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자동차 이야기]시간 지날수록 끌리는 스바루의 ‘제품 철학’

동아일보

입력 2012-04-03 03:00 수정 2012-04-03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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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초 독일산 럭셔리 자동차를 판매하는 국내 딜러사 관계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일본 스바루의 한국 임포터(딜러에게 차를 공급하는 수입원)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달라는 것이었죠.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해외에선 스바루의 평판이 괜찮은지 몰라도 국내 인지도가 대단히 낮고,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 요소가 부족합니다. 단단히 각오를 하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결국 그 회사는 포기했고 2년 뒤 다른 기업이 스바루를 들여왔습니다.

그랬던 기자가 2011년 미국에 연수를 와서 구입한 차가 스바루의 ‘포레스터 2.5XT’입니다. 함께 구입한 현대자동차 ‘제네시스’는 후륜구동이어서 눈이 많이 오는 미국 동북부 지역에선 겨울철에 다니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사륜구동 자동차를 알아보다가 결국 출고 1년 된 중고 포레스터로 낙점을 했습니다. 스키를 좋아해서 눈길에서 성능이 뛰어난 사륜구동이 필요한 데다 1년 뒤 귀국해야 해서 빨리 팔리고 감가율도 낮은 편인 스바루 브랜드를 선택한 것이죠. 사실 미국 도로에서 포레스터가 생각보다 많이 보이는 점이 결심을 굳히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두 차례 시승을 했던 터라 차에 대한 느낌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고급형 세단인 제네시스와 자주 번갈아 타다 보니 실망감이 밀려오더군요. 승차감이 좋지 않고, 잡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리고, 값싸 보이는 인테리어에다 연료소비효율까지 제네시스보다 낮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긍정적인 측면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겉보다는 속이 든든한 이미지라고나 할까요. 외모나 편의장치보다는 사륜구동 성능과 기계적인 신뢰성을 높이는 데 더 투자를 해서 장기보유 고객에게 만족을 주는 스타일이었습니다. 20여 년간 고집스럽게 사륜구동과 안전성에 초점을 맞춰 기술개발과 마케팅을 펼치다 보니 마침내 고객에게 신뢰를 얻은 것이죠.

특히 폭설이 왔을 때 일반 사륜구동보다 앞서는 주행능력을 직접 경험하고선 눈이 많이 오는 미국 동부 지역과 캐나다 스위스 등에서 인기가 높은 이유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습니다. 딜러사에서 정비와 관련된 다양한 안내문에서부터 생일축하카드까지 보내 주고 정기점검을 받으러 갔을 때 서비스도 괜찮은 편이어서 스바루가 고객관리에도 꽤나 신경을 쓴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럭셔리 브랜드도 아니면서 연간 약 60만 대(도요타는 약 800만 대)밖에 생산하지 않는 작은 자동차회사가 각종 안전도 조사에서 최고 등급을 받고, 생산량의 절반을 까다로운 북미시장에 판매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는 뚜렷한 제품철학이 있으면 결국은 통한다는 것이죠. 한국의 자동차회사들은 어떤 철학으로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미국 노스헤이번에서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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