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겨울 궁전은 아궁이

노트펫

입력 2021-01-11 10:11 수정 2021-01-11 10:12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노트펫] 고양이는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는 고양이의 고향과 관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아프리카의 야생은 덥고 건조하다. 그곳에서 작은 새나 설치류를 사냥하고 살던 고양이가 세계 곳곳으로 주거지를 확장시킨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다. 사람의 필요 때문이었다. 설치류를 잡기 위해서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동행을 강요했다. 그 결과 극지가 아닌 이상 지구 어디에서든 고양이를 만날 수 있게 됐다.

한국인의 전통 주거형태는 한옥이다. 한옥의 난방은 다른 가옥과는 다르다. 온돌(溫突)이라는 독창적인 난방 시설 때문이다. 온돌은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몸을 지지기에 최적의 시설이다. 외국인에게 이런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온돌 난방의 첫 프로세스는 아궁이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불이 붙으면 열기가 생기게 된다. 다음 프로세스는 아궁이를 통과한 열기가 방바닥 밑의 구들을 통과하며 실내 공간을 데우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연소의 부산물인 연기를 굴뚝을 통해 외부로 배출하는 것이다. 온돌의 순환과정은 마치 인체의 음식물 소화과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더욱 창의적인 것은 아궁이가 단순히 점화 기구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궁이는 불의 기운이 있다. 그 열을 그냥 버리기는 아깝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아궁이를 난방은 물론 취사가 가능한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아궁이가 있는 곳이 부엌이 된 것이다. 부뚜막 고양이 속담 속 부뚜막의 탄생이라고 볼 수 있다.

요리를 하는 사람에게 주방은 매우 중요한 존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출입해서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궁이가 사람에게만 중요한 공간은 아니었다. 사람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고양이는 날이 추우면 아궁이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한옥에서 살던 때, 고양이는 해가 지기 직전 귀가했다. 당시는 고양이에게 외출의 자유가 있던 시절이었다. 집에 온 고양이는 아궁이가 있는 부엌에서 밥을 먹고 종이 박스에 들어갔다.

그리곤 실컷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박스 밑에 깔린 모포 위에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식사와 그루밍을 마치면 고양이는 이내 잠이 들었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이 있는데, 옛날 고양이 팔자가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고양이는 평소 애용하던 종이 상자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아궁이 옆에 몸을 붙이고 잠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화재 발생 위험성 때문에 아궁이 근처에 절대 종이 상자를 두지 않으셨다.

그러니 고양이는 종이 상자와 아궁이 근처를 선택해야만 했다. 고양이의 선택은 아궁이였다. 하지만 그 선택이 몇 달씩 계속되지는 않았다. 기온이 올라가면 고양이는 다시 자신의 정식 거처인 종이 상자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이다.

청나라 말기 서태후가 중건한 이화원(?和園)의 영어 이름은 썸머 팰리스(Summer Palace)다. 고양이에게 종이 상자가 자신의 여름 궁전인 하궁(夏宮)이었다면, 아궁이는 겨울 궁전인 동궁(冬宮)인 셈이었다.

이강원 동물 칼럼니스트(powerranger7@hanmail.net)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