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개인기 ‘트위플로머시’, 세계 외교무대의 ‘감초’로

조은아 기자 , 전채은 기자

입력 2018-06-25 03:00 수정 2018-06-2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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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진담 오가는 트위터 메시지… ‘편안한 수다’로 상대방 압박 가능
북미회담 관련 트윗만 400만건… 이란-이스라엘, ‘움짤’로 설전
러, 온도계 사진으로 英과 냉전 묘사
지지세력 결집-밀실외교 탈피 장점, “민감한 외교 가볍게 다뤄” 비판도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실무진 사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트위터 캡처
북-미 정상회담 하루 전인 11일 늦은 밤, 회담 개최국 싱가포르의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외교장관 트위터 계정에 ‘어딘지 맞혀 보세요’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사진 한 장이 올라오면서 세계 언론이 바빠졌다. 그가 한밤 투어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유쾌하게 셀카를 찍어 올렸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등장한 셀카를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대사를 앞둔 깊은 밤 외출했다는 ‘깜짝 뉴스’에 트위터를 찾는 사람이 급증했다. 발라크리슈난 장관은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멋쩍게 웃는 사진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싱가포르 관료들은 북-미 정상회담이란 큰 무대 뒤에 숨어 있는 장면들을 속속들이 촬영해 트위터에 부지런히 올렸다. 싱가포르가 약 162억 원을 쓰고 최대 6216억 원의 홍보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오는 데에는 트위터 홍보도 적지 않게 기여했다. 현지 언론 스트레이츠타임스에 따르면 싱가포르가 회담 개최지로 확정된 1일부터 회담 다음 날인 13일까지 회담 관련 트윗은 400만 건이나 됐다. 두 정상이 만난 오전 9시경(현지 시간)에는 1분당 5200건의 트윗이 쏟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기’로 인식됐던 ‘트위플로머시(Twiplomacy·트위터와 외교의 합성어)’가 세계 외교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가 된 셈이다.


○ ‘스트롱맨’의 장외 전쟁터

이달 초 이란을 상대로 올린 영화의 한 장면. 주미 이스라엘대사관 트위터 캡처
최근 스트롱맨 정상들이 외교·안보 이슈를 두고 첨예하게 맞서면서 트위터가 거친 외교의 장외 전쟁터가 되고 있다. 이들은 트위터로 농담과 진담을 미묘하게 오가는 외교적 메시지를 상대국을 향해 던진다. 편안한 수다가 오가는 트위터를 이용하면 공식적인 항의 서한을 보내지 않고도 상대국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4일 트위터에 이스라엘을 ‘암’에 비유한 글을 적었다. 그러자 주미 이스라엘대사관은 다음 날 트위터에 할리우드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에 나오는 움짤(움직이는 짧은 영상)을 올렸다. 영상은 여배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한테 왜 이렇게 집착하니”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이란 최고지도자의 주장을 비웃은 셈이다. 미국 의회전문 매체 ‘더힐’은 11일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런 대응은 포퓰리스트적 수사가 증가하며 세계적으로 자주 활용된다. 이런 나라들은 다른 국가와 소통할 때 거만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란의 오래된 수사학적 무기에 맞서 이스라엘대사관은 가장 강력한 이미지로 대응했다”고 평가했다.
올 3월 영국을 향해 게시한 온도계 사진. 주영 러시아대사관 트위터 캡처
영국이 올 3월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한 직후 주영 러시아대사관은 트위터에 영하 23도를 가리키는 온도계 사진과 함께 “러시아와 영국의 관계는 영하 23도로 떨어졌지만 우리는 추운 날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추방한 외교관 수에 비례해 양국 관계가 냉전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당시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온도계 사진을 올린 트윗은 거의 1000번 공유됐다. 러시아는 괴짜 같은 방식으로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고 평했다. 이와 달리 영국 정부는 트위터에 ‘우리는 오늘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했다’는 건조하고 심각한 메시지만 올려 오히려 촌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는 대외적으로는 “우리는 트위터 외교를 하지 않는다”며 ‘트위터광’ 트럼프 대통령을 은근히 비판하고 있지만 물밑에서 트위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외교적인 클럽’이 대표적이다. 이 클럽에 가입한 영국의 트위터 이용자들은 러시아 정부로부터 외교 관련 뉴스를 수시로 제공받고, 러시아 뉴스를 트위터에 공유하는 대신 각종 행사에 초청받는다.


○ 정상들, 전임자로부터 ‘트위터 계정 승계’
트위플로머시의 달인은 누구일까. 글로벌 홍보기업 버슨마스텔러에 따르면 세계 지도자 중 팔로어가 가장 많은 사람은 프란치스코 교황(2017년 5월 현재)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퇴임과 동시에 팔로어 1위 리더로 등극했다. 9개 언어의 계정을 합쳐 총 약 3370만 명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트윗을 받아 봤다.

이 뒤를 바짝 쫓는 떠오르는 리더는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기간에 팔로어 수를 기존의 3배로 늘리더니 지난해 1월부터는 평균 5.7%씩 매달 꾸준히 늘렸다. 조사 당시 약 3013만 명이던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팔로어 수는 현재 5300만 명을 넘어섰다.

정치적으로 트위터의 힘이 커지다 보니 새롭게 선출된 정치지도자가 전임자에게서 트위터 계정을 물려받기도 한다. 거의 실시간으로 반응을 보이는 트위터 팔로어들은 인터넷 시대에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2016년 7월 취임한 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쓰던 계정(@Number10gov)을 물려받았다. 프로필 사진만 캐머런 전 총리의 얼굴에서 영국 총리의 관저가 있는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의 현관문으로 바꿔 사용했다.

트위터 외교는 많은 정보를 공개한다는 점에서 ‘밀실 외교’ 가능성을 낮추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들이 트위터에서 공과 사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신중하게 다뤄야 할 외교 사안마저 가볍게 다루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CNN은 18일 “트럼프 대통령은 일요일인 17일 하루 만에 18개의 트윗을 올렸다. 대통령 취임 뒤 어느 때보다도 개인적이고 이상해졌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지나친 트윗 활동을 꼬집었다.

외교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트위터는 공공외교에 효과적이지만 공식 입장과 사견을 명확히 구분하는 안보·외교 현장에선 득보다 실이 많다”며 “트럼프 대통령처럼 안보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이 트위터로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를 던질 때 미국 국익은 물론 우방 이익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전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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