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정성은]내가 ‘살 수 있는’ 집은 어디인가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입력 2018-09-19 03:00 수정 2018-09-19 03:00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월세가 지긋지긋해 전세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동네 부동산을 지나칠 때면 유리에 붙은 전단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사정을 말하니 전세자금대출을 추천했다. ‘내 인생에 빚은 없다’는 생각으로 한평생 체크카드만 써왔는데 대출이라니!“프리랜서인데도 전세 자금의 80%까지 대출이 된다고요?” “신용에 큰 문제가 없으면 소득이 없어도 가능해요. 대학생도 되는걸요.” 찾아보니 정말 그랬다. ‘아니, 왜 이걸 지금 안 거지? 3.3%의 이자율이면 원룸 월세 가격으로 투룸에 살 수 있는 거잖아?’ 희망에 부푼 나는 부동산 앱을 모조리 다운로드했다.
홍대 부근에 전셋집을 알아보러 다니자 친구는 에어비앤비를 추천했다. “내 남자친구도 동생이랑 사는데 방 하나를 에어비앤비로 돌리거든. 꽤 수요가 있어서 월세 정도는 나오나 봐.” “우리 오빠는 원주에 사는데 슈퍼 호스트 됐어. 기준이 그렇게 높지 않대!” 솔깃했다. 발품을 팔수록 좋은 물건들이 나오자 욕심도 생겼다. 처음엔 분리형 원룸도 감지덕지하다가 투룸, 스리룸…, 급기야 가정집 크기의 매물까지 보게 되었다. ‘방 두 개를 에어비앤비로 돌리고 거실을 위워크처럼 1인 창작자들을 위한 공용 작업실로 쓰면 한 달 수익이….’ ‘공유경제’ 개념이 낯설었던 부모님은 대체 네가 왜 숙박업을 하냐고, 그 큰 집에서 무슨 일을 벌일 작정이냐고 걱정했다. 그러곤 나를 파주로 데려갔다.
“TV에서 남북 정상회담 하는 거 봤제? 파주 땅값이 많이 오른단다. 홍대 전세 구할 돈이면 파주 부근에 작은 아파트 살 수 있다더라.” 하숙집 월세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아파트 담보 대출이라니. 말도 안 된다 생각했지만 홍대에서 차로 30분 만에 도착한 경기 고양시 행신동, 그 평화로운 대단지 아파트를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뒤에는 산이 있고, 학교 운동장에선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대학가 원룸촌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던 1인 가구에겐 낯선 풍경이었다. 이런 게 삶의 안정일까. “소문 듣고 오면 이미 늦어요. 남들보다 한 발짝 앞서서 해야죠.” 부동산 사장님은 서둘러 다음 약속을 잡으려고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이름을 아무거나 검색해 보았다. ‘북가좌동 DMC래미안 25평 8억7천.’ 2014년 평균 매매가는 5억 원이었다. 1년에 1억 원씩 오르는 물건이라니. 근로소득이 부동산 불로소득을 못 따라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었다. 직업은 취미로 가지는 거고 돈은 부동산으로 버는 거였어.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첫째, 죽기 살기로 노동 수입을 모아 내 집 마련을 한다. 커피 끊고, 인스타에 맛집 그만 올리고, 넷플릭스는 친구 아이디로 보고, 저가항공 특가 이벤트 할 때 눈 감아! 그렇게 30년 참기 힘들면 종교인이 되어 수도원을 내 집으로. 둘째, 평생 따라잡을 수 없는 부동산 가격을 올려다보며 외곽으로, 외곽으로 밀려나는 삶을 산다. 또 어떤 방법이 있을까?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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