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루이뷔통과 함께하는 19세기 파리로의 여행

곽도영 기자

입력 2017-06-15 03:00 수정 2017-06-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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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DDP에서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전시
루이뷔통이 걸어온 160년 여정 담아… 8월 27일까지


16세의 목수 루이뷔통

전시실 초입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사면이 목재로 마감돼 있고 낡고 둔탁한 나무 트렁크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1835년 14세의 루이뷔통은 스위스 국경에 인접한 산골 마을 앙쉐를 떠나 2년을 걸어 파리에 도착했다. 그는 꿈꾸는 목수였다.

루이뷔통은 파리의 전문 상자 제작자 밑에 들어가 도제로 일하며 트렁크 제작 기술을 배웠다. 1854년 처음 메종을 설립했고 점차 당대 외제니 황후 등 저명인사들의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

신디 셔먼의 화장품 데스크 트렁크. 루이뷔통코리아제공
나무의 방 초입에 놓인 트렁크 한 대가 루이뷔통의 실험 정신을 대변한다. 기존의 트렁크들은 빗물이 잘 흘러내릴 수 있도록 위가 반원형으로 불룩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루이뷔통은 방수가 가능하고 내구성이 강한 소재를 이용해 최초로 윗면을 평평하게 한 트렁크를 만들어냈다. 선적과 운반이 편한 직육면체의 트렁크는 여행길의 혁신을 이끌었다.

‘L’과 ‘V’가 교차된 루이뷔통의 대표 심벌 모노그램의 첫 등장도 이 방에서 볼 수 있다. 검은 목재 트렁크들 사이에 자리 잡은 첫 번째 모노그램 캔버스 트렁크는 1896년 루이뷔통의 아들 조르주 뷔통의 작품이다. 루이뷔통의 모노그램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경의에서 태어난 셈이다.

여행의 시작

트렁크들의 방을 지나면 메인 테마인 ‘원정’이 시작된다. 첫 번째 여행지는 모래 언덕이 끝없이 이어지는 아프리카 건조지대다. 루이뷔통은 전 세계를 누비는 탐험가들을 위해 모래 바람에 버틸 수 있는 구리와 아연으로 만든 트렁크를 내놓았다. 트렁크에서 펼쳐지는 간이침대의 낡은 매트리스, 정갈한 티 세트가 19세기 탐험가들의 밤을 말해주고 있다.

요트 시대의 도래.
사막을 지나 관람객들은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요트의 방에 도착한다. 20세기 초는 자유 항해의 시대였다. 웅장하게 펼쳐진 닻 아래로 당대 귀족 요트 여행가들의 호화스러움이 묻어난다. 갑판 위에는 여행 중인 여성들이 하루에도 수차례 갈아입었던 파티복과 평상복, 코트가 늘어서 있다. 그들이 입고 벗은 옷들을 담은 세탁물 가방이 오늘날 루이뷔통의 대표 제품 스티머 백의 시초가 됐다. “여행 다닐 때는 왜 깨끗한 옷과 세탁할 옷을 같이 보관하십니까?” 1911년도 루이뷔통의 삽화 광고 문구였다. 아래가 넓은 사다리꼴의 튼튼한 소가죽 스티머 백은 귀족 여행객들의 세탁 가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여행자들은 도로로 나서게 된다. 아스팔트처럼 꾸며진 전시실 바닥에는 차로변경선이 그어지고 그 끝엔 숲들이 펼쳐진다. 해질녘의 도로를 떠올리게끔 조명은 은은하게 연출했다. 초기 자동차 트렁크들은 타이어와 운전기사용 수리도구 키트, 야외용 티 세트를 담은 채 오랜 주행을 멈춰 있다.

스테판 스트라우스의 그래피티 키폴백

다음 방에 들어서면 낯익은 쌍엽기가 관람객을 맞는다. ‘가볍게, 더 가볍게.’ 또 다른 루이뷔통의 대표 제품, 키폴백이 탄생한 배경이다. 1930년 처음 등장한 면 소재 원통형의 가벼운 여행가방은 활동적인 1인 여행의 새 역사를 열었다.

여정의 마무리는 푹신하고 긴 카우치가 놓인 ‘기차의 방’이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들을 스크린으로 묘사해 실제로 흔들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있는 느낌을 준다. 쇼윈도는 열차 칸처럼 길게 이어지고 고전적인 가죽·황동 가방들이 그 안에 실려 있다. 맞은편 벽에 붙어 있는 19세기 호텔의 패치들이 지나간 세월을 기린다. 시간이 기차 레일 소리와 맞물려 달린다.

루이뷔통의 사람들

몽환적인 여행을 끝내고 나면 보다 명료하고 살아있는 루이뷔통이 모습을 드러낸다. 160년 동안 루이뷔통을 입고 들고 함께했던 이들, ‘루이뷔통의 사람들’이다.

루이뷔통은 당대의 저명 예술가 및 디자이너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왔다. ‘페인팅 트렁크’ 전시실에는 이들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루이뷔통의 정체성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실 초입을 장식하고 있는 흰 바탕에 총천연색 루이뷔통 모노그램 캔버스 ‘아이 러브 슈퍼플랫 화이트’는 2003년 일본 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와 협업한 작품이다. 다카시는 루이뷔통 모노그램을 처음으로 재해석해 마크 제이콥스로부터 ‘예술과 상업 간의 기념비적인 조우’라는 찬사를 받았다. 예술가들의 궤적을 따라가며 의상 박스와 화장품 데스크, 명화 캔버스로 변신한 루이뷔통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김연아 선수를 위해 특별제작된스케이트트렁크. 루이뷔통 코리아 제공
루이뷔통과 함께한 유명인사들이 전시의 마지막을 배웅한다. 1926년 스웨덴 여배우인 그레타 가르보가 쓴 것으로 알려진 슈즈 트렁크, 1952년 크리스찬 디올을 위해 제작된 슈트케이스가 화려하게 펼쳐져 있다. 지난해 배우 배두나 씨가 유니세프 자선 갈라 쇼에서 입은 블랙 드레스와 배우 윤여정 씨의 트렁크, 김연아 선수를 위해 특별 제작된 푸른색 스케이트 트렁크 등 반가운 이름들도 눈에 띈다. 그들도 루이뷔통의 얼굴이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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