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재규어의 편안한 수퍼카 XKR-S

동아경제

입력 2011-08-08 07:38 수정 2011-08-0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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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11 터보와 정면대결 선언

시속 280km로 달렸다. 개인적으로는 기록을 깼다. 지난 1997년 벨기에에서 독일로 이동하면서 벤츠 E320으로 냈던 시속 270km보다 빨리 달린 것이다. 그 것도 오르막길에서다. 인터체인지에서 빠져야 하지만 않았어도 300km까지 달렸을 것 같다. 보잉 747 기종이 일반적으로 시속 250~300km에서 뜬다고 하니 비행기 이륙속도와 맞먹는다. 그런데도 심리적인 불안감만 있을 뿐 차체는 거뜬하게 이 속도를 받아낸다. 몇 년만 젊었더라도, 용기만 조금 더 있었더라도 차와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며 시속 300km까지 액셀 페달을 밟았을텐데. 역시 몇 살 젊은 동행자가 차를 더욱 재미있게 다룬다. 옆에 앉은 기자의 다리에만 힘이 잔뜩 들어간다.

포르투갈의 남부해안 휴양도시 파루에서 아시아지역 기자들을 대상으로 재규어의 2012년형 고성능 모델에 대한 드라이빙 이벤트가 최근 열렸다. XKR, XKR-S, XJ 수퍼스포츠, XFR이 행사에 등장했다. 국내에선 오토타임즈만이 유일하게 참가한 이번 이벤트의 주역은 뭐니뭐니해도 XKR-S였다. 파루 주변의 고속도로와 국도, 오토드로모 국제 서킷에서 이들 차를 고루 경험했다.

▲재규어의 고성능 모델 라인업
재규어 모델 가운데 이름 뒤에 ‘R’이 붙어 있다면 보통 차가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R은 해당 모델의 고성능 버전을 상징해서다. BMW M, 벤츠 AMG, 아우디 S버전에 도전하는 모델인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XFR과 XKR이 있다. 두 차는 재규어의 브랜드 철학인 ‘아름답고 빠른 차’를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재규어는 자사의 플래그십 모델인 XJ의 R버전도 개발중이다.


R버전의 특징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수퍼차저 엔진 장착이다. 수퍼차저는 자연흡기 상태보다 많은 공기를 압축해 실린더로 불어넣는 과급장치로, 출력을 극대화한다. 둘째, 향상된 주행성능에 걸맞는 고성능 R 브레이크 시스템 채택이다. 셋째는 R버전만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이다.

R버전만으로도 고성능차 반열에 오를 수 있음에도 재규어는 지난 3월 제네바모터쇼를 통해 브랜드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빠른 모델인 XKR-S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XKR-S는 역대 재규어차 중 가장 빠르고, 가장 민첩하며, 뛰어난 반응성을 보이는 모델이다. 회사측은 외관 스타일링부터 모든 성능 요소 하나하나까지 운전자 중심으로 개발했다고 강조했다.

▲정통 스포츠카 XK시리즈
엔지니어 빌 헤인즈의 최초 엔진에서 이름을 딴 XK시리즈는 재규어 스포츠카 역사의 결정체로, 재규어를 세계적 프리미엄 스포츠카 제조업체로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그 동안 세계시장에서 모두 9만대가 팔렸다. 쿠페와 컨버터블 두 가지 타입이 있다.

XK의 1세대 모델인 XK8은 1996년 제네바모터쇼에서 데뷔했다. 이 차는 V8 4.0ℓ 290마력의 자연흡기 알루미늄 엔진을 탑재했다. 이후 2005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2세대 XK가 등장했다. 이 차는 현존하는 재규어 스포츠카의 전통을 계승하는 적자라고 볼 수 있다. 100% 알루미늄 보디를 채용했고, 우주항공기술에서 사용하는 리벳본딩 방식으로 만든 차체가 특징이다. V8 4.2ℓ 엔진은 시속 100km를 5.9초에 주파한다.

새로운 파워트레인을 얹은 2.5세대 2011년형 뉴 XK는 프리미엄 GT(Grand Tourer)카로 회사측은 평가하고 있다. V8 5.0ℓ 엔진을 얹은 이 차는 최고출력 385마력과 최대토크 52.5kg·m를 내며 0→시속 100km까지의 가속시간을 5.5초로 단축시켰다. 보디는 물론 섀시에도 100% 알루미늄 합금을 사용했다. XK의 R버전인 XKR 2012년형은 같은 엔진에 슈퍼차저를 더해 최고출력 510마력, 최대토크 63.8kg·m, 최고시속 250km, 0→시속 100km 가속시간 4.8초를 발휘한다.


▲첫 선 보인 XKR-S
행사장 숙소로 사용한 리조트의 마당으로 나가자 쭉 늘어선 XKR과 XKR-S가 보였다. XK와 XKR은 자연흡기 엔진이냐, 수퍼차저 엔진이냐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XKR-S는 XK와 비교해 고속으로 주행할 때 균형적인 다운포스를 유지하기 위해 컴퓨터 유체영학을 광범위하게 적용했다. 헤드 램프가 좀더 날렵해졌고, 2개의 보닛 흡입구가 생겼다. 수평 디자인의 사이드 에어벤트도 있고, 사이드 실 디자인과 차체 높이를 10mm 낮췄다. 20인치로 휠 사이즈를 1인치 키웠고, 앞 15인치, 뒤 14.8인치의 레드 브레이크 캘리퍼를 채택했다. XK 라인업 중 최초로 리어윙도 장착했다.

그럼에도 XK와 한눈에 구별하기 힘든 다소 평범한 겉모양은 불만스럽다. 그 것만으로는 이 차의 특별함, 즉 '나 이런 차 타는 사람이야'라고 과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재규어측은 이에 대해 자사 고객 성향을 분석해 차를 만든 결과라고 소개한다. 재규어 고객들은 슈퍼카를 타도 덜 튀는 스타일을 선호한다는 것.

XK의 인테리어 역시 스포츠카답지 않게 평범한 편이다. 이런 디자인을 XKR-S도 그대로 이어받아 일반적인 세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차의 진가를 자랑하려면 그저 달리는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고급스러움은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다. 일부 카본 소재를 제외하고는 실내를 모두 가죽으로 덧쒸워서다. 변속기는 다른 재규어차와 마찬가지로 다이얼 방식이다. USB와 아이팟 잭을 갖춰 일반 세단에서 누릴 수 있는 편의성도 배려했다.

XKR-S의 시트는 운전석과 조수석 모두 16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다. 4방향 럼버 서포트 기능도 있다. 특히 옆구리만 따로 조여주는 기능이 장점이다. 버튼을 눌렀더니 앞좌석이 완벽한 버킷 시트로 변신해 운전자 몸을 제대로 잡아준다. 시트는 2+2로 4인승이지만 뒷좌석은 어린이나 애완동물을 태울 수 있겠다.

재규어에 따르면 XKR-S는 XK라인업의 기초가 되는 알루미늄 차체는 물론 서스펜션에 알루미늄 소재를 활용해 차의 성능, 민첩성, 연료소모량, 배기량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또 재규어의 어댑티브 댐핑 시스템을 위한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XKR-S 전용으로 만들어 최상의 핸들링 컨트롤과 접지력을 제공한다. 액티브 디퍼렌셜 컨트롤은 고속에서 스티어링의 민감도를 낮추고, 안전성과 운전자의 컨트롤을 높이도록 새롭게 프로그램화하는 등 재규어가 이제껏 개발한 차 중 가장 운전자 중심으로 만들었다. 실제 이 차를 타는 이틀 내내 동네를 산보하는 편안한 기분으로 운전할 수 있었다. 이는 GT카의 특징이기도 하다.

겉모양의 평범함에 대한 불만은 시동을 거는 순간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몸매 잘 빠진 '훈남'이 갑자기 짐승처럼 포효하기 때문이다. 배기음색은 시동을 걸 때와 일반적인 주행을 할 때, 액셀 페달을 밟을 때 각각 다르다. 시동을 걸 때 우렁차게 터지는 사운드는 일반주행 때 '갸르릉'거리는 정도로 유지되다가 액셀 페달을 밟으면 고주파의 폭발음을 들려준다. 이 차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더구나 각각의 소리는 잘 튜닝돼 운전자의 감성을 간지럽힌다.

운전대는 묵직하고 단단한 느낌이다. 여성 운전자도 불편하지 않으면서 운전자에게 안정감을 준다. 액셀 페달의 답력도 슈퍼카라고 해서 무겁지 않다. 운전하는 느낌은 일반 세단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 차를 경험하면서 내린 결론은 '넘치는 힘'이다. 힘이 터무니없이 많이 남는다. 이 힘을 다 어디에 쓸까 걱정될 정도다. 시속 150km라는 속도까지 순식간에 내달리고, 그 상황에서도 마치 시속 40~50km로 달리는 것처럼 평온하다. 시속 200km를 주파하는 것도 금방이다. 운전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마음 졸이지 않고 손쉽게 도달할 수 있는 속도다. 다만 파워나 속도를 감당할 배짱이 없어 액셀 페달에서 발을 떼게 될 뿐이다.


XKR-S는 V8 5.0ℓ 알루미늄 엔진에 트윈 보텍스 루츠-타입 슈퍼차저를 적용해 최고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69.0kg·m를 뿜어낸다. 출력과 토크가 XKR에 비해 10% 높다. 제원표 상 0→100km/h 가속시간은 4.4초, 최고속도는 300km/h다. 기자가 시승중 내본 최고속도는 시속 280km였지만 여건만 됐다면 더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자동 6단인 변속기에는 다이내믹 버튼이 있어 이를 누르면 차가 파워를 이어가며 더욱 힘있게 달리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이 커보이진 않는다. 일반주행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순발력을 과시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이 버튼을 누르면 알록달록한 색상의 아날로그 계기판이 붉은 색으로 바뀐다. 재규어가 흥분했다는 걸 표현한다고 재규어코리아 사장이 옆에서 설명한다. 슈퍼카의 성능을 내지만 변속충격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편이다. 킥다운을 시도해도 실시간으로 차가 튀어나간다.

서스펜션은 스포츠카임에도 전혀 딱딱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무른 것도 아니다. 적당한 편안함이 어떤 도로에서든 운전자를 피곤하지 않게 만든다. 안정성과 안락함이 어쩌면 이렇게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일반적인 주행에선 고급 세단처럼 도로에서 올라오는 잔진동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와인딩로드 주행에선 차와 운전자가 한 몸인 것처럼 정확하고 예리한 핸들링을 선보인다.

이 차에 장착된 피렐리 타이어도 놀랍다. 높은 속도를 견디는 건 물론 소음을 대부분 차단해 급격한 코너링에서도 비명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다. 그 만큼 접지력이나 진동을 흡수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브레이크 페달은 가볍다. 고속에서 페달을 밟아도 뛰어난 성능으로 차를 안정감있게 세운다. 그렇다고 차체가 심하게 쏠리지도 않는다.

연비는 EU 기준으로 도심에서 ℓ당 5.3km, 고속도로에서 11.6km다.

재규어 고성능차 개발담당자는 "재규어가 포드 자회사였을 당시 포드는 고성능차를 다른 자회사인 애스턴마틴에 전담시키고 재규어는 고급차 브랜드로만 육성하는 2원화 전략을 썼다"며 "그러나 재규어는 원래 모터스포츠로 단련된 브랜드인 만큼 포드에서 독립하면서 예전의 유전자를 되찾기 위해 R-S 모델을 개발했다"고 새 차를 만든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애스턴마틴 때문에 당했던 설움을 씻어내고 질주본능을 위해 탄생시킨 차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이 차의 경쟁상대로 포르쉐 911 터보를 지목했다. 성능 등 모든 면에서 자신있다고 관계자는 강조했다.

재규어코리아는 올 10월경 국내에 XKR-S를 4대 들여올 예정이다. 판매가격은 2억2,000만원대로 예상하고 있다. 판매실적보다는 재규어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대로 홍보하는 모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파루(포르투갈)=강호영 기자 ssyang@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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