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이야기가 있는 마을] 돌림병에 불탄 마을…울다 지쳐 나무가 된 천년쇠

이해리 기자

입력 2017-12-21 05:45 수정 2017-12-21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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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사장나무가 지나온 400여 년의 시간을 증명하듯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오래 전 마을에 불어닥친 돌림병에 얽힌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나무다. 고흥|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15> 금성마을 ‘사장나무’ 설화

인심 좋던 마을에 갑자기 번진 돌림병
관군들 들이닥쳐 온 마을을 불태우고…
천년쇠가 껴안고 백골이 된 느티나무
마을선 아픈 영혼 깃든 신성한 보물로

오랜 세월 척박했던 땅. 그만큼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대한 의지는 강했다. 강하고 질긴 태도와 능력으로써만 세상은 살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는 쌓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산한 삶을 이어가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밝고 슬프고 아름답고 비극적이어서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 설화는 그렇게 오래도록 쌓여 전해져오고 있다. 전남 고흥군을 다시 찾는 이유다. 지난해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고흥의 이곳저곳 땅을 밟으며 다양한 이들을 만난 스포츠동아는 올해에도 그곳으로 간다. 사람들이 전하는 오랜 삶의 또렷한 흔적을 확인해가며 그 깊은 울림을 함께 나누려 한다. 매달 두 차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사람들이 논과 밭을 일구고 살아가는 마을에는 예부터 그 곳을 지키는 수호신이 있기 마련이다. 고흥군 두원면 용반리 너른 평야 위에 자리 잡은 금성마을에도 그런 소중한 상징이 있다. 마을 초입, 너른 광장에 자리 잡은 아름드리 느티나무다. 어른 두세 명이 팔을 벌려야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에서, 나무가 지나온 시간의 무게가 충분히 짐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 “사장나무” 혹은 “정자나무”라고 부른다. “심은 지 400년은 족히 넘은 나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정확히 언제 심어졌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나무와 얽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짧지 않은 시간을 우회적으로 설명하는 듯 하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사장나무는 오랫동안 마음 속 버팀목이 돼 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금성마을 사장나무. 고흥|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마을 휩쓴 돌림병이 남긴 상처

사장나무 주변에는 낮은 울타리가 쳐 있다. 나무를 안전하기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얼마 전 설치한 보호 장치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가 혹여 상하지 않을까 때마다 충분한 퇴비를 주고,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고흥군에서도 이 사장나무를 군의 보호수로 관리하고 있다.

그런 사장나무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깃들여 전해 내려온다. 마을에 아직 ‘금성’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은 오래 전, 이 곳에는 넉넉한 인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대부분 형제와 같은 일가친척들. 옆집에서 끼니를 거르면 챙겨주고, 일이 넘치면 기꺼이 도와주면서 함께 살아갔다.

화목한 마을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삽시간에 퍼지면서다. 산에서 나무를 해오던 남자가 갑자기 쓰러지고, 밭을 매던 아낙이 눈이 뒤집힌 채 의식을 잃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병에 걸린 이들을 정성스레 돌봤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돌림병에 마을에는 공포심이 커졌고, 흉흉한 소문도 퍼졌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에 돌림병이 돈다던데. 돌림병이 생긴 마을은 전부 불타운대요.”

마을 사람들을 해결책을 짜냈다. 아직 병이 옮지 않은 건강한 젊은이들을 마을 뒷산으로 피신시키자는 계획이다. 관군이 들이닥쳐 전부 불태우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그 무리 가운데는 15살의 소년 천년쇠가 있었다. 그는 마을에 처음 들어와 터를 잡은 입향조의 자손이다. 그만큼 마을에서 귀하게 존중받았지만 거센 돌림병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마을에 남겨진 병든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하나둘씩 죽어갔다. 들이닥친 관군은 마을 출입을 막고 시체를 전부 불태우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사람보다 죽어간 사람이 더 많았다.

병에 걸린 부모를 두고 산으로 피신한 천년쇠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숨어 지내길 여러 날. 관군에 의해 마을이 불타는 모습을 본 그는 부모를 등지고 혼자 살아났다는 사실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관군이 물러가자 산에 머물던 천년쇠와 청년들은 마을로 내려왔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잿더미가 된 마을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그런 천년쇠 눈에 잿더미 안에서 초록빛을 내는 작은 나무가 보였다. 화마에서 용케 살아남은 어린 느티나무의 잎이었다.

그 때였다. 마을에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관군이 다시 몰려왔다. 피신했다 돌아온 청년들을 돌림병에 걸린 환자로 오해한 관군은 그들을 묶어 장작더미에 던지고 그대로 불을 붙였다. 혼란의 틈에 천년쇠는 급히 어린 느티나무 뒤에 붙어 겨우 목숨을 구했다.

참혹한 광경을 눈앞에서 본 천년쇠는 “차라리 이대로 나무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느티나무를 부둥켜안고 울다 지켜 잠들기도 여러 날. 그렇게 몇 해가 지났다. 우연히 마을을 지나던 한 나그네가 커다란 느티나무를 꼭 안고 있는 해골을 발견했다.



● “마을이 신성하게 여기는 나무”

금성마을 사람들은 아름드리로 자란 사장나무에 오래 전 슬픔을 간직한 채 죽은 천년쇠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긴다. 나무가 곧게 뻗지 않고 구불구불 휘어진 채 자라난 이유 역시 한 맺힌 천년쇠의 기운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마을의 이장 류공수 씨는 “사장나무는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 같은 나무”라며 “우리 모두 신성하게 여기는 마을의 큰 재산”이라고 했다.

이 곳에서 40∼50년간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은 사장나무와 함께 숨쉬며 지냈다. 1944년 용반리에서 태어나 73년 동안 한 번도 금성마을을 떠나지 않은 송표종 할아버지는 “고흥군 일대에는 마을을 지키는 사장나무는 몇 그루씩 있다”며 “그래도 우리 마을 사장나무처럼 귀한 것은 드물 것”이라고 했다.

오래 전 마을에 불어 닥친 돌림병, 그로부터 아픈 상처를 입은 이들의 이야기를 간직한 나무인 만큼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각별하다. 송표종 할아버지는 “우리가 어릴 땐 나무에 올라가서 놀기도 했지만 지금은 혹여 상처라도 날까봐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 설화 참조 및 인용: ‘사장나무가 된 천년쇠’ 김미승, ‘고흥군 설화 동화’ 중


■ 설화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고흥|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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