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친퀘테레서 겪은 ‘머피의 법칙’ … 베로나의 로망스 ‘오페라’ 공연

입력 2016-04-08 16:41 수정 2017-01-1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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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북과 다른 열차시간에 직통열차 3번 놓치고 연착까지 … 연인과 와인하러 ‘다시 가고 싶은 곳’


#. 친퀘테레 : 머피의 법칙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발권하면서 이탈리아 여정은 고정되는 분위기였다. 틀에 박힌 일정은 나를 다시 한국인으로 변모시켰다. 정해진 일정은 여행비를 절감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물이 가득 찬 유리어항 속에 갇힌 듯 조급하고 갑갑하기 마련이다.

이탈리아의 비싼 대중교통 비용을 줄이려면 ‘사전 예약 시스템’을 구입하는 것을 권할 만하다. 이곳에 오기 전 ‘트랜 이탈리아’(고속철도 예약 사이트)를 통해 주요 구간 티켓을 아주 싼 가격으로 예약했다. ‘슈퍼이코노미’라 불리는 열차의 티켓 가격은 9유로(약 1만2000원) 수준으로 기존 가격에 비하면 파격적인 금액이다.

피렌체의 불편함을 잊을 즈음 떠날 시기가 찾아왔다. 친퀘테레 행 기차를 타기 위해 산타마리아 노벨라역으로 향한다. 발걸음은 ‘지긋지긋한 관광객들이여 안녕’을 표현하듯 가볍다. 지난 밤 가이드북에서 본 친퀘테레에 대한 극찬을 본 뒤 떠날 생각에 입가에 미소마저 번진다.

친퀘테레는 이탈리아어로 다섯이라는 뜻을 가진 ‘친퀘(Cinque)’와 마을을 뜻하는 ‘테레(Terre)’는 해석 그대로, 북서부 리구리아 해안 일대 위치한 5개의 마을이다. ‘몬테로소(Monterosso al Mare)’를 시작으로 ‘베르나차(Vernazza)’, ‘코르닐리아(Corniglia)’, ‘마나롤라(Manarola)’, ‘리오마죠레(Rioma ggiore)’가 그 주인공이다. 해안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을 이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철도뿐이다.

나의 행운은 저렴한 열차표를 구매하는 데 모두 써버린 게 분명했다. 당일 오후 8시, 밀라노행 기차에 탑승하기까지 나는 총 3번의 기차를 놓치고 연착까지 당하는 해프닝을 겪으며 겨우겨우 관광을 마칠 수 있었다.

피렌체역에서 티켓 각인을 위해 대합실의 펀칭기계로 향하는 동안 ‘라 스페치아(La Spezia)’행 직통 열차는 이미 떠났단다.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다음 환승열차로 바꾼다. 친퀘테레를 즐길 시간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피사를 경유하는 3시간짜리 열차에 오른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 피사역에서 또 두 번째 열차를 놓쳐버렸다. 환승센터에서 배고픔에 여행자의 마지막 자존심 ‘맥도널드’에 방문했다. 열차 지연 안내 문구를 보고 여유를 부렸다가 이내 열차가 출발한다는 호각소리에 거금 7유료(약 9500원)짜리 빅맥세트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가봤지만 기차가 이미 떠난 뒤였다. 장기여행자로서 이탈리아 여정에 흥미를 잃어버린 것인지, 여행 베테랑이라고 거만한 마음을 먹다가 실수했는지 알 수 없는 결과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지역열차로 갈아타는 ‘라 스페치아(La Spezia)’에 도착한다. 힘들게 도착한 만큼 나의 기대치는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하지만 나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여행 안내책자엔 ‘몬테로소 행 열차는 평균 한 시간에 2~3대 운영한다’고 돼 있었지만 실제 스케줄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짐을 보관하는 동안 유난히 불규칙적인 지역열차(Regionale train)가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떠나버렸다.

나는 이후 45분 동안 플랫폼에 멍하니 앉아 황금 같은 시간을 흘려보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역이 북적거려지며 다시 마지막 열차에 발을 딛는다.

친퀘테레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후 관광객 등살에 시달리는 곳이다. 바로 내가 그 중심에 있다. 조금 과장하면 마을로 향하는 기차의 모습은 서울 출퇴근 2호선 신림역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붐볐다.

가까스로 몬테로소에 도착했지만 어느새 오후 2시다. 이른 아침에 출발했음에도 둘러볼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다음 마을로 향하는 열차가 도착하는 고작 30분의 시간 제약이 나를 옥죈다. 서둘러 역 밖으로 나간다. 맑은 바닷물과 긴 해안을 따라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과 촘촘히 박혀 있는 파라솔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라고 느껴지는 게 여행 중 경험한 비슷한 것들에 다소 무뎌진 듯하다.

다시 ‘베르나차’ 역에 도착해 우르르 사람들이 내리자 난 서둘러 역무원에게 다가간다. 그는 나에게 한 시간 후에 있는 다음 열차의 스케줄을 알려준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결국 작은 해변과 항구를 가진 이곳을 패스하고 와인으로 유명한 언덕위의 마을 ‘코르닐리아’에 도착, 버스 탑승 입구까지만 가서 훔쳐보고 돌아왔다.

결국 남은 모든 시간을 ‘마나롤라’에 할당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나라도 제대로 보고 오겠다는 의지에서다. 역에서 나와 트레킹 간판을 따라 걷다보니 친퀘테레를 소개하는 대표 사진에서 본 듯한 풍경이 눈에 찬다. 절벽위에 새워진 마을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답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잠시 시간을 잊은 과거의 여행자로 돌아간다.

밀라노 행 기차를 기다리며 오늘 하루 벌어진 일들을 돌이켜본다. 겉핥기식의 책 정보에만 의존하고, 여행자의 헛된 자신감이 준 최후의 일격 덕분에 맥이 풀렸다.

이곳을 찾을 여행자라면 분명히 알아야 할 몇가지 사실이 있다. 우선 피렌체에서 당일치기로 여행하는 것은 단지 ‘사진 찍기’에 불과하다. 시간적 여유를 두고 숙박하며 트레킹을 즐겨볼 것을 권한다. 또 친퀘테레 마을 사이를 운행하는 지역 열차는 드물다. 정확한 스케줄을 모르면 상당히 고전할 것이다. 모든 상황이 여유롭고 완벽할 때 이 곳은 더욱 환상적인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의 불운은 밀라노 행 기차의 50분 연착과 도착 후 2시간 동안 숙소를 찾아 헤매며 새벽 2시에 겨우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무사히 끝났다.


[TIP]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1시간 도보 코스의 ‘코르닐리아 ~ 마나롤라 ~ 리오마조레’ 구간트레킹을 추천한다. 마을사이의 산책로 입장과 기차 탑승을 할 수 있는 친퀘테레 카드는 ‘라 스페치아 역’에서 구입할 수 있다. 성인 1일 기준 12유로(약 1만6000원)다.


#. 베로나 : 한여름밤의 꿈 오페라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베로나에는 이곳만이 가진 특별함이 있다. 베로나 브라광장에 있는 2000년 역사를 가진 고대원형 경기장 ‘아레나 디 베로나’(Arena di verona)에서는 매년 6월 셋째 주 금요일부터 8월 마지막 주 일요일까지 유명한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 오페라에 문외한이지만, 한 나라의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은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이기에 축제에 참가했다.

밤 9시, 이탈리아의 한 여름의 열기는 사그라지지만 원형 경기장의 조명과 달빛은 여전히 눈부시다. 공연의 숨은 공신인 연주자와 중후함을 풍기는 턱시도 차림의 지휘자가 등장한다. 이내 관객들은 촛불에 불을 붙여 공연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축제를 시작한다. 성악가의 장엄한 목소리가 울리며 2만 관객들의 시선이 무대에 집중된다.

베로나에 머무는 동안 라트라비아타(La Traviata), 나부코(Nabucco), 아이다(Aida)를 관람했다. 유명한 작품이라도 가격적인 측면에서 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 내가 선택한 D,E 석은 30유로 수준으로 돌방석이지만 관람에 크게 지장은 없다. 오페라 특성상 인물의 얼굴보다 줄거리와 음악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3시간 정도 지속되는 공연 동안 마이크 하나 사용하지 않고 원형극장을 가득 매운 이들에게 전달하는 감동의 생생함은 완벽 그 자체다.

한여름 축제의 장이 열리면 베로나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인다.

하지만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므로 이해하는 데 어려운 측면은 있다. 졸리거나 따분한 장면도 있지만 공감대가 형성되면 다시 재미가 찾아온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여행 중 항상 통한다. 사전에 ‘막과 장’의 내용을 핸드폰에 담아갔다. 현재의 무대상황이 뜻하는 바와 성악가들이 소리 높여 외치는 목소리, 관객들의 열광에 대한 이유가 보인다.

여행자는 누구나 좋은 기억만 가져가려 한다. 나는 베로나를 떠나 로마를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탈리아는 여전히 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콜로세움과 판테온, 포룸 로마눔 등 고대 유적지로 가득 찬 로마 역시 끝까지 실망을 주었다. 지저분한 길과 세련미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낡음, 불법 이민자들의 천국, 중국 여행객 등 관광객들의 대거 점유 등은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

하지만 베로나의 오페라만큼은 이탈리아에서 꼭 가져가고 싶은 추억이다. 비록 이번 여행에서는 멋진 정장을 입고 와인잔을 손에 들며 1등석에 앉지는 못했다. 이탈리아를 다시 찾는다면 오페라를 위해 거금을 투자할 의향이 있다.


#. 완생으로 향하는 길 : 새로운 시작

여행을 다니며 느껴보니 심경이 변하는 것은 크게 3단계로 구분된 듯했다. 현실에 대한 부정을 품은 채 떠날 설렘만 가득한 ‘여행 이전’,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사서 고생하는 ‘여행 중’,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다시 깨우치는 ‘여행 이후’ 등이 그 단계다. 한번의 경험을 통해 세 번의 성찰을 만드는 게 여행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다.

나는 새로운 환경이 주는 기회와 자아의 성숙함 발견을 모티브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잠시 한국을 잊었다. 돌이켜보면 여행은 매우 불편했다. 의식주를 항상 낯선 장소에서 해결해야 하며 모두 돈과 직결됐다. 형편에 맞춘 궁색함과 불편도 매번 따른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상당히 고되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여행이 꼭 좋은 것은 아니었다. 좋지 않은 기억을 선사할 수도 있다.

삶이 윤택해 질수록 ‘여행=진정한 행복’ 이라는 세태가 만연하다. 사람들은 잠시 일상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진정한 행복을 명목으로 여행을 꿈꾼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와보니 세계 어느 곳이든 사람 사는 세상은 비슷했다. 각국의 사람, 삶, 문화를 엿보는 여행은 진정한 행복이라는 수식과 맞지 않다.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긴 여정을 통한 나의 대답은 확고해졌다. 여행은 눈, 코 등 오감으로 느끼는 것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행 매순간 본래 나의 삶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미처 내가 가진 것의 중요함을 몰랐던 과거의 순간, 나는 진정한 미생이었다.

그것 자체가 나에게 불안감을 주고, 곧 내가 성숙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소중함에 항상 감사함을 느끼는 삶의 방식이 완생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미래 시점이 현재가 되는 순간에도 나는 지속적인 미생일지도 모른다. 정해진 방법은 없지만 정해진 답은 존재하듯, 내가 찾는 답은 앞으로도 하나일 것이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며 감사함과 소중함을 항상 느끼자. 때론 남들과 치열하게 살고, 때론 남들보다 여유롭게 쉬어갈 줄 안다면 진정한 완생의 길은 그리 멀지 않다.

글 = 장기백 여행칼럼니스트 eyebus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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