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박대 ‘미운 오리’에서 한국공항공사 A급 CEO가 되다

심규선대기자

입력 2015-06-25 12:04 수정 2015-06-2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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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23일 자신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햇병아리 기자 시절에는 누군가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는 게 힘들었다.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당사자의 반발이 염려돼서다. 기자경력이 쌓이면서 그런 걱정은 옅어졌다. 오히려 상대방이 거물일수록 투지가 살아났다. 그런데 기자생활이 길어지면서 쓰기 힘든 기사가 생겼다. 누군가를 칭찬하는 기사다. 혹시 내가 그 인물의 단면만을 본 것은 아닌지, 시간이 흘러 그가 부정적인 쪽으로 바뀌는 것은 아닌지가 걱정돼서다.

17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116개 공공기관의 2014년도 경영실적 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한국공항공사(KAC)의 김석기 사장(61)도 그랬다. 그에 대한 주변의 평가가 ‘너무 좋아서’ 오히려 인터뷰를 망설이기도 했다. 23일 그를 만나봤다.

먼저 1년 8개월의 사장 재직 중 힘들었던 때를 물어봤다. 이 질문에는 명백한 의도가 들어 있고, 그는 예상대로 답변했다. ‘명백한 의도’란 그의 이력에 관한 것이다. 그가 CEO로서 성과를 낸 것도 그의 이력과 겹쳐봐야 뉴스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김석기 사장(왼쪽)은 지난해 10월 7일 취임 1주년을 맞아 나종엽 노조위원장으로부터 취임 꽃다발을 받았다. 한국공항공사 제공

“역시 사장에 임명된 직후다. 노조가 천막까지 치고 출근저지투쟁을 벌인데다, 언론과 야당도 심하게 공격했다. ‘용산사건’의 유족들도 강력히 반대했다. 열흘 동안 집무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혹시 이러다가 일도 못해보고 쫓겨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많이 했다.”
그가 제10대 사장에 임명된 것은 2013년 10월 7일. 당시 그는 절대로 사장이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되는 ‘문제적 인물’이었다. 문제는 세 가지였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내려 꽂은 낙하산이며, 공항과 항공에 대한 비전문가이며, 경찰청장 내정자 겸 서울경찰청장 재직 시절 농성 중인 철거민을 진압해 사망에 이르게 한 ‘용산참사’의 주범이라고 공격받았다. 셋 중에서도 ‘용산참사’가 핵심이다. 관련 단체와 야당은 ‘용산참사’에 빗대 ‘인사참사’라는 말까지 했다. 반대성명과 공사 앞 시위도 잦았다.

그는 취임식도 하지 못한 채 김포공항 국제선 의전실에 야전침대를 놓고 업무를 시작했다. 당시 노조 사무처장으로 출근 저지 투쟁의 최선봉에 섰고, 지금은 위원장으로 있는 나종엽 씨의 말. “당시 김 사장은 외부적으로는 용사참사 때문에 국민과 언론에서 많이 반대했고, 내부적으로는 윤웅섭, 이근표 사장 등 서울경찰청장 출신이 연속해서 사장으로 오는데 대한 불만이 많았다.” 출근저지투쟁은 당연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나 위원장의 다음 말은 김 사장에게 ‘구원의 손길’이 됐을 법하다. 그는 “출근저지투쟁을 시작한 이튿날, 부위원장과 함께 김 사장을 처음으로 만났다. 경찰출신인데다 용산참사 이미지도 겹쳐 무척 완고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만나보니 의외로 부드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상외로 그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공항공사는 지난 1년간 6166만 명의 승객을 수송했다. 지난해 12월 19일 6000만 번째 승객과의 기념촬영. 왼쪽부터 중국인 호징원 씨, 김석기 사장, 일본인 스미지 유 씨. 한국공항공사 제공

그리고 취임 1년이 되던 날, 김 사장은 나 위원장으로부터 축하의 꽃다발을 받는다. 극적인 반전이다. 2013년 C등급이었던 경영실적도 그가 사장으로 온전히 일한 2014년은 A등급으로 뛰어올랐다.

경영실적 평가 A등급은 어떤 의미인가. 공공기관 평가는 최고 S등급부터 A, B, C, D, E까지 6단계. 2014년도 평가에서 116개 공공기관(공기업 30개, 준정부기관 31개, 강소형기관 55개) 중 S등급을 받은 기관은 지난해에 이어 한 곳도 없고, A등급은 15개 기관뿐(13%)이다. 공항공사가 속한 공기업 그룹 30개 중 A등급을 받은 곳은 7곳. 공사는 C등급에서 A등급으로 두 단계를 뛰었으니 자랑할 만하다. 공항공사는 수송, 안전, 재무, 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두루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모두 공항공사의 존재이유를 묻는 항목들이다.

A등급을 받은 데 대해 김 사장 본인의 감상을 물어봤다.

“사실 ‘낙하산’ ‘비전문가’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경영평가 기준이나 절차 등을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수험생 때보다 더 열심히 한 것 같다. 그러나 곧바로 좋은 점수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공기업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지를 고민하게 됐다. 공기업 직원은 투철한 국가관을 바탕으로 국민을 위해 서비스 마인드를 갖추는 게 우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여러 사업을 추진하다보니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평가 자체보다는 공기업의 본질에 충실했고, 평가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는 얘기다. 양방적 성형수술이 아니라 한방적 체질개선에 힘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극히 모범답안이다. 이 대목에서 제3자의 시각이 필요하다. 기자가 그를 인터뷰하기 전에 가장 먼저 떠올린 기사가 있다. 지난해 10월 세계일보 백영철 논설위원이 쓴 ‘좋은 낙하산도 있다’라는 칼럼이다. 좋은 낙하산이란 바로 김 사장을 말한다. 기자가 자기 이름을 걸고 누군가를 칭찬하기란 쉽지 않다. 동업자라서 잘 안다. 기획재정부 방문규 제2차관도 최근 한 중앙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우수경영사례로 한국철도공사(E→B)와 한국공항공사를 예시했고, 기획재정부 홈페이지의 관련 기사 제목도 15개의 A등급 기관 중 한국공항공사와 한국도로공사를 대표로 언급했다. 그를 편하게 만날 수 있었던 이유다.

‘미운 오리’는 그동안 어떤 변신을 꾀했는가. 공사가 준 기초 자료를 읽다가 ACI(Airports Council International·세계공항협회)의 평가를 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문득 김 사장의 성공도 ACI라는 이니셜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Achievement(성과), Communication(소통), Identity(정체성)이다.

우선 성과.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없으면 평가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비정하긴 하지만 당연하다. 그는 2014년 꽤 많은 성과를 거뒀다. 전년보다 11.6% 늘어난 7621억 원의 매출에 당기순이익 1735억 원을 냈다. 창사 이래 최대다. 이익으로 정부 돈 556억 원을 갚았다. 이용 여객수는 6166만 명(인천공항 4500만 명 포함해 1억 명 돌파)으로 전년에 비해 11.7% 늘었다. 대구 청주 무안 양양공항의 외국인 무비자 체류시간을 기존의 72시간에서 120시간으로 대폭 늘리고, 한국공항공사법을 개정해 저비용항공사(LCC·Low Cost Carrier)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사업영역을 확대한 결과로 분석된다.

이런 노력은 다른 보상도 받았다. 김포공항은 세계공항협회(ACI)가 주관하는 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5년 연속 세계 1위(연간 이용객 2500만 명 이하 공항 중)를 달성했고, 세계항공교통학회(ATRS)의 공항운영효율성 평가에서 김해공항은 아시아지역 1위, 제주공항은 2위, 김포공항은 5위를 차지했다. 정부 재난관리 평가 1위, 항공안전사고 4년 연속 제로, 항공보안사고 7년 연속 제로라는 기록도 갖게 됐다.

공항공사는 2010년부터 다문화가정 모국방문 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2014년 말 기준 789가정 2851명을 지원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20일 출국 전 다문화가정과 함께. 한국공항공사 제공

소통 분야도 화제를 낳았다. 김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CEO 우체통’이라는 채널을 만들어 완전히 비밀을 보장하고 직원들과 일대일 대화를 시도했다. 이 시도는 큰 호응을 얻었다. 기술직이 소외되고 있다는 말에 창사 이래 처음으로 기술직 간부를 핵심자리인 인사실장에 임명하고, 주요보직인 대구지사장, 청주지사장, 김포공항 의전팀장에는 여성을 기용했다. 세관 검색 소방 환경미화 등을 담당하는 공항의 상주기관과 협력업체도 껴안았다. 인권보호를 위해 화장실에 붙어있던 환경미화원의 사진을 떼도록 하고, 협력업체 우수직원의 해외연수도 배로 늘렸다. 협력업체 직원의 근무복도 유명디자이너에게 의뢰해 새로 만들었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지난해 6월 마스코트 ‘포티(Porty)’를 만들었다. 포티는 Airport(공항)와 Safety(안전)의 합성어. 김 사장은 1999년 서울경찰청 방범지도과장으로 재직할 때 경찰 마스코트 ‘포돌이’ ‘포순이’를 만든 주인공. 이번에도 만화가 이현세 씨와 손 잡고 캐릭터를 개발했다. 포티를 통해 공사를 알리고, 그를 통해 공사가 하는 일을 알리게 됐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1980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공항운영전문 공기업이다. 김포 김해 제주 대구 등 7개 국제공항을 포함해 전국 14개 공항(인천공항 제외)과 항로시설본부, 항공기술훈련원을 거느리고 있다. 공사 직원은 1800여 명, 협력업체 직원은 3500여 명이다.

그는 15일 처음으로 14개 공항 전부와 항로시설본부, 항공기술훈련원을 화상으로 연결해 주간경영회의를 열고 이 모습을 모든 직원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직원들에게 CEO의 경영철학을 직접 전파하는 동시에, 직원들도 경영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지방공항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그는 현재 지방공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방공항은 그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비행장이 아니라, 주민들의 편의성을 높이고 지역 경제와 관광에도 큰 영향을 주는 상징적인 기반 시설이다. 지방공항에 B737 비행기 한 대가 뜨면 4억 원의 생산유발효과를 가져오고 7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그는 적자 공항이라고 해서 곧바로 문을 닫는데 찬성하지 않는다. 꾸준히 시설투자를 하고 저비용항공사 등을 유치해 고객을 늘림으로써 독자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정체성 분야는 그가 오랫동안 제복을 입었던 경찰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대법원은 2010년 11월 용산 철거민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잘못은 없었다고 판시했다. 그가 용산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고 경찰청장 내정자와 서울경찰청장에서 물러난 지 20개월 만이다. 그 직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롤모델로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박정희 대통령을 꼽았다.

“공항공사는 국민의 공기업입니다. 나는 직원들이 꼭 가지고 지켜야 할 덕목으로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을 꼽습니다.”

그는 소신을 실천했다. 직원들에게 영화 ‘명량’과 ‘국제시장’, 안중근 의사를 그린 ‘나는 너다’라는 연극을 보도록 독려하고, 자신도 직원들과 함께 관람했다. 30일에는 ‘연평해전’을 단체관람할 예정. 그는 김포공항 관제탑과 빈 공간에 태극문양이 들어간 슈퍼그래픽을 그려 넣는 ‘애국심 프로젝트’로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공항공사는 지난해 6월 공항공사 마스코트인 ‘포티’를 만들어 공개했다. 김석기 사장과 만화가 이현세 씨의 합작품. 두 사람은 1999년 경찰 마스코트인 포돌이와 포순이도 함께 만들었다.


김 사장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고객을 안전하게 수송한다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장애인 고령자 어린이 임신부 외국인 등 교통약자의 편의를 증진하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를 정착시키고, 모든 구성원이 남을 배려하고 원칙과 약속을 중시하는 ‘젠틀 KAC(Gentle KAC)’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그는 공사의 장기비전으로 ‘월드 클래스 공항전문기업’을 제시해 놓고 있다. 다음 목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쪽도 챙기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올해 수송승객 7000만 명, 당기순이익 2000억 원이라는 목표도 내놓았다. 메르스 사태로 차질을 빚고 있지만, 가능할 것으로 믿고 있다.

김 사장은 김포공항을 동북아중심의 비즈니스 공항(Biz-Port)으로 만들기 위해 현재 리모델링을 하고 있고, 김포공항 내에 국내 최초의 자가용제트 항공기 지원센터(FBO)도 만들고 있다. 만성적인 조종사 부족현상을 줄이기 위해 울진 무안 공항 등의 유휴시설을 이용한 조종인력양성 사업도 준비 중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공복은 국민을 보고 일하는 게 당연하지만…”이라면서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내비쳤다. 임명 직후 힘들었을 때 ‘그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나를 임명한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에둘러 얘기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서 임명권자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그런 오기도 성과를 내는 데 한몫을 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듯하다.

대개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변화를 시도하면 구성원들은 대부분 ‘꼭 할 필요가 있어?’(부정)→‘나는 싫어!’(저항)→‘할 수 없지 뭐’(수용)→‘어떻게 해야 하지’(탐구)의 과정을 거친다. 김 사장의 리더십은 공사 조직원들의 마인드를 탐구의 초기 단계까지 끌고 온 듯하다. 그는 조직의 성공은 시스템과 리더십 중 어느 쪽의 영향을 더 받는가라는 논쟁에서 리더십의 중요성을 입증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리더십과 시스템은 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개인 리더십으로 바꾸어 놓은 공사 분위기를 시스템으로 정착시키는 것도 리더십의 역량이다.

그는 경북 경주 출신으로 영남대를 졸업하고 경찰간부후보생 27기(수석졸업, 대통령상 수상)로 경찰에 입문했다. 그 후 인천 연수, 서울 수서경찰서장, 경북과 대구지방경찰청장, 경찰종합학교장을 지냈다. 일본경찰대 본과 76기로 졸업한 인연으로 주일 한국대사관 외사협력관과 주오사카 총영사로도 일했다. 그는 경찰, 외교관, CEO라는 3모작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 재직했던 경험을 살려 한일관계개선에 도움을 주겠다는 의욕도 강하다. 김포공항을 통해 입출국하는 일본의 유력인사에 대한 의전에 특히 신경을 쓰는 이유다.

그에게도 실책이 있었을 것이다. 기자의 경험칙상 조직의 수장은 상당한 ‘갑옷 프리미엄’을 누린다. 현직에 있는 동안에는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실수가 있어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한번 나종엽 노조위원장을 등장시켜 기자의 게으름을 덮고자 한다.

나 위원장은 김 사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20년 이상 공사에 근무하면서 여러 사장을 겪어 봤다. 김 사장은 우선 소통능력이 두드러진다. 진정성이 있다. 우리나라 항공정책은 인천공항의 허브화에 무게를 두고 있어 지방공항에는 불리하다. 그런데도 공사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것은 김 사장의 공이 크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포인트를 알고 있고, 중심을 잘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마지막 말이 귀에 남는다. “내가 너무 칭찬만 했나요?” 그런 감이 없지 않지만 요즘 세상에 노조위원장이 사측 대표를 칭찬하는 것도 용기다. 자신의 판단이 맞다는 확신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그걸 밖으로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은 드문 사례다. 김 사장은 좋은 노조 파트너를 만나는 행운까지 챙긴 것 같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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