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윤 요리쌤의 오늘 뭐 먹지?]가자미식해에 옹심이 한그릇, 그때 그맛

동아일보

입력 2018-02-08 03:00 수정 2018-02-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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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감자옹심이’의 감자옹심이. 홍지윤 씨 제공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chiffonade) 운영자
초등학교 4학년에 막 올라갔을 때다. 학기 초 아이들을 면담하던 담임선생님이 학생기록부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지윤이, 너 알고 보니 강원도 감자바위 ‘촌년’이구나.”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난 지 만 10년, 서울을 떠나본 적 없는 내가 촌년이라니. 시골아이 취급에 맘이 상했던 나는 그 일을 꽤 오랫동안 담아두었다.

졸지에 촌년이 된 것은 생활기록부에 적힌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하맹방리’라는 본적 때문이다. 말인즉슨 부모님은 오래전 상경해 자리를 잡았으니 시골 출신 촌사람이 맞다.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까지 북평(현재 동해시) 출신이라 친가, 외가 모두 골수까지 강원도 출신이다.

그러나 아버지 고향이자 내 본적지에 대한 추억은 그리 많지 않다. 한여름 피서 철 언니 동생과 함께 아버지 차 타고 멀미해가며 대관령 고개를 굽이굽이 넘어, 경포대에서 해수욕을 하고 본적지를 지키고 있는 큰아버지댁에 들렀던 기억이 전부다. 다만, 내 뿌리를 가끔이나마 되새겨주는 것은 어머니가 해주시던 촌스럽고 소박한 그곳 음식들이다. 노란 기장쌀을 섞어 감자를 숭숭 잘라 넣고 지은 감자밥, 멸치 국물에 간장과 고춧가루를 적당히 풀어 넣고 지진 감자조림, 동부(콩)를 넣어 빚은 쫄깃한 감자송편, 애호박과 풋고추를 채 썰어 넣고 기름에 지진 감자전….

강원도에서 감자는 쌀보다 많이 먹고 사람보다 흔한 재료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옹심이’를 어머니가 만들던 날엔 언니들을 제치고 어린 내가 감자를 갈았다. 우리 집에선 전기믹서 따위로 감자를 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강판에 갈아놓은 감자를 베 보자기로 꼭 짜서 건더기를 따로 두고 국물을 가만히 가라앉혔다. 윗물을 따라내고 양푼 밑바닥에 드러나는 뽀얀 감자녹말이 어린 눈에 그리 신기할 수가 없었다. 뽀드득한 녹말을 건더기와 섞어 옹심이 반죽을 만드는 동안 멸치로 국물을 내고 마늘 한 수저와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다. 모양도 내지 않고 수저로 대충 떠낸 반죽을 팔팔 끓는 멸치 국물에 던지듯 넣으면 금세 반죽이 쫄깃하게 익으면서 동동 떠오른다. 남은 반죽은 채 썬 호박과 풋고추를 넣어 전을 부치고, 좁쌀을 넣어 삭힌 빨간 가자미식해를 곁들인 옹심이 한 그릇이 가끔씩 먹던 우리 가족의 주말 저녁 밥상이었다.

옹심이 먹던 촌년이 물 건너가서 서양 요리를 배우고 요리 선생이 됐으니 옛 담임선생님께서 보시면 출세했다 기뻐하시려나. 이번 설엔 떡국 대신 옹심이를 끓여봐야겠다.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chiffonade) 운영자 chiffonade@naver.com

○ 강릉감자옹심이 강원 강릉시 토성로 171. 033-648-0340. 옹심이 9000원, 감자송편 4000원
○ 영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81-21 정암빌딩. 02-323-4256. 옹심이 8000원
○ 바른식시골보쌈감자옹심이 서울 서초구 방배천로2길 25. 02-3473-7358. 옹심이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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