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던 진보 정치인의 몰락… 먹고사는 문제가 최우선이다[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입력 2025-01-11 10:00 수정 2025-01-11 10:00
9년 넘게 캐나다를 이끈 쥐스탱 트뤼도 총리(54)가 6일 사임을 발표했죠. ‘진보의 아이콘’으로 통하던 트뤼도의 몰락이건만, 아무도 놀라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잇따른 보궐선거 패배와 지지율 폭락(22%), 그리고 측근이던 재무장관 사임까지. 침몰 징조가 워낙 뚜렷했거든요.
임기가 길었던 만큼 추락의 원인도 여러가지인데요. 무엇보다 가장 큰 건 이겁니다. 캐나다 국민이 먹고살기가 점점 팍팍해진다고 느낍니다. 경제는 성장 없이 거의 제자리인데 생활비는 무섭게 뛰니까 말이죠. 환경·다양성 같은 가치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줄 지도자를 국민은 원하는데요. 트뤼도의 몰락으로 본 캐나다 경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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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요즘 캐나다 경제학자들은 “사실상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또 다른 지표, 1인당 실질 GDP가 무려 6분기 연속으로 하락했기 때문이죠. 이런 건 1982년 경기침체 이후 42년 만에 처음이라는군요. 그 6분기 만에 1인당 GDP가 3.5%나 쪼그라들었습니다. 나라 경제 전체로 보면 파이가 커졌지만, 국민 개개인의 몫은 점점 작아진 거죠.
도대체 얼마나 늘었냐고요? 2023년에만 127만명, 즉 3.2%가 추가됐습니다. 1957년(3.3%)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자, 현대 선진국에선 웬만해선 찾아보기 힘든 수치이죠. 증가한 대부분은 이민자이고요. 그중에서도 80만명 이상은 영주권이 없는 ‘임시 거주자’에 해당합니다. 유학생과 난민, 그리고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들이죠.
캐나다는 본래 이민자에 열려있는 개방적이고 관대한 나라로 유명합니다. 그 바탕엔 ‘이민이 국가 경제에 기여한다’는 믿음이 깔려있죠. 그리고 2015년 압도적 지지율로 10년 만의 정권 교체에 성공하며 집권한 트뤼도 총리는 이민에 문을 더 활짝 열었습니다. 이민자 수를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고요(연간 영주권자 2014년 26만명→2024년 50만명 목표). 난민을 대거 받아들이고, 임시 취업비자 문턱을 낮추고, 영주권도 더 잘 내주고, 가족도 데려오기도 쉽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친이민 정책이 캐나다 경제 성장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본 거죠. 그땐 유권자들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특히 2015년 시리아 난민을 공항에서 환영하며 맞이하는 젊은 총리의 모습은 엄청난 화제가 됐죠. “다양성은 캐나다의 강점”이라는 트뤼도 총리 발언은 전 세계를 감동하게 했고요. 그는 마치 진보 정치의 영웅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캐나다 국민들이 질려버린 트뤼도식 ‘쇼잉(showing) 정치’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지만요.
일단 실업률이 치솟습니다. 새로 진입한 젊은 이민자는 대부분이 바로 취업시장에 뛰어들죠. 하지만 이들을 다 수용할 정도로 캐나다 경제가 강력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이민 문턱이 낮아진 데다, 대학들이 유학생을 왕창 유치하면서 저숙련 근로자가 너무 많아진 것도 문제이고요.
2024년 11월 캐나다 실업률은 6.8%. 코로나 팬데믹 때를 빼면 2017년 이후 최고치입니다. 청년 실업률은 무려 14%에 육박하죠.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면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명색이 고등교육 비율 세계 1위인 나라인데,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난리인 상황입니다.
주택시장에도 적잖은 압박이 있습니다. 특히 매매시장보다는 임대시장이 2022년부터 넘치는 수요로 들썩거렸는데요. 지난 3년 동안 평균 임대료는 19%나 뛰었습니다. 최근 몇 달은 아파트 공급이 늘면서 임대료 상승세가 주춤했지만, 이미 젊은이들은 그동안의 임대료 폭등에 질렸습니다. 사실 냉정히 따져보면 임대주택이 모자라는 데는 다른 이유가 더 결정적이란 분석이 설득력 있긴 한데요(높은 금리, 건축비용 상승 등). 그래도 몰려든 이민자를 탓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2019년 캐나다 정부가 도입한 탄소세는 상당히 진보적인 환경정책입니다. 일단 모든 연료 구매에 세금을 부과하죠. 세금을 내는 건 주유소·도시가스업체 같은 기업이지만, 이는 결국 소비자 가격에 전가됩니다. 기름값이나 가스요금이 그만큼 오르죠. 탄소세는 가솔린 기준으로 1리터당 17.6센트(약 179원)였는데요. 2030년까지 해마다 조금씩(연간 약 3센트, 30원 정도) 인상됩니다.
아니, 왜 이런 번거로운 제도를 도입했을까요. 가계에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화석연료를 덜 쓰도록 소비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죠. 화석연료를 남보다 적게 쓰는 가정은 탄소세로 낸 것보다 더 많은 돈을 환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각 가정에서 자연스레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고 애쓰지 않을까요. 단순히 ‘쓰면 세금 낸다’는 처벌 방식이 아니라, ‘안 쓰면 돈 번다’는 인센티브 방식의 제도인데요.
탄소배출량을 줄이려는 이런 정부 차원의 노력. 취지는 참 좋습니다. 진보적인 환경정책의 세계적인 모델로 찬사를 받았죠. 물론 국민들도 처음엔 이를 지지했고요.
문제는 ‘소비자가 내는 세금=가정이 돌려받는 환급금’이라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쉽게 잊힌다는 겁니다. 즉, 분기마다 환급금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거야 당연히 좋은데요. 주유소에 갈 때마다, 가스요금 고지서를 받을 때마다 높아진 소비자 가격을 마주치면 본능적으로 분노하게 되는 거죠.
아무도 ‘탄소세 때문에 휘발유 가격이 뛰었네. 그럼 다음번에 내 환급금이 더 늘어나려나’라고 받아들이진 못하는 겁니다. 오히려 막연히 자신이 내는 탄소세가 돌려받는 환급금보다 많은 것 같다며 억울해하죠. 실제론 그런 가정은 전체의 20%밖에 되지 않는데도요. 또는 아예 환급금을 받은 걸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즉, 경제학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인 제도이지만 현실에선 생각했던 대로 작동하질 않는 겁니다.
또 다른 문제는 ‘그럼 탄소세 덕분에 탄소배출량이 얼마나 줄어들었어?’라는 질문에 똑 떨어지게 답하기 어렵단 겁니다.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한 정책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그중 얼마가 탄소세 덕분인지는 사실 명확하지 않죠.
대신 보수 진영은 탄소세 공격의 논리를 탄탄하게 쌓아가고 있습니다. 보수 싱크탱크 프레이저연구소는 ‘탄소세가 기업 부담을 늘려서 캐나다 경제를 최대 1.8% 위축시키고 일자리 18만개를 사라지게 만들 것’이란 전망을 내놨죠.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제 캐나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탄소세 철폐를 원합니다. 물가가 뛰고 먹고살기 팍팍해지니, 환경이란 대의보다는 내 지갑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해진 거죠. 아마 이들 유권자 상당수는 다가오는 10월 총선에서 야당을 찍어 탄소세를 끝내려 들 겁니다.
아무리 취지가 착하고 좋은 정책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은데요. 원래 국민은 자신의 어려움을 잘 살펴주고 공감해 주는 지도자를 원하는 법입니다. 소통할 줄 모른 채 ‘내가 옳다’고 고집만 피우는 정치인은 진보이든 보수이든 설 자리가 없게 되죠. 언젠간 트뤼도 정부의 유산이 재평가받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닙니다. By.딥다이브
인플레이션 쇼크는 종종 정권을 무너뜨린다는 이야기, 지난해 전해드린 적 있죠(‘물가가 바이든 잡겠네…정권 흔드는 인플레이션’). 영국과 미국에 이어 캐나다도 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됐습니다. 아무리 대의가 훌륭해도 민생을 챙기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9년 넘게 캐나다를 이끈 트뤼도 총리가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한때 전 세계적으로 빛나던 진보정치 스타의 추락은 무엇보다 먹고살기가 팍팍해졌기 때문입니다.
-트뤼도는 이민이 캐나다 경제의 해결책이라 믿었고, 이민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부터 이민자는 예상을 뛰어넘게 급증했고 이미 약한 캐나다 경제를 압박했습니다. 임대주택난과 청년실업에 시달리는 캐나다인은 이제 이민에 대한 열린 마음마저 닫고 있습니다.
-트뤼도의 진보적인 환경정책 탄소세는 빠르게 지지를 잃었습니다. 화석연료를 덜 쓰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훌륭했지만, 누구도 기름값이 높아지길 원하지 않습니다. 고물가 시대에 탄소세는 고통을 가중시키는 나쁜 정책으로 낙인찍혔고, 이제 유권자는 ‘세금 철폐’를 외칩니다.
*이 기사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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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임기가 길었던 만큼 추락의 원인도 여러가지인데요. 무엇보다 가장 큰 건 이겁니다. 캐나다 국민이 먹고살기가 점점 팍팍해진다고 느낍니다. 경제는 성장 없이 거의 제자리인데 생활비는 무섭게 뛰니까 말이죠. 환경·다양성 같은 가치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줄 지도자를 국민은 원하는데요. 트뤼도의 몰락으로 본 캐나다 경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1월 6일 캐나다 트뤼도 총리가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당 대표직 사임을 발표했다. 차기 총리가 결정될 때까지 총리직은 유지한다. 아버지도 총리였던 금수저 정치인 트뤼도는 취임 초기엔 큰 인기를 끈 스타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여러 크고 작은 스캔들로 이미지는 구겨졌고, 지지율은 추락했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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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동력이던 이민
요즘 캐나다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많이 얘기합니다. 그럼 경기침체에 빠진 걸까요? 따져보면 그건 아니죠. 경기침체란 단순히 경제가 어려운 게 아니라, ‘2분기 연속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마이너스’인 걸 말합니다. 캐나다의 2024년 2분기 GDP 성장률은 2.1%, 3분기는 1%. 모두 플러스였죠.그런데도 요즘 캐나다 경제학자들은 “사실상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또 다른 지표, 1인당 실질 GDP가 무려 6분기 연속으로 하락했기 때문이죠. 이런 건 1982년 경기침체 이후 42년 만에 처음이라는군요. 그 6분기 만에 1인당 GDP가 3.5%나 쪼그라들었습니다. 나라 경제 전체로 보면 파이가 커졌지만, 국민 개개인의 몫은 점점 작아진 거죠.
캐나다에선 요즘 GDP 성장률 대신 1인당 GDP 성장률을 주로 이야기한다. 2011년과 2012년 캐나다 1인당 GDP는 미국을 추월하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역전돼 점점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인구가 워낙 엄청나게 늘었기 때문이죠. 역대급 인구 급증 덕분에 1인당 GDP가 줄어드는 가운데도 경기침체는 벗어날 수 있었던 건데요.도대체 얼마나 늘었냐고요? 2023년에만 127만명, 즉 3.2%가 추가됐습니다. 1957년(3.3%)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자, 현대 선진국에선 웬만해선 찾아보기 힘든 수치이죠. 증가한 대부분은 이민자이고요. 그중에서도 80만명 이상은 영주권이 없는 ‘임시 거주자’에 해당합니다. 유학생과 난민, 그리고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들이죠.
캐나다는 본래 이민자에 열려있는 개방적이고 관대한 나라로 유명합니다. 그 바탕엔 ‘이민이 국가 경제에 기여한다’는 믿음이 깔려있죠. 그리고 2015년 압도적 지지율로 10년 만의 정권 교체에 성공하며 집권한 트뤼도 총리는 이민에 문을 더 활짝 열었습니다. 이민자 수를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고요(연간 영주권자 2014년 26만명→2024년 50만명 목표). 난민을 대거 받아들이고, 임시 취업비자 문턱을 낮추고, 영주권도 더 잘 내주고, 가족도 데려오기도 쉽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친이민 정책이 캐나다 경제 성장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본 거죠. 그땐 유권자들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특히 2015년 시리아 난민을 공항에서 환영하며 맞이하는 젊은 총리의 모습은 엄청난 화제가 됐죠. “다양성은 캐나다의 강점”이라는 트뤼도 총리 발언은 전 세계를 감동하게 했고요. 그는 마치 진보 정치의 영웅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캐나다 국민들이 질려버린 트뤼도식 ‘쇼잉(showing) 정치’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지만요.
2015년 캐나다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을 환영하는 트뤼도 총리의 모습. 전 세계적으로 그의 이미지를 크게 높인 장면 중 하나다. 출처 캐나다 총리실
일자리와 살 집이 모자란다
문제는 이민자 수가 늘어도 너무 빠르게 늘었단 겁니다. 2020~21년 코로나 팬데믹 때 억눌렸던 이민자 유입 수는 2022년이 되자 100만명, 2023년엔 120만명을 넘어섭니다. 그리고 이렇게 갑자기 밀려든 인구가 경제에 큰 부담이 되기 시작하는데요.일단 실업률이 치솟습니다. 새로 진입한 젊은 이민자는 대부분이 바로 취업시장에 뛰어들죠. 하지만 이들을 다 수용할 정도로 캐나다 경제가 강력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이민 문턱이 낮아진 데다, 대학들이 유학생을 왕창 유치하면서 저숙련 근로자가 너무 많아진 것도 문제이고요.
2024년 11월 캐나다 실업률은 6.8%. 코로나 팬데믹 때를 빼면 2017년 이후 최고치입니다. 청년 실업률은 무려 14%에 육박하죠.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면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명색이 고등교육 비율 세계 1위인 나라인데,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난리인 상황입니다.
지난 2년 동안의 캐나다 실업률 추이. 2024년 11월 캐나다 전체 실업률은 6.8%, 청년 실업률은 13.9%로 기록됐다. 캐나다 통계청
토론토에 사는 인도 출신 유학생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은 요즘 캐나다 상황을 보여주죠. 팀홀튼 커피숍의 파트타임 구직 면접을 위해 몰려든 유학생 수십명이 긴 줄로 늘어서 있습니다. 물론 이런 유학생과 경쟁해야 하는 캐나다 청년도 절망적이긴 마찬가지 상황입니다.주택시장에도 적잖은 압박이 있습니다. 특히 매매시장보다는 임대시장이 2022년부터 넘치는 수요로 들썩거렸는데요. 지난 3년 동안 평균 임대료는 19%나 뛰었습니다. 최근 몇 달은 아파트 공급이 늘면서 임대료 상승세가 주춤했지만, 이미 젊은이들은 그동안의 임대료 폭등에 질렸습니다. 사실 냉정히 따져보면 임대주택이 모자라는 데는 다른 이유가 더 결정적이란 분석이 설득력 있긴 한데요(높은 금리, 건축비용 상승 등). 그래도 몰려든 이민자를 탓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캐나다 전국 평균 주택 임대료 추이. 2024년 11월에 2139캐나다달러(217만원)를 기록했다. 2021년 바닥을 찍은 임대료는 2024년 초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공급이 늘기 시작하면서 임대료가 다시 조금씩 하락하는 추세다. rentals.ca
그토록 이민에 열려있던 관대한 캐나다인들도 마음의 문을 닫고 있습니다. 엔비로닉스(Environics) 조사에 따르면 2022년엔 ‘캐나다로의 이민이 너무 많다’는 데 동의하는 응답자가 27%뿐이었는데요. 지난해엔 58%로 크게 높아졌습니다. 1998년 이후 가장 높은 거죠.‘캐나다로의 이민이 너무 많다’는 데 동의하는 응답자 비율(초록색 선)이 2024년엔 58로 치솟았다. 2년 전의 두배 이상이 된 것. 이렇게 가파른 증가폭은 197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엔비로닉스
결국 트뤼도 총리도 돌아선 여론에 항복해야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공식적으로 이민정책의 실패를 인정했는데요. 그는 “균형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면서, 인구수 증가 목표를 21% 삭감(영주권자 기준 50만명→39만5000명)한다고 발표했죠.조삼모사 탄소세의 결말
트뤼도를 주목받는 지도자로 띄웠지만, 정작 국내 인기는 크게 갉아먹은 정책이 또 있습니다. 바로 ‘탄소세(공식 명칭은 탄소 가격책정)’이죠.2019년 캐나다 정부가 도입한 탄소세는 상당히 진보적인 환경정책입니다. 일단 모든 연료 구매에 세금을 부과하죠. 세금을 내는 건 주유소·도시가스업체 같은 기업이지만, 이는 결국 소비자 가격에 전가됩니다. 기름값이나 가스요금이 그만큼 오르죠. 탄소세는 가솔린 기준으로 1리터당 17.6센트(약 179원)였는데요. 2030년까지 해마다 조금씩(연간 약 3센트, 30원 정도) 인상됩니다.
화석연료를 구매할 때마다 세금을 거둬서, 그 돈을 각 가정에 고루 나눠주는 게 ‘탄소세’의 개념이다. 화석연료를 적게 쓰는 가정은 내는 세금보다 받는 환급금이 많아서 이익이다. 게티이미지
이렇게 거둔 세금은 특이하게 정부 재정으로 들어가지 않고요. 기금으로 모았다가 각 가정으로 환급해 줍니다. 가구주의 은행 계좌로 직접 돈을 넣어주죠. 돌려받는 금액은 주마다 다른데요. 1인 가구이면 분기당 100~200캐나다달러(10만~20만원)입니다. 가구원이 많거나 농촌 지역이면 더 받고요.아니, 왜 이런 번거로운 제도를 도입했을까요. 가계에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화석연료를 덜 쓰도록 소비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죠. 화석연료를 남보다 적게 쓰는 가정은 탄소세로 낸 것보다 더 많은 돈을 환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각 가정에서 자연스레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고 애쓰지 않을까요. 단순히 ‘쓰면 세금 낸다’는 처벌 방식이 아니라, ‘안 쓰면 돈 번다’는 인센티브 방식의 제도인데요.
탄소배출량을 줄이려는 이런 정부 차원의 노력. 취지는 참 좋습니다. 진보적인 환경정책의 세계적인 모델로 찬사를 받았죠. 물론 국민들도 처음엔 이를 지지했고요.
문제는 ‘소비자가 내는 세금=가정이 돌려받는 환급금’이라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쉽게 잊힌다는 겁니다. 즉, 분기마다 환급금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거야 당연히 좋은데요. 주유소에 갈 때마다, 가스요금 고지서를 받을 때마다 높아진 소비자 가격을 마주치면 본능적으로 분노하게 되는 거죠.
아무도 ‘탄소세 때문에 휘발유 가격이 뛰었네. 그럼 다음번에 내 환급금이 더 늘어나려나’라고 받아들이진 못하는 겁니다. 오히려 막연히 자신이 내는 탄소세가 돌려받는 환급금보다 많은 것 같다며 억울해하죠. 실제론 그런 가정은 전체의 20%밖에 되지 않는데도요. 또는 아예 환급금을 받은 걸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즉, 경제학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인 제도이지만 현실에선 생각했던 대로 작동하질 않는 겁니다.
또 다른 문제는 ‘그럼 탄소세 덕분에 탄소배출량이 얼마나 줄어들었어?’라는 질문에 똑 떨어지게 답하기 어렵단 겁니다.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한 정책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그중 얼마가 탄소세 덕분인지는 사실 명확하지 않죠.
대신 보수 진영은 탄소세 공격의 논리를 탄탄하게 쌓아가고 있습니다. 보수 싱크탱크 프레이저연구소는 ‘탄소세가 기업 부담을 늘려서 캐나다 경제를 최대 1.8% 위축시키고 일자리 18만개를 사라지게 만들 것’이란 전망을 내놨죠.
캐나다 야당 보수당 대표인 피에르 폴리에브. 포퓰리즘적인 메시지를 내세우는 그는 매우 호전적인 스타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비슷하단 평가도 받는다. 보수당은 여론조사에서 현 집권당인 자유당을 앞서고 있다. 10월쯤 치러질 총선에서 그가 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셈. 보수당 홈페이지
특히 야당인 보수당 대표 피에르 폴리에브는 탄소세에 대한 반감을 땔감 삼아 불을 활활 지핍니다. 46세의 포퓰리스트 정치인인 그는 탄소세가 이렇게 계속 높아지면 “대량기아와 영양실조를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식품 제조업체가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에, 탄소세가 결국 식품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단 논리입니다. 또 이렇게도 말하죠. “노인들은 겨울을 버티기 위해 난방 온도를 13~14도로 낮춰야 할 겁니다. 인플레이션이 만연하고, 사람들은 집을 떠나 운전할 수 없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세금 폐지(AXE THE TAX)”라는 단순 명료한 슬로건을 내겁니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제 캐나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탄소세 철폐를 원합니다. 물가가 뛰고 먹고살기 팍팍해지니, 환경이란 대의보다는 내 지갑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해진 거죠. 아마 이들 유권자 상당수는 다가오는 10월 총선에서 야당을 찍어 탄소세를 끝내려 들 겁니다.
아무리 취지가 착하고 좋은 정책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은데요. 원래 국민은 자신의 어려움을 잘 살펴주고 공감해 주는 지도자를 원하는 법입니다. 소통할 줄 모른 채 ‘내가 옳다’고 고집만 피우는 정치인은 진보이든 보수이든 설 자리가 없게 되죠. 언젠간 트뤼도 정부의 유산이 재평가받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닙니다. By.딥다이브
인플레이션 쇼크는 종종 정권을 무너뜨린다는 이야기, 지난해 전해드린 적 있죠(‘물가가 바이든 잡겠네…정권 흔드는 인플레이션’). 영국과 미국에 이어 캐나다도 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됐습니다. 아무리 대의가 훌륭해도 민생을 챙기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9년 넘게 캐나다를 이끈 트뤼도 총리가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한때 전 세계적으로 빛나던 진보정치 스타의 추락은 무엇보다 먹고살기가 팍팍해졌기 때문입니다.
-트뤼도는 이민이 캐나다 경제의 해결책이라 믿었고, 이민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부터 이민자는 예상을 뛰어넘게 급증했고 이미 약한 캐나다 경제를 압박했습니다. 임대주택난과 청년실업에 시달리는 캐나다인은 이제 이민에 대한 열린 마음마저 닫고 있습니다.
-트뤼도의 진보적인 환경정책 탄소세는 빠르게 지지를 잃었습니다. 화석연료를 덜 쓰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훌륭했지만, 누구도 기름값이 높아지길 원하지 않습니다. 고물가 시대에 탄소세는 고통을 가중시키는 나쁜 정책으로 낙인찍혔고, 이제 유권자는 ‘세금 철폐’를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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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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