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20주년… 전문가 설문조사

동아일보

입력 2013-08-05 03:00 수정 2013-08-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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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보완 필요하다” 76%… “차명계좌도 금지해야” 73%

“금융실명제를 실시하지 않고는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없습니다. 실명제는 개혁 중의 개혁이요, 우리 시대 개혁의 중추이자 핵심입니다.”

1993년 8월 12일 오후 7시 45분. 임시 국무회의를 마친 김영삼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금융실명제 실시를 전격 발표했다.

‘진정한 경제정의 구현’이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시작한 금융실명제가 실시 20년을 맞는다. 은행에 갈 때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 될 만큼 실명제는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차명거래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실명제 본래 취지인 지하경제 양성화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거래 당사자에게 실명거래 의무를 부과해 차명거래를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가족 간 또는 친목모임, 종중(宗中) 등에서 이뤄지는 이른바 ‘선의의 차명거래’까지 옥죄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법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강하다. 금융당국도 ‘검은 거래’를 막을 수 있는 보완책이 지금도 충분하다며 실명제 강화에는 부정적이다.


○ 금융 투명성과 공평과세에 기여

금융실명제는 1982년 당시 금융거래 사상 최대 규모의 어음사기 사건인 ‘장영자-이철희 사건’이 터지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해 정부는 실명제 실시를 골자로 하는 ‘7·3 조치’를 발표했지만 경제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10년 넘게 도입을 미뤘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잇따른 정치·사회 개혁조치가 국민의 큰 호응을 얻으면서 김영삼 대통령은 이른바 ‘개혁의 완성판’으로 실명제 실시를 전격 선언했다. 당시 실명제 작업에 참여한 양수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시장에 알려지면 혼란이 불가피하므로 비밀 유지가 생명이라고 판단했다”며 “김준일 한국은행 부총재보(당시 KDI 연구위원)가 긴급명령으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실명제 본래 취지를 두고 문제를 삼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무기명 채권 허용, 금융소득 종합과세 유보 등 실명제 완화 방안이 실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 여론과 국제통화기금(IMF) 권고 등에 힘입어 실명제는 3년여 만에 원위치로 돌아갔다.

동아일보가 3, 4일 경제·금융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28명이 ‘매우 성공적’ 또는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가명·무기명 금융거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금융은 실명’이라는 인식을 심어줬고,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시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세수(稅收)를 늘렸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금융거래의 투명성이 높아졌고 소득에 따라 공평하게 세금을 낸다는 인식이 퍼진 게 금융실명제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 실명제의 딜레마 ‘차명계좌’

최근 들어 실명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이재현 CJ 회장 등이 차명계좌로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게 드러나면서 차명계좌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상훈·조은아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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