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들었다고? 구글-SM도 놀랐다

임희윤기자

입력 2017-11-02 03:00 수정 2017-11-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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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음악’ 발표현장 가보니

“인공지능(AI)에 저작권료를 어떻게 지불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습니다.”(가수 겸 작곡가 윤상)

1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콘텐츠 시연장. 11월 1일 오전 11시 1분에 딱 맞춰 쇼케이스 ‘11011101 1과 0 사이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가 시작됐다. 콘진원이 SM엔터테인먼트와 공동으로 지난 10주간 진행한 음악 인공지능 협업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이날 행사의 사회를 맡은 윤상은 6개의 프로젝트 결과물이 발표될 때마다 혀를 내둘렀다.

가장 관심을 모은 분야는 작사다. 스타트업 ‘포자랩스’는 직접 개발한 인공지능 ‘뮤직쿠스’에 국내 가수 2000명의 노래 약 6만 개, 20만 줄 분량의 가사를 딥러닝 방식으로 학습시켰다. 3, 4일간 가사의 진행 패턴을 익히게 한 뒤 사랑, 후회, 슬픔, 가을 같은 키워드를 입력했다. 뮤직쿠스는 기다렸다는 듯 초당 수천 줄의 속도로 작사를 시작했다. 컴퓨터 모니터가 터져 나갈 듯 노랫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작곡도 비슷했다. 팝, 록, 영화 주제곡 1000여 개를 학습한 뮤직쿠스는 순식간에 8만 개의 화성과 선율 패턴을 뱉어냈다. 음악가 이일우(잠비나이), 고한결(전 이스턴사이드킥)이 뮤직쿠스의 노랫말과 선율을 다듬고 보완해 만든 ‘춤’과 ‘무제’란 곡을 이날 무대에서 연주했다.

‘춤’은 전자음악에 개라지 록 장르가 결합된 악곡, ‘비밀은 때도 없이/숨을 몰아쉬어요’ 등의 가사가 제법 신선했다. ‘무제’는 우울한 모던 록 스타일의 악곡으로 ‘오랜 상처들이 꽃잎처럼 붉게 물들었네’라는 가사에서 따뜻하고 인간적인 기운마저 묻어났다.

이날 인간과 AI는 다양한 협업 가능성을 보여줬다. 뮤직비디오 제작, 음악 선곡과 디제잉, 공간 맞춤형 음악 자동 생성, 비보잉 안무 창작, 작사·작곡에 이르기까지. 인간 예술가가 키워드나 주제를 잡고, 딥러닝 한 AI가 쏟아낸 창작의 편린들을 인간이 취사선택해 다듬고 완성했다.

AI와 인간의 합작 디제잉도 흥미로웠다. 스크린에 투사된 영상의 분위기에 따라 AI가 실시간으로 어울리는 곡을 인간 DJ인 디구루(밴드 이디오테잎)에게 골라주면 디구루가 디제잉으로 그 곡들을 자연스레 연결했다. 버즈뮤직코리아가 개발한 이 AI는 오토바이 질주 장면이 나오자 스크릴렉스의 자극적인 전자음악, 슈퍼카 람보르기니가 등장하자 돈 자랑에 어울릴 법한 힙합을 즉각 선곡했다. 디구루는 “현장 분위기를 보고 숙고하며 어울리는 음악을 붙여 가야 하는 디제잉은 인공지능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아직은 인간의 보완이 필요하지만 빠르면 3년 내에 인공지능 DJ가 인간 DJ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과 중간 개발 과정을 지켜본 SM, 구글, 제일기획 등의 각계 관계자들은 AI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창작물의 의외성에 놀라며 높은 점수를 줬다. ‘제7의 감각, 초연결지능’의 저자 조슈아 쿠퍼 라모 키신저협회 공동 최고경영자는 “연결이 사물의 본질을 바꿔버릴 수 있는 혁신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오늘 다시 실감했다”면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연결이 4, 5년 내에 말러 교향곡 수준의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을 듯하다”고 했다. 인공지능 작사·작곡 과정을 지켜본 이성수 SM 이사(프로듀싱본부장)는 “인간의 논리나 감성으로 만들어내기 힘든 상상을 초월하는 화성 진행과 노랫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 소름이 끼쳤다”면서 “인간의 수정과 개입을 거치면 당장이라도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에 근접했다고 본다”고 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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