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탓하지 말라” SK 代이은 자원개발… 年 1조원 매출 ‘황금알 거위’로 키우다

동아일보

입력 2012-10-17 03:00 수정 2012-10-17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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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 창립 50주년… 최종현-최태원 집념 재조명

“미얀마의 육상광구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밀림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헬기가 아니면 접근도 할 수 없어 필요한 자재도 모두 헬기로 실어 날랐죠.”

1989년 말 미얀마에서 석유개발에 착수했던 유공(현 SK이노베이션). 이 사업에 참여했던 이양원 전 SK이노베이션 상무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아득해진다. 미얀마 정부로부터 육상광구 개발권을 따내고 탐사에 나설 때만 해도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브리티시오일이 상대적으로 깊이가 얕은 지하 500m에서 원유를 생산한 적이 있는 곳을 후발주자인 유공이 글로벌 오일메이저들을 제치고 사업권을 따냈기 때문이다.

탐사작업은 외부와 단절된 열대우림에서 4년 동안 계속됐지만 상업성이 있는 대규모 유전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공은 1993년 말까지 모두 5600만 달러(약 619억6400만 원)를 쏟아 붓고 철수했다. 김항덕 전 SK그룹 고문은 “당시 이 금액이면 한국의 웬만한 기업을 인수할 수 있었지만 최종현 선대 회장은 실패에 대해 아무도 문책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SK이노베이션의 창립 50주년을 맞아 최종현 최태원 부자(父子)의 자원개발에 대한 집념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최 선대 회장이 1970년대 오일파동을 겪으면서 시작한 자원개발사업이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지난해 이 회사는 석유개발사업에서만 1조359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4941억 원의 영업이익도 냈다. 영업이익률은 49%에 이른다. 같은 해 자회사의 실적을 반영한 영업이익률이 4.2%라는 점에 비춰볼 때 석유개발사업에서 10배가 넘는 이익을 올린 셈이다.

SK이노베이션이 해외 자원개발사업에서 처음 성공을 거둔 것은 1984년 시작한 북예멘 마리브 유전사업에서다. 당시 지분을 인수한 지 5개월 만에 유전 한 곳에서 석유가 발견돼 1987년 12월부터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석유개발 사업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단기간에 거둔 성과였다.

행운은 계속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와 미얀마에서의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자 내부적으로 해외 자원개발사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 선대 회장은 “에너지 개발사업은 10년 이상을 기다려도 성공확률이 10%가 채 되지 않지만 미래를 위해 회사 이익의 15% 이상을 계속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미얀마 개발사업 당시 최 선대 회장은 가족도 없이 홀로 근무하는 직원들을 방문할 때 김치와 된장을 한 보따리씩 들고 다니기도 했다. 당시 현장에서 근무했던 정철길 SK C&C 대표는 “선대 회장께서 음식을 잔뜩 풀어놓으시면서 ‘가족을 못 데리고 왔는데 음식은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물었던 게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미얀마 사업에서 실패했지만 오히려 특진을 했던 정 대표는 “선대 회장은 실패 자체를 탓하거나 책임 소재를 묻지 않고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연구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해외 자원개발에 대한 선대 회장의 의지는 아들인 최태원 회장의 ‘경영 DNA’로 이어졌다. 최 회장은 2004년 초 해외 자원개발을 총괄하는 자원개발 및 해외사업(R&I) 부문을 신설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07년부터 베트남 콜롬비아 페루 브라질에 잇달아 진출해 현재 16개국, 26개 광구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최근 최 회장은 “기업이든 국가든 미래경쟁력의 핵심은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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