤대회 100km 출전했다. 12개국 285명에 참가한 가운데 17시간30분09초로 완주했다. 완주 제한시간 15시간을 넘겼지만 벅찬 감동은 그 누구도 모른다.

“솔직히 대한민국 5000만 명을 통틀어 100km를 완주한 자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런 얘기하면 좀 거시기 하지만 정치인 중에 풀코스 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도자가 되려면 마라톤 풀코스는 뛰어 봐야 한다. 그래야 인생을 알고 겸손해질 수 있다. 미국의 조시 부시 전 대통령, 엘 고어 전 부통령,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이 달렸다. 그들이 왜 달렸을까? 달리면 인생이 보인다. 국내에서는 양승조 충남지사가 풀코스를 달린다고 알고 있다.”

그는 2012년엔 인천 아라뱃길에서 낙동강까지 633km 국토종주 마라톤에 도전해 완주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한 것은 아니지만 국토를 종단했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해 10월 3일 인천 아라서해갑문에서 출발선을 끊었다. 그 후 팔당대교~충주 탄금대~상주 상풍교를 거쳐 낙동강 하굿둑에 이르는 633km의 길을 20차례에 나누어 달렸다. 수도권 지역을 뛸 땐 평일 저녁과 주말을 이용했다. 지방 코스는 금요일 오후부터 그 지역으로 내려가 일요일 오후까지 달렸다. 하루 평균 30여 km를 뛰었다. 그해 11월 27일 낙동강에 다다랐다.

“2010년 KITRI 원장으로 갔는데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3가지 목표를 위해 달렸다. IT 보안강국으로 인재 양성에 힘쓰고, 인라인롤러를 올림픽 종목에 넣자(당시 대한인라인롤러연맹 회장),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동서 화합을 이룬다는 목표로 달렸다.”

유 원장은 마라톤을 시작한 뒤 느낀 소회를 ‘내 인생의 마라톤은 끝나지 않았다’는 책으로 엮었다. 판매를 목적으로 한 게 아니다. 그는 이 책을 만나는 사람에게 명함 대신 준다. 유 원장은 마라톤을 하면서 정치인으로 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자부하고 있다.

“솔직히 내가 국회의원이었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KITRI 원장에 한국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이사장, 롤러에 이어 요트협회 회장도 맡았다. 달리면서 건강해지고 열정이 생기니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생각이 절실해졌다. 대한민국 IT와 생활체육 발전을 위해 내 인생을 바치겠다. 국회의원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유 원장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 사이버대학원대학교와 시니어대학원대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다.

“사회가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 인재를 키워야 한다. 4차 산업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4차 산업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고 있나? 100세 시대인데 경험 많은 노인들을 활용하고 있나? 대한민국의 미래는 4차 사업이고 노인이다. 사람은 70세는 돼야 인생을 안다. 그들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렇게 활기차게 움직이는 원동력에 마라톤이 있다.

“건강을 잃으면 마음도 잃는다. 건강하지 않는데 무슨 일을 하겠는가?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건강하면 무슨 일도 할 수 있다.”

유 원장은 4개 국어를 한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나이 먹었다고 공부 안하면 안 된다. 난 매일 외국어 어플리케이션 등으로 외국어 공부를 10분에서 30분 한다. 원어민하고 통화도 한다. 반복하면 안 되는 게 없다. 나이는 변명이 아니다. 늘 공부해야 하루하루가 즐겁다.”

유 원장은 최소 주 3, 4회 운동을 한다. 빠른 속도로 걷거나 달린다. 집 근처 건국대 트랙이나 아파트 주변, 한강이 운동 장소다. 마라톤 대회에선 주로 10km를 즐겁게 달린다. 풀코스는 1년에 1, 2회로 한정한다. 17일 열리는 2019서울국제마라톤 겸 제90회 동아마라톤에도 10km를 신청했다.

“빨리 걷고 천천히 뛰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마라톤에 출전하지만 빠른 속도로 걷는 수준으로 천천히 달린다. 솔직히 이 나이에 기록이 뭐가 중요한가. 움직이고 있다는 자체, 걸을 수 있어 달린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유 원장은 100세 시대에 부부 관계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유 원장은 결혼 주례를 자주 맡는다. 그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 있다.

“마라톤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빨리 출발한다고 빨리 들어오는 게 아니고 늦게 출발했다고 늦게 들어오는 게 아니다. 결혼식 때 많은 사람이 축하해준다. 마라톤에서 도중에 하차하면 완주의 기쁨을 만끽할 수 없다. 인생도 그렇다. 온갖 고난이 오지만 부부가 손잡고 백년해로 하면 많은 사람이 박수 쳐줄 것이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할 때 피니시 라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완주자에게 박수 쳐주듯이. 중간에 포기하면 실패하는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끝까지 달려야 한다.”

유 원장은 정치는 포기했지만 ‘정치인’으로서 딱 한 가지 소망은 있다.

“통일이 된다면 서울시청 앞에서 평양까지 달려서 평양시장에 도전하고 싶다. 단 1표가 나오더라도. 서울에서 평양까지 약 200km밖에 안 된다. 1박2일이면 충분히 달리는 거리를 이렇게 오랫동안 오고가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200km 완주하면 최소한 내가 나이 먹었다고 뭐라고 하지는 않을 것 아니냐? ㅎㅎ.”

유 원장은 “나는 아직 청년”이라고 강조한다. 80세는 넘어야 장년으로 접어든다고.

“사실 전철 탈 때 청원 경찰이 신분증 보자고 하면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생각보니 내가 그만큼 젊어 보인다는 것 아닌가? ㅎㅎ. 난 하루 만보는 걸어야 기분이 좋다. 6000보도 못 걸으면 짜증이 난다. 그럼 바로 밖으로 나가 걷고 달린다. 그럼 기분이 좋다. 건강해야 인생이 행복하다.”

유 원장은 손자가 자식을 낳는 만 98세 가을을 넘어서 까지 살고 싶단다. 결혼해서 자식 낳고 손자보고 그 손자가 애를 낳는 재미는 경험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고. 유 원장은 요즘도 부인 손을 꼭 잡고 잠자리에 든다. 이 모든 게 건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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