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린 먼로도 웃고 갈 기발한 컵케이크
김선미기자
입력 2017-10-17 03:00 수정 2017-10-17 03:00
테리 보더의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展… 과자 등 일상소재에 철사로 팔 다리 만들어 ‘찰칵’
사실 전 당신이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어요. 테리 보더?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죠.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라는 전시(12월 30일까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던 영화의 아류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당신의 흥미진진한 작품사진들이 펼쳐지는 게 아니겠어요?
식빵, 계란, 달걀, 바나나, 손톱깎이…. 일상의 소재들에 철사로 만든 팔 다리가 달렸는데, 사람처럼 악수도 하고 축구공도 차고. 당신이 궁금해졌어요.》
아, 인간적 친밀감이 확 밀려왔어요. 당신의 첫 작업이라는 ‘우편주문 신부’, 그것도 참 기발하더군요. “슈퍼마켓 레몬 선반을 지나는데, 진짜 레몬도 있고 레몬주스가 담긴 레몬 모양 통도 있었어요. 진짜 레몬은 가짜 레몬과 있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외로운 진짜 레몬이 마치 섹스 로봇을 사듯 가짜 레몬을 우편으로 주문해 받는 장면을 상상해봤어요.(웃음)”
무엇보다 당신으로부터 사랑을 배워요. 토스터 안에서 건배(영어로 toast)하는 두 식빵, 다 타서 꺼지는 순간까지 서로에게 온기가 돼 주는 두 촛불의 모습에서 말이에요.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같은 사랑에 관한 소설들을 꺼내 읽어봤다니깐요.
보더 씨, 저는 며칠 전 가을 연시를 샀습니다. 네 개씩 두 줄로 직사각형 접시에 담아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한 친구가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레고 같다.” 그때 생각했어요. 보더 씨를 흉내 내 ‘레고 감’이라고 제목을 달아보면 어떨까 하고. 앞으로 사물을 보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할 것 같아요. 위트 있는 당신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12일 서울 종로구 사비나미술관에서 만난 철사 예술사진가 테리 보더 씨. 그의 오른쪽 뒤로 먹다 남은 사과를 살 뺀 사과로 의인화한 ‘사과 다이어트’ 작품이 보인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Dear. 테리 보더 씨, 우린 지난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사비나미술관에서 만났죠. 그날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좀 더 환해진 것 같아요.사실 전 당신이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어요. 테리 보더?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죠.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라는 전시(12월 30일까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던 영화의 아류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당신의 흥미진진한 작품사진들이 펼쳐지는 게 아니겠어요?
식빵, 계란, 달걀, 바나나, 손톱깎이…. 일상의 소재들에 철사로 만든 팔 다리가 달렸는데, 사람처럼 악수도 하고 축구공도 차고. 당신이 궁금해졌어요.》
컵케이크 유산지로 메릴린 먼로를 형상화한 ‘메릴린 컵케이크’.
당신을 만난 첫인상은 평범한 미국 아저씨였죠. ‘시카고에 사는 52세 남성.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뒤 14년을 광고 사진가로 살았으나 오직 광고주님 뜻만 받들어야 하는 직장생활에 환멸을 느껴 굿바이. 그래도 인생에 보험은 필요하겠다 싶어 제빵사 자격증 취득. 2006년 슈퍼마켓 빵집에서 일할 때 레몬을 사 와 자신의 첫 구부리는 철사 아트 시작.’아, 인간적 친밀감이 확 밀려왔어요. 당신의 첫 작업이라는 ‘우편주문 신부’, 그것도 참 기발하더군요. “슈퍼마켓 레몬 선반을 지나는데, 진짜 레몬도 있고 레몬주스가 담긴 레몬 모양 통도 있었어요. 진짜 레몬은 가짜 레몬과 있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외로운 진짜 레몬이 마치 섹스 로봇을 사듯 가짜 레몬을 우편으로 주문해 받는 장면을 상상해봤어요.(웃음)”
해바라기 꽃잎을 자르고 붕대를 감아 반 고흐로 표현한 ‘해바라기 화가’.
일상 소재에 철사로 팔과 다리를 달아 사진을 찍는 당신의 ‘비주얼 스토리텔링’은 유머러스하고 따뜻해요. 제목은 또 어쩜 그렇게 낭만적인가요. “컵케이크 유산지가 바람에 휘날려 위로 뒤집히는 걸 보다가 영화 ‘7년 만의 외출’의 메릴린 먼로를 떠올렸어요”(작품명 ‘메릴린 컵케이크’), “두 개의 과자가 포옹하는 순간을 담았어요”(‘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무엇보다 당신으로부터 사랑을 배워요. 토스터 안에서 건배(영어로 toast)하는 두 식빵, 다 타서 꺼지는 순간까지 서로에게 온기가 돼 주는 두 촛불의 모습에서 말이에요.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같은 사랑에 관한 소설들을 꺼내 읽어봤다니깐요.
두 개의 과자가 크림으로 맞붙는 걸 담은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 사비나미술관 제공
당신의 말이 귓가에 맴돈답니다. “아내는 처음에 경악했어요. ‘남편이 회사를 관두더니 과일과 장난감 모형을 갖고 논다’고. 그런데 지금 참 행복해요. 제 스스로가 즐겁고 이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일상의 사물을 열 번 정도 관찰해 보세요. 전혀 다르게 보일 거예요.”보더 씨, 저는 며칠 전 가을 연시를 샀습니다. 네 개씩 두 줄로 직사각형 접시에 담아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한 친구가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레고 같다.” 그때 생각했어요. 보더 씨를 흉내 내 ‘레고 감’이라고 제목을 달아보면 어떨까 하고. 앞으로 사물을 보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할 것 같아요. 위트 있는 당신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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