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배극인]아베 총리 집무실의 주가 전광판
배극인 산업1부장
입력 2018-07-16 03:00 수정 2018-07-16 03:00
배극인 산업1부장
2012년 12월 취임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관저 5층 집무실에 주가 전광판부터 설치했다. 일본의 옛 영화를 되찾는 이정표로 삼은 것이다. 닛케이평균주가는 전후 일본 최전성기의 상징이었다. 버블 경제의 정점이던 1989년 말 사상 최고치인 38,915엔을 기록했다. 미국 하버드대 에즈라 보걸 교수가 ‘저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umber 1)’이라는 책을 내놓은 지 10년 만이었다. 하지만 닛케이평균주가는 이듬해부터 미끄러지더니 2009년 3월엔 7,054엔으로 5분의 1 토막이 났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좌절의 시대였다.민주당 정권의 실패로 자민당 정권을 되찾은 아베 총리는 성장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일자리도, 복지도 궁극적으로 기업을 통해 가능하다는 경제의 기본 원칙 말이다. 그에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일본 기업의 잃어버린 20년’에 다름 아니었다. 단기 경기 부양을 위해 무제한 양적 완화와 과감한 재정정책을 동원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업이 일본 부활의 열쇠였다. 아베노믹스가 기업을 살리고, 기업을 통해 성장하고, 기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은 당연했다.
아베노믹스 헤드쿼터 격인 ‘경제재정자문회의’와 ‘일본경제재생본부’ 수장은 모두 아베 총리가 직접 맡았다. 여기에 기업인을 참여시켜 민관이 2인 3각 체제로 머리를 맞댔다. 거시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경제재정자문회의에는 나중에 경단련(한국의 전경련) 회장을 지낸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도레이 회장, 니나미 다케시 당시 로손 사장이 민간위원으로 위촉돼 2013년 한 해에만 27차례 회의를 했다. 경제재생본부 산하에 설치된 ‘산업경쟁력회의’에는 스미토모상사, 퓨처아키텍처, 미쓰비시케미컬홀딩스, 도시바, 라쿠텐 등의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참여해 일본의 성장 전략을 설계했다.
아베 총리의 경제 챙기기 행보도 언론의 단골 메뉴였다. 도쿄에서 열리는 해외 기관투자가 모임에 참석해 법인세 인하와 규제개혁법안 처리 방침을 세세하게 설명하며 투자를 호소했다. 주가가 떨어지는 날이면 비서관을 불러 문제를 파악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기업인들과는 수시로 만나 의견을 구했다.
경제 살리기에 총력 체제로 매달린 지 5년 반. 일본은 마침내 부활했다. 닛케이평균주가는 올 1월 24,124엔으로 약 2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쿄 긴자의 주요 상업지 땅값은 버블 수준을 웃돌고 있다.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로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 시대가 목전이다. 궁극적 목표였던 일자리는 알려진 대로 구인난을 겪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집무실에 일자리 전광판을 설치한 문재인 대통령의 중간 성적표는 위기감을 느낄 만하다. 일자리 지표에는 ‘고용 참사’라는 딱지가 붙었고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은 오히려 일자리와 소득이 줄었다고 아우성이다. 전광판 잘못은 아닐 테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한 방향의 정책 믹스에 과속 페달을 밟으면서 과부하가 걸렸다. 여당 원내대표가 “협력업체 쥐어짜서 세계 1위 삼성을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적대 분위기에서 의욕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기업도 없다.
세금으로 만드는 공공부문 일자리로 불쏘시개는 할 수 있지만 불쏘시개를 계속 태울 순 없다. 세금으로 떠받치는 최저임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여당에선 장기적으로 소득주도성장의 분수 효과를 장담하지만, 서민들은 분수 근처에 가기도 전에 죽겠다고 한다. 인도 순방에서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문 대통령의 귀국 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배극인 산업1부장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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