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근 이라는 위대한 탄생

여성동아

입력 2016-11-17 12:45:00 수정 2016-11-23 16: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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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3〉으로 데뷔해 〈복면가왕〉 〈듀엣가요제〉를 석권하며 ‘역주행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한동근. 그가 이제 음악이라는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한다.


평소에는 무한 긍정의 에너지와 꾸밈없는 말투로 좌중을 배꼽 쥐게 만들지만, 무대에만 오르면 풍부한 감성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심금을 울린다. 지난 4월부터 방송된 MBC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 〈듀엣가요제〉에서 일반인 최효인 씨와 짝을 이뤄 최다 우승을 기록한 가수 한동근(23) 얘기다. 지금까지 4승을 거둬 한 번 더 우승하면 첫 명예 졸업의 영예까지 안는다.

2014년 발표한 데뷔 앨범 타이틀곡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는 최근 음원 차트에서 가파른 역주행을 하고 있다. 〈듀엣가요제〉를 통해 팬 층이 두꺼워진 덕분이다. 얼마 전 그에게 지상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1위의 기쁨을 안긴 곡도 바로 그 노래였다.

한동근은 그동안 가요 경연 무대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다. 2013년 MBC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3〉(이하 〈위탄〉)에서 ‘리틀 임재범’이라는 애칭을 얻었을 정도로 매회 파워풀한 가창력을 선보여 화제를 뿌리고 최종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지난 4월에는 ‘투표하세요’라는 이름으로 〈복면가왕〉에 출연해 ‘우리동네 음악대장’ 하현우의 6연승을 위협하는 최종 가왕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어쩌면 〈듀엣가요제〉에서 역대 최다 우승을 기록한 것도, 파트너로 최효인 씨를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닌 운명인지 모른다.

“원래 출연자인 정인 선배님이 임신으로 출연하기 곤란해져서 후보로 대기 중이던 제게 기회가 온 거예요. 대타였죠. 그 덕분에 정인 선배님이 선택한 파트너인 효인 누나를 운명처럼 만났는데 누나가 저와 음악적으로도 잘 맞고 처음부터 편했어요. 더구나 〈위탄〉보다 더 힘든 방송 준비를 함께하며 동고동락해서 그런지 꼭 친누나 같은 느낌이에요.”


두 달 만에 10kg 감량하고 무대에 서

그는 〈듀엣가요제〉에서 전보다 한층 날씬해진 외모로도 화제를 모았다. 〈복면가왕〉에 출연한 자신의 퉁퉁한 몸집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강도 높은 다이어트를 한 덕분이다.

“아침 한 끼만 먹고 굶었어요. 밤에 배고파서 잠이 안 오면 먹고 싶은 야식을 시켜 문고리에 걸어달라고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먹었죠. 운동도 거의 안 했는데 두 달 만에 체중 10kg을 감량했어요. 하지만 외모 콤플렉스를 완전히 떨친 건 아니에요. 사춘기에 생긴 여드름 자국은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아도 쉽게 없어지지가 않네요. 하하.”

원래 그의 꿈은 가수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드럼을 배워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드러머를 꿈꿨다. 하지만 부모의 반대가 심해 꿈을 접고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이제 막 사춘기를 맞은 소년은 떨쳐내기 힘든 외로움을 견디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학교 수업 끝나고 할 것이 없어서 시간 때우려고 혼자 외딴길을 하염없이 걸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해요.”

방황은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계속됐다. 당시 그는 학업에 소홀해 중학생 수준의 1차 방정식도 풀지 못했다. 학교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이 학교 개교 이래 처음으로 졸업식에서 노래한 한국인이 됐다.

“성적이 아주 좋아야 졸업식에서 노래할 수 있는데, 1학년 2학기부터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고등학교 4년 동안 배워야 할 과정을 2년 반 만에 끝냈거든요. 그게 다 제가 홈스테이를 하던 집 주인과 거기서 만난 그룹 과외 선생님의 따뜻한 보살핌과 지도 덕분이에요. 수학과 영어를 모두 토론 형식으로 배우다 보니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집 주인 아주머니는 제게 제2의 어머니 같은 분이에요. 공부를 못한다고 구박하기는커녕 제가 놀기 좋아하니까 오히려 더 실컷 놀아보라고 하시고, 늘 저를 믿고 격려해주셨어요. 너무 먼 미래까지 걱정하지 말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요.”

그 집에서 당시 그와 함께 홈스테이를 하던 형들도 모두 성적이 많이 올라 명문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한동근도 대학에 가서 농경학을 전공해 연구원이 되고 싶었지만 병역 문제와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귀국했다.

“형이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공대에 다녔는데 석사과정을 계속 밟느라 학비가 엄청 많이 들어갔어요. 그래서 저까지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는 건 경제적으로 무리였죠.”

귀국 후 그는 실용음악 학원에 다니며 취미로 작곡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학원 원장이 〈위탄〉 출연을 권유했다. 그때까지도 가수는 한 번도 고려해본 적이 없는 꿈이었다. “방송에 적합한 외모가 아니라서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위탄〉에 첫 등장할 때부터 그의 무대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어린 나이에 담을 수 없는 감성을 노래에 녹여내는 그를 보노라면 가수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현재 소속사인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의 대표도 그런 재능에 반해 방송 1회부터 그에게 눈독을 들였다. 우승한 후 그 사실을 알게 된 한동근은 그에게 손을 내민 여러 기획사들의 제의를 뿌리치고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이후 앨범도 세 장 냈다. 하지만 반짝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뮤지컬에서도 활약했지만 방송 출연을 하지 않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것. 그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일주일에 한 번씩 선배들의 노래를 편곡하거나 작곡해서 팬 사이트에 올리는 것으로 허전함을 달랬어요. 이대로 잊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유학 시절에 ‘제2의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처럼 매일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좋은 기회가 올 거라 믿었죠.”

그의 믿음처럼 〈듀엣가요제〉는 그에게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줬다.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시청자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역주행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한동근. 앞으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써나갈까.

“지금 당장 대학을 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대학은 마흔 살 넘어 배우고 싶은 게 꼭 생기면 그때 갈 거예요.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것도 좋고, 음악을 새롭게 만들거나 편곡하는 과정도 흥분될 정도로 재미있어요. 준비 중인 새 앨범에는 자작곡도 좀 넣으려고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음악에만 전념하고 싶어요. 그래서 음원 차트에 제 이름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누구나 한번 들어봐주는, ‘믿고 듣는’ 가수로 인정받고 싶어요.”


사진 제공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디자인 김영화


editor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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