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다 지켜도… 환경오염 원인 의심되면 기업에 배상책임

동아일보

입력 2013-10-03 03:00 수정 2013-10-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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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대 국회 경제법안 995건 전수분석… 디테일 속의 ‘악마들’

“(법안이 통과되면) 세수 증대가 얼마나 될 거라고 봅니까.”(정의당 박원석 의원)

“저희 예상이 한 100억 정도….”(천홍욱 관세청 차장)

“고작 100억 원 세수 증대하자고 전 국민의 해외 신용카드 사용 내용을 관세청이 다 들여다본다는 게 말이 돼요?”(박 의원)

6월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선 새누리당 강길부 의원이 대표 발의한 관세법 개정안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해외에서 사용한 모든 신용카드 사용 내용을 월별로 여신금융업협회장이 취합해 관세청장에게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과세 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취지보다는 개인정보 침해라는 ‘디테일’이 문제였다. 이 법안은 여야 합의가 안 돼 조세소위에 계류 중이다.


○ 법안 속에 숨겨진 ‘악마들’

19대 국회 출범 이후 발의된 경제 관련 법안을 분석한 결과, 취지는 좋지만 세부 조항에서 기업이나 국민을 옥죄는 법안들이 적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한 ‘환경오염 피해 구제법(피해구제법)’과 ‘자원순환사회 전환을 위한 촉진법(자원순환법)’이 대표적이다. 피해구제법은 환경오염 사고 발생 때 기업의 배상책임 등 피해제도 확립을 위해 발의됐다.

쟁점 조항은 ‘인과관계 추정제’. 해당 공장이 환경오염 피해를 일으킨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든다면 명확한 입증이 없더라도 해당 기업에 피해배상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계는 “사업자가 환경 규정 등을 제대로 지켰다면 피해배상 책임을 면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독일 환경책임법에도 인과관계 추정제가 있지만 적법하게 시설을 가동했다면 책임을 배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재활용을 극대화하자는 취지로 발의된 자원순환법은 폐기물을 일정 규모 이상 배출하는 기업은 환경부가 지정한 일정 비율의 재활용 자원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과징금(자원순환부과금)을 내야 한다. 또 정부가 지정하는 기업들은 재활용 제품을 정부 지침에 따라 일정량 이상 사용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마찬가지로 ‘자원순환부과금’을 내야 한다. 이일석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전문위원은 “일본이나 독일처럼 재활용 목표관리제를 도입한 나라도 국가 차원의 목표만 있을 뿐 기업에 목표를 강제하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다.


○ 경제 활성화 법안은 발 묶여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추진키로 한 법안 중 상당수는 계류 중이다.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 176건 중 통과된 법안은 39건(22.1%)에 불과하다.

여상규 새누리당 의원이 5월 대표 발의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개정안은 지주회사가 증손회사를 두려면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주식 100%를 보유토록 한 현행 규정을 외국기업과의 공동출자법인에 한해 보유 지분을 50%로 완화하자는 것이지만 아직까지 처리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SK종합화학이 일본 JX에너지와 제휴해 울산에 지으려던 공장과 GS칼텍스가 일본 쇼와셸·다이요오일과 함께 전남 여수시에 지으려던 공장 프로젝트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두 프로젝트의 총 사업비는 2조3000억 원이다. 재계 관계자는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외국 기업들이 투자를 재검토하거나 철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진우·장관석 기자 p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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