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전엔 “담합”이라던 공정위, 대통령 한마디에 입장 뒤집어

김준일 기자 , 최혜령 기자

입력 2018-12-05 03:00 수정 2018-12-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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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신뢰도 떨어뜨리는 정부]춤추는 정부정책, 헷갈리는 시장

공정거래위원회가 편의점 출점 거리 제한을 뼈대로 한 자율규약을 승인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불만이 커진 자영업자들을 달래려는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편의점 출점 거리 제한을 담합이라고 규정하던 공정위가 갑자기 기존 입장을 번복해 이를 허용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편의점의 복권 판매권 회수, 주택임대사업자 등록 혜택 폐지, 무주택 가구 전세보증 제한 결정 번복 등 기존 결정을 뒤집는 일이 빈발하면서 정부 스스로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5개월 만에 입장 바꾼 공정위

공정위가 4일 발표한 ‘편의점 업계 자율규약’의 핵심은 새로운 편의점을 출점할 때 경쟁사끼리도 일정한 거리를 두기로 한 것이다. 기준은 담배 판매점이다. 정부와 업계는 담배 판매점 간 거리만큼 편의점 거리를 제한하면 과당경쟁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담배사업법 시행령은 담배 판매점 거리를 50m 이상으로 유지하되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따라 거리를 더 늘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통상 도시는 50m, 농촌은 100m가 기준거리로 돼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영이 어려워진 편의점 업계는 7월 편의점 간 거리를 80m로 제한하는 자율규약안을 공정위에 제출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리제한 기준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면 담합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편의점업계는 1994년에도 경쟁 편의점 브랜드 간 근접 출점을 막기 위해 ‘기존 편의점 80m 이내에는 신규 출점하지 않는다’는 협정을 맺었지만 공정위가 이를 경쟁사 간 담합 행위로 판단한 전례도 있다.


○ 대통령 지시에 공정위 허용으로 선회

이에 한국편의점산업협회는 ‘담배 판매점 거리 제한을 적용해 편의점 출점 거리 제한을 수용해 달라’는 수정안을 냈지만 공정위는 결론을 내주지 않았다. 그러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기에 앞서 김상조 공정위원장에게 편의점 과밀 문제를 해소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공정위는 부랴부랴 당정협의를 열어 편의점 업계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경쟁을 보호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공정위가 기존 결정을 번복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거리 제한만 두는 것이 아니라 유동인구나 상권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출점 여부를 결정토록 했기 때문에 이는 담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담배 판매점 거리 제한은 공정위가 7월 담합 결정을 내렸을 때도 있었던 규정이고 대통령의 지시가 있기까지 편의점 업계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 정책 신뢰도 훼손하는 ‘정책 뒤집기’

이번 공정위의 결정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 들어 주요 부처가 기존에 발표한 정책을 뒤집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또 지난해 12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다주택자들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양도세 중과와 종합부동산세 합산 대상에서 제외해주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9개월이 지나 임대사업자 혜택이 집값 급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9·13부동산대책을 통해 다주택자 임대사업자 등록 혜택을 취소했다.

8월 말엔 ‘부부 합산 연소득 7000만 원 초과 가구’를 고소득 가구로 분류하고 서민 실수요자를 위해 이들에 대한 전세보증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맞벌이 신혼부부 등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이를 철회했다.

로또 판매를 신청하는 소매점이 없자 편의점에도 판매권을 부여했던 기획재정부는 최근 편의점들의 로또 판매권을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취약계층에 로또 판매 수익을 돌려줘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현실에서 당장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제대로 점검하지 못하고 덜컥 발표했다가 이를 거둬들여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사례들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정책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최근의 정책들은 언제 바뀔지 모르고, 어떤 원칙이 있는지도 모르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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