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전 중단한 항암 치료, 지금은 어떨까
노트펫
입력 2017-11-10 17:07 수정 2017-11-11 16:39
[노트펫] 최근에 여러 가지 일이 겹치는 바람에 무척 바빴다. 고양이들은 겨우 밥과 화장실만 챙겨주고, 제대로 놀아주지 않은 탓인지 밤만 되면 더욱 격렬하게 우다다를 했다. 그 탓에 잠을 설치고, 다음 날은 피곤하게 일어나 또 바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러다 겹쳤던 일이 거의 동시에 다 끝나서 겨우 여유가 좀 생겼다. 엊그제는 아침에 일어나 소파에 앉아 모처럼 책을 펼쳤다. 노래도 틀지 않고 고요한 침묵에 귀 기울이며, 다소 부산스러운 햇볕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겼다.
그런데 보통 스크래처 위에 앉아 그런 나를 눈 깜박이며 바라보고 있는 제이가 오늘따라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었다. 화장실을 연속으로 서너 번씩 들락거려서 계속 모래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안 좋은 예감이 스쳐서, 또 화장실에 들어가는 제이를 뚫어져라 주시했다. 볼일을 보려고 자세는 취하는데 맘처럼 안 되는 듯 또 모래만 긁어모으고 화장실을 나왔다. 그러더니 급기야 소파 위에 있는 내 가디건을 앞발로 몇 번 긁더니 그 위에 오줌을 세 방울 정도 흘리는 것이었다.
화장실에 수없이 들락거리는 것, 자세는 취하지만 소변을 보지 못하는 것, 평소에 하지 않는 엉뚱한 장소에 배뇨를 하려 드는 것 등의 모든 행동이 내 머릿속에 있는 방광염 카테고리에 퍼즐 조각처럼 맞춰졌다.
불안한 마음에 간식 파우치에 따뜻한 물을 섞어 주니 아주 잘 먹는다. 쥐돌이 장난감도 잘 쫓아다닌다. 다행히 컨디션은 좋아 보였다. 오후에는 한숨 잘 자더니 밤에 또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결국 다음날 병원에 데려갔다. 제이는 네 달 전까지 항암 치료를 받다가 중단한 상황이라, 병원에 오는 건 오랜만이었다. 담당 선생님이 당연히 종양 때문에 온 줄 아셨지만, 그게 아니라 소변보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진료를 받았다.
선생님은 제이를 보고 놀라면서 “어머, 큰 병 앓았던 아이 같지 않네요” 하셨다. 모질도 좋고, 상태도 좋아 보인다면서 말이다.
네 달 전 컨디션이 좋아지며 항암 치료를 중단했지만 언제든 위험할 수 있다고 하셔서 마음 한구석이 늘 찜찜했는데, 역시 지금은 누가 봐도 건강해 보이는구나 싶어 안심이었다.
증상을 말씀드리고 초음파를 했다. 배의 털을 조금 깎아내야 했지만 예전 항암 치료를 할 때처럼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이깟 털 조금, 또 자랄 텐데 뭐. 우리에겐 시간이 많으니까.
하지만 초음파로는 방광에 별 문제가 없었고, 행동을 봐서는 초기 단계일 수 있다고 했다, 혹시나 변비라면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안다고 하셔서 엑스레이도 찍었다. 하지만 변비도 아니었다. 가벼운 약 처방을 받고 며칠 정도 지켜보기로 했다.
방광염은 무사 통과였지만, 선생님이 엑스레이를 보더니 깜짝 놀라셨다.
“예전에는 흉수가 이렇게 많이 찼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좋아졌어요?”
나도 엑스레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마지막에 본 사진보다, 제이의 하얀 종양 부분이 훨씬 옅어져 있었다. 너무 단단하게 얽혀 있는 조직이라 아마 안 없어질 거라고 했는데……. 물론 정상적인 고양이에 비하면 확실히 다른 점을 알 수 있는 사진이지만, 제이의 종양을 2년 전부터 지켜온 내가 보기에는 정말 깨끗해진 느낌이었다.
제이가 조금만 이상해도 온몸이 긴장되는 건강 염려증이 생겨 버린 내가 지레 겁먹고 데려간 병원이었지만, ‘제이가 꽤 건강해진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니 기적처럼 기뻤다.
제이의 체중은 어느덧 4kg가 됐다. 종양 때문인지 1살이 넘어도 몸집이 커지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어느새 보통의 고양이처럼 자란 것이다. 비록 노파심에 방광염과 변비 여부를 검사하느라 애먼 9만 원이 나갔지만, 제이의 건강 확인 비용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선생님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던 제이. 부디, 이 기적이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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