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름돈 자동저축… 카드로 기부… 넛지, 금융을 툭 치다
황태호기자 , 박성민기자
입력 2018-05-31 03:00 수정 2018-05-31 03:00
‘행동경제 적용’ 전문가 진단
‘5000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와 ‘5000원을 아낄 수 있습니다’라는 광고 문구 중 소비자들은 후자에 훨씬 더 강한 반응을 보인다. 사실 똑같은 뜻이지만 이익보다 손해를 더 크게 평가하는 심리에 기초한 단어 차이가 행동을 가른다. 이처럼 작은 차이로 인해 사람들이 다르게 움직이는 이유를 행동경제학을 통해 엿볼 수 있다.
3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8 동아국제금융포럼’에 연사로 나선 강현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주가를 비롯한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 같은 사람들의 ‘비합리적 선택’ 때문”이라며 “사람들이 왜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지를 보는 행동경제학적 분석을 이용하면 장기적으로 이런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택을 유도하기 위한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하는 ‘넛지’가 앞으로 금융시장에도 의미 있는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넛지’가 바꾸는 금융생활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최근 ‘현금 없는 사회’를 조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초등학교에 결제 기능이 포함된 ‘스마트 시계’를 보급했다. 현금 사용을 줄이도록 정책적으로 강제하는 대신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장현기 신한은행 디지털전략본부장은 이처럼 국내외 기업들이 행동경제학을 이용해 내놓은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ING그룹이 기부를 늘리기 위해 떠들썩한 캠페인을 벌이는 대신 신용카드를 갖다대면 간단히 기부가 이뤄지는 ‘기부 박스’를 만든 것도 비슷한 사례다.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 기부 통로가 부족하다는 불만을 자연스레 해결한 것이다. 이후 1인당 평균 기부 모금액은 1.5유로(약 1875원)에서 3.2유로(약 4000원)로 두 배로 늘어났다.
행동경제를 활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도 한다. 고객이 귀찮아하는 소액의 거스름돈을 자동으로 저축해 ‘투자’까지 하도록 해주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신한은행이 올해 출시한 ‘쏠편한 선물하는 적금’은 모바일에서 기프티콘 등을 자유롭게 선물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을 이용한 경우다. 적금 계좌 선물이 저축이라는 행동 변화로 이어지는 넛지 효과를 이끌어낸다.
장 본부장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등장으로 주요 고객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디지털 환경이 급변하면서 금융회사들의 혁신도 불가피해졌다”며 “고객의 니즈를 반영해 행동을 이끌어내는 ‘킬러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의 사회로 디지털 전환 시대에 금융 소비자의 특성과 넛지를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박동규 PwC컨설팅 파트너는 “넛지는 심리적인 영역이지만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야 고객의 행동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고객 데이터를 독점해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사용하는 ‘나쁜 넛지’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자문위원은 “소수 플랫폼 운영자들이 데이터를 독점하지만 고객은 정당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들이 데이터 주권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금융감독에도 행동경제 활용
금융감독 분야에도 행동경제학이 도입되고 있다. 김동하 금융감독원 팀장은 “올 3월 금감원 내에 금융행태연구팀이 신설됐다”며 “기존의 금융회사 건전성 중심, 규칙 기반의 감독에서 진정한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감독으로 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영국의 금융감독청(FCA)을 벤치마킹했다. FCA는 ‘PPI 스캔들’로 불리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급보증보험(PPI) 불완전 판매 문제를 해결하면서 행동경제학을 활용한 바 있다. PPI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수백만 명에게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카드를 판매하면서 ‘끼워 팔기’됐다. 하지만 계약 내용이나 보험료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았다. 심지어 65세까지 보장하는 보험을 68세 소비자가 가입한 경우도 있었다.
상품의 판매 절차를 분석한 FCA는 ‘정보 제공 이틀 후 계약 확정’ 등 소비자의 합리적인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개선책을 내놓았다. 소비자 피해 보상 절차에도 행동경제학이 적용됐다. FCA는 불완전 판매 보상 안내 서신에 △봉투에 ‘신속 처리’ 메시지 기재 △글자 수 줄여 내용 간소화 △보상 신청 과정이 5분밖에 걸리지 않는 점 명시 △3∼6주 후 추가 서신 발송 등 각기 다른 조건으로 보상 절차 안내 서신을 보내는 실험을 벌였다. 김 팀장은 “경우에 따라 반응률이 10배 넘게 차이 났다”며 “소비자를 위해 금융감독 분야에서 행동경제학이 얼마나 유효한지 입증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황태호 taeho@donga.com·박성민 기자
3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동아국제금융포럼에 참석한 금융 및 행동경제 전문가들이 ‘디지털 전환 시대, 금융소비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김동하 금융감독원 금융행태연구팀장, 박동규
PwC컨설팅 파트너, 장현기 신한은행 디지털전략본부장,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자문위원.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3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8 동아국제금융포럼’에 연사로 나선 강현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주가를 비롯한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 같은 사람들의 ‘비합리적 선택’ 때문”이라며 “사람들이 왜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지를 보는 행동경제학적 분석을 이용하면 장기적으로 이런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택을 유도하기 위한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하는 ‘넛지’가 앞으로 금융시장에도 의미 있는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넛지’가 바꾸는 금융생활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최근 ‘현금 없는 사회’를 조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초등학교에 결제 기능이 포함된 ‘스마트 시계’를 보급했다. 현금 사용을 줄이도록 정책적으로 강제하는 대신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장현기 신한은행 디지털전략본부장은 이처럼 국내외 기업들이 행동경제학을 이용해 내놓은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ING그룹이 기부를 늘리기 위해 떠들썩한 캠페인을 벌이는 대신 신용카드를 갖다대면 간단히 기부가 이뤄지는 ‘기부 박스’를 만든 것도 비슷한 사례다.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 기부 통로가 부족하다는 불만을 자연스레 해결한 것이다. 이후 1인당 평균 기부 모금액은 1.5유로(약 1875원)에서 3.2유로(약 4000원)로 두 배로 늘어났다.
행동경제를 활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도 한다. 고객이 귀찮아하는 소액의 거스름돈을 자동으로 저축해 ‘투자’까지 하도록 해주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신한은행이 올해 출시한 ‘쏠편한 선물하는 적금’은 모바일에서 기프티콘 등을 자유롭게 선물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을 이용한 경우다. 적금 계좌 선물이 저축이라는 행동 변화로 이어지는 넛지 효과를 이끌어낸다.
장 본부장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등장으로 주요 고객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디지털 환경이 급변하면서 금융회사들의 혁신도 불가피해졌다”며 “고객의 니즈를 반영해 행동을 이끌어내는 ‘킬러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의 사회로 디지털 전환 시대에 금융 소비자의 특성과 넛지를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박동규 PwC컨설팅 파트너는 “넛지는 심리적인 영역이지만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야 고객의 행동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고객 데이터를 독점해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사용하는 ‘나쁜 넛지’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자문위원은 “소수 플랫폼 운영자들이 데이터를 독점하지만 고객은 정당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들이 데이터 주권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금융감독에도 행동경제 활용
금융감독 분야에도 행동경제학이 도입되고 있다. 김동하 금융감독원 팀장은 “올 3월 금감원 내에 금융행태연구팀이 신설됐다”며 “기존의 금융회사 건전성 중심, 규칙 기반의 감독에서 진정한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감독으로 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영국의 금융감독청(FCA)을 벤치마킹했다. FCA는 ‘PPI 스캔들’로 불리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급보증보험(PPI) 불완전 판매 문제를 해결하면서 행동경제학을 활용한 바 있다. PPI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수백만 명에게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카드를 판매하면서 ‘끼워 팔기’됐다. 하지만 계약 내용이나 보험료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았다. 심지어 65세까지 보장하는 보험을 68세 소비자가 가입한 경우도 있었다.
상품의 판매 절차를 분석한 FCA는 ‘정보 제공 이틀 후 계약 확정’ 등 소비자의 합리적인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개선책을 내놓았다. 소비자 피해 보상 절차에도 행동경제학이 적용됐다. FCA는 불완전 판매 보상 안내 서신에 △봉투에 ‘신속 처리’ 메시지 기재 △글자 수 줄여 내용 간소화 △보상 신청 과정이 5분밖에 걸리지 않는 점 명시 △3∼6주 후 추가 서신 발송 등 각기 다른 조건으로 보상 절차 안내 서신을 보내는 실험을 벌였다. 김 팀장은 “경우에 따라 반응률이 10배 넘게 차이 났다”며 “소비자를 위해 금융감독 분야에서 행동경제학이 얼마나 유효한지 입증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황태호 taeho@donga.com·박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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