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 명동밥집 ‘콕’ 찍어 기부… 마지막까지 나눔 실천”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5-03 03:00 수정 2021-05-03 03:05
천주교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본부장 김정환 신부
지난달 선종(善終)한 정진석 추기경이 2월 입원한 이후 각별하게 관심을 쏟은 곳이 있다. 생명 존중과 나눔 실천을 위해 설립된 천주교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One-Body One-Spirit)다. 이 단체는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한 해 앞둔 1988년 설립됐다.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초대 이사장, 정 추기경이 2대 이사장을 지냈다.
2006년 이 단체에 장기기증을 서약하고 연명치료를 거부했던 정 추기경의 안구는 선종 직후 적출돼 연구용으로 기증됐다. 정 추기경 통장의 잔액 중 1000만 원은 이 단체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에 기부됐다. 정 추기경에 대한 추모 행렬이 이어지던 지난달 29일 서울 명동대성당 인근 명동밥집과 본부 사무실에서 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정환 신부(51)를 만났다.
―나눔에 대한 정 추기경의 관심이 각별했다.
“사랑과 나눔을 말로만 그치지 않고 실천한 분이었다. 2006년 서울성체대회 개최를 앞두고 장기기증을 서약하면서 ‘나이가 많아 장기를 쓰기 어려우면 안구라도 써 달라’고 하셨다. 추기경님 서약 뒤 서울대교구에서도 600명 넘는 신부들이 장기기증에 동참했다. 남모르게 매달 용돈 일부를 본부에 후원하셨다.”
―명동밥집도 정 추기경이 지원한 5곳 중 한 곳이다.
“당신의 시간과 돈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는 게 그분 삶이었다. 명동밥집을 ‘콕’ 찍어 기부해주신 것도 소외된 이웃에 대한 그동안의 나눔 실천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추기경님이 ‘나는 마지막 떠나면서 이렇게 할 테니, 여러분도 함께 합시다’, 이런 메시지를 주셨다.”
―정 추기경님의 장기기증과 연명 치료 거부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교회 큰 어른들의 실천이 교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9년 김 추기경님의 안구 기증이 대표적 사례다. 이전에는 한 해 장기기증 서약자가 3000명 정도였는데, 그해 10배가 넘는 3만1940명이 서약했다. 정 추기경의 안구 기증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약자와 상담자도 늘고 있다.”
―이후 계획은….
“부끄럽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면접촉이 어려워 장기와 조혈모세포 기증사업이 거의 중단된 상태였다. 추기경님의 깊은 뜻과 큰 실천이 있었던 만큼 사제들과 신자, 시민들까지 동참하는 캠페인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명동밥집 상황은 어떤가.
“1월 6일 시범운영을 시작한 뒤 수, 금, 일요일에 운영하는데 평일 기준 400명, 일요일은 500명이 찾고 있다. 그간 코로나19로 도시락만 제공했는데 5일부터 대형 텐트를 마련해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 현장 배식으로 따뜻한 한 끼를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명동밥집, 작명(作名)이 잘됐다.
“명동 한복판, 한국 천주교의 심장에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가 필요하고 기부와 봉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염수정 추기경님을 비롯한 교구의 생각이었다. 처음엔 성인의 이름을 딴 ‘○○의 집’도 후보였는데 일반인도 오기 쉽고, 밥집이라는 따뜻한 이미지가 있어 명동밥집이 됐다.”
―정 추기경님과 개인적 인연이 있나.
“1998년 청주교구에서 서울대교구장으로 오신 당시 정 대주교님이 명동대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주셨다. 교회에서 서품을 준 주교님과 사제들의 관계를 세속의 부자 관계로 비유한다. 그래서 제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착한 사제로 살라’는 말씀이 기억난다. 동기들이 서품 뒤 3년 만에 군종신부로 다시 입대하는데 정 대주교님과 부모님들을 모시고 ‘군대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외쳤던 기억도 난다.”
―정 추기경님의 유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늘 한결같이 사제가 살아야 할 모습으로 사신 분이었다. 유언처럼 사람들에게 ‘행복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추기경님도 누구보다 행복한 사제이셨다. 우리 본부도 최선을 다하고, 저도 행복한 사제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명동밥집을 운영 중인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본부장인 김정환 신부는 지난달 29일 “정진석 추기경님이 생명 존중과 나눔 실천을 위해 큰 선물을 주고 가셨다”며 “교회와 신자, 시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캠페인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지난달 선종(善終)한 정진석 추기경이 2월 입원한 이후 각별하게 관심을 쏟은 곳이 있다. 생명 존중과 나눔 실천을 위해 설립된 천주교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One-Body One-Spirit)다. 이 단체는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한 해 앞둔 1988년 설립됐다.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초대 이사장, 정 추기경이 2대 이사장을 지냈다.
2006년 이 단체에 장기기증을 서약하고 연명치료를 거부했던 정 추기경의 안구는 선종 직후 적출돼 연구용으로 기증됐다. 정 추기경 통장의 잔액 중 1000만 원은 이 단체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에 기부됐다. 정 추기경에 대한 추모 행렬이 이어지던 지난달 29일 서울 명동대성당 인근 명동밥집과 본부 사무실에서 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정환 신부(51)를 만났다.
―나눔에 대한 정 추기경의 관심이 각별했다.
“사랑과 나눔을 말로만 그치지 않고 실천한 분이었다. 2006년 서울성체대회 개최를 앞두고 장기기증을 서약하면서 ‘나이가 많아 장기를 쓰기 어려우면 안구라도 써 달라’고 하셨다. 추기경님 서약 뒤 서울대교구에서도 600명 넘는 신부들이 장기기증에 동참했다. 남모르게 매달 용돈 일부를 본부에 후원하셨다.”
―명동밥집도 정 추기경이 지원한 5곳 중 한 곳이다.
“당신의 시간과 돈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는 게 그분 삶이었다. 명동밥집을 ‘콕’ 찍어 기부해주신 것도 소외된 이웃에 대한 그동안의 나눔 실천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추기경님이 ‘나는 마지막 떠나면서 이렇게 할 테니, 여러분도 함께 합시다’, 이런 메시지를 주셨다.”
―정 추기경님의 장기기증과 연명 치료 거부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교회 큰 어른들의 실천이 교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9년 김 추기경님의 안구 기증이 대표적 사례다. 이전에는 한 해 장기기증 서약자가 3000명 정도였는데, 그해 10배가 넘는 3만1940명이 서약했다. 정 추기경의 안구 기증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약자와 상담자도 늘고 있다.”
―이후 계획은….
“부끄럽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면접촉이 어려워 장기와 조혈모세포 기증사업이 거의 중단된 상태였다. 추기경님의 깊은 뜻과 큰 실천이 있었던 만큼 사제들과 신자, 시민들까지 동참하는 캠페인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명동밥집 상황은 어떤가.
“1월 6일 시범운영을 시작한 뒤 수, 금, 일요일에 운영하는데 평일 기준 400명, 일요일은 500명이 찾고 있다. 그간 코로나19로 도시락만 제공했는데 5일부터 대형 텐트를 마련해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 현장 배식으로 따뜻한 한 끼를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명동밥집, 작명(作名)이 잘됐다.
“명동 한복판, 한국 천주교의 심장에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가 필요하고 기부와 봉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염수정 추기경님을 비롯한 교구의 생각이었다. 처음엔 성인의 이름을 딴 ‘○○의 집’도 후보였는데 일반인도 오기 쉽고, 밥집이라는 따뜻한 이미지가 있어 명동밥집이 됐다.”
―정 추기경님과 개인적 인연이 있나.
“1998년 청주교구에서 서울대교구장으로 오신 당시 정 대주교님이 명동대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주셨다. 교회에서 서품을 준 주교님과 사제들의 관계를 세속의 부자 관계로 비유한다. 그래서 제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착한 사제로 살라’는 말씀이 기억난다. 동기들이 서품 뒤 3년 만에 군종신부로 다시 입대하는데 정 대주교님과 부모님들을 모시고 ‘군대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외쳤던 기억도 난다.”
―정 추기경님의 유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늘 한결같이 사제가 살아야 할 모습으로 사신 분이었다. 유언처럼 사람들에게 ‘행복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추기경님도 누구보다 행복한 사제이셨다. 우리 본부도 최선을 다하고, 저도 행복한 사제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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