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이진석 기자의 Car in the Film]팍팍한 일상과 함께 한 내 낡은 차의 추억
동아일보
입력 2013-05-21 03:00 수정 2013-05-21 08:11
사브 ‘900S’/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신문기자란 어느 나라건 꽤 비슷한 성격을 갖는 것 같습니다. 2003년 영국 B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를 영화화한 2009년작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에 등장하는 15년차 사회부 기자 캘 맥카프리(러셀 크로 분)는 제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기자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볼펜은 갖고 다니냐”면서 수습기자를 ‘갈구고’ 마감에 쫓기고 편집장에게 ‘쪼이면서도’ 마지막까지 새로운 사실을 파헤치려는 모습 말이죠.
워싱턴DC의 새벽을 가르는 맥카프리의 낡은 1990년형 사브 ‘900S’ 뒷자리는 쓰레기장이나 마찬가집니다. 아침 끼니를 대신한 너저분한 과자봉지와 날짜가 한참 지난 신문들이 기자의 팍팍한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고백하자면 수년 전까지 몰았던 제 낡은 자동차의 뒷자리가 딱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정치 스릴러의 전형적인 교본과도 같은 이 영화가 제게 특별한 이유는 역시 기자의 삶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진정한 기사와 쓰레기를 구분할 수 있다”는 맥카프리의 신념은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대 현실에 와 닿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무작정 몸을 부딪쳐가는 것도 최근의 달라진 취재환경에는 썩 효율적이진 못하죠.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이 불과 몇 분이면 인터넷과 TV로 타전되는 요즘에는 더욱이요. 그럼에도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진실을 쫓아 현장으로 달려가는 맥카프리는 제가 동경하는 기자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자의 일상이 화려해 보이기도 합니다. 스타 경영인이나 연예인 같은 유명인사들을 만나고 성대한 신차 발표회를 취재할 때, 공장에서 갓 나온 미끈한 고급차의 운전대를 거머쥘 때면 헛바람이 잔뜩 들어가죠. 기자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냉정한 관찰자라는 사실을 잊고 화려함에 도취되기란 너무도 쉽습니다.
가끔 쓰레기장 같던 수년 전 제 낡은 차의 뒷자리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정말 잊지 말아야 하는 게 무엇이며 종국에는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를 생각해 봅니다. “역시 이런 기사는 종이에 인쇄된 채로 봐야 제 맛”이라던 영화 속 수습기자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신문기자란 어느 나라건 꽤 비슷한 성격을 갖는 것 같습니다. 2003년 영국 B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를 영화화한 2009년작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에 등장하는 15년차 사회부 기자 캘 맥카프리(러셀 크로 분)는 제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기자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볼펜은 갖고 다니냐”면서 수습기자를 ‘갈구고’ 마감에 쫓기고 편집장에게 ‘쪼이면서도’ 마지막까지 새로운 사실을 파헤치려는 모습 말이죠.
워싱턴DC의 새벽을 가르는 맥카프리의 낡은 1990년형 사브 ‘900S’ 뒷자리는 쓰레기장이나 마찬가집니다. 아침 끼니를 대신한 너저분한 과자봉지와 날짜가 한참 지난 신문들이 기자의 팍팍한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고백하자면 수년 전까지 몰았던 제 낡은 자동차의 뒷자리가 딱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정치 스릴러의 전형적인 교본과도 같은 이 영화가 제게 특별한 이유는 역시 기자의 삶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진정한 기사와 쓰레기를 구분할 수 있다”는 맥카프리의 신념은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대 현실에 와 닿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무작정 몸을 부딪쳐가는 것도 최근의 달라진 취재환경에는 썩 효율적이진 못하죠.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이 불과 몇 분이면 인터넷과 TV로 타전되는 요즘에는 더욱이요. 그럼에도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진실을 쫓아 현장으로 달려가는 맥카프리는 제가 동경하는 기자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자의 일상이 화려해 보이기도 합니다. 스타 경영인이나 연예인 같은 유명인사들을 만나고 성대한 신차 발표회를 취재할 때, 공장에서 갓 나온 미끈한 고급차의 운전대를 거머쥘 때면 헛바람이 잔뜩 들어가죠. 기자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냉정한 관찰자라는 사실을 잊고 화려함에 도취되기란 너무도 쉽습니다.
가끔 쓰레기장 같던 수년 전 제 낡은 차의 뒷자리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정말 잊지 말아야 하는 게 무엇이며 종국에는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를 생각해 봅니다. “역시 이런 기사는 종이에 인쇄된 채로 봐야 제 맛”이라던 영화 속 수습기자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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