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살해범 실형 선고받던 날
노트펫
입력 2019-11-22 13:07 수정 2019-11-22 13:07
[노트펫] "오늘 방청하러 오신 분들이 많은데 정OO씨 때문이죠? 본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선고를 내릴 수 없습니다."
방청객들은 맥이 빠지는 모습이 역력했다. 경의선 숲길의 가게 고양이 자두 살해자에게 실형이 선고된 지난 21일 서울서부지법 405호 법정의 한 장면이다.
정 모씨는 이날 마약과 폭행 등 여러 다른 형사 사건의 피의자들과 함께 재판을 받기로 돼 있었다.
정확히 오전 10시가 되자 유창훈 형사7단독 부장판사가 피의자들을 호명하면서 판결문을 빠르게 읽어 내려 갔다.
낮고 매우 건조한 톤이었다. 두세 번째에 있던 정 모씨는 처음 호명됐을 때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예정된 재판 순서가 다 끝나고 재차 호명됐지만 역시 일어서는 피의자는 없었다.
유 부장판사는 선고연기를 선언하고, 다음달 5일을 선고기일로 잡으면서 이날의 재판 일정을 마무리했다.
"왔어요! 왔어!" 허탈한 채 재판정 밖으로 나온 방청객들 중 누군가 정 모씨를 알아보고 이렇게 외쳤다. 혼자서 법원에 온 것으로 보인 정 모씨는 다소 초췌한 모습에 법정 앞에서 머뭇댔다.
그런 정 씨를 방청객들이 재판정으로 밀어 넣다시피했다. 이때가 오전 10시14분. 아직 법정을 떠나지 않았던 유 판사는 별다른 말없이 재판을 속행했다.
신원이 확인되자 유 판사는 다른 피의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건조하고, 빠르게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범행이 잔혹하고, 생명존중의 태도를 찾을 수 없으며,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점..." 기억하기도 힘들 정도로 빨랐다.
"다만, 범행을 반성하고 있는 점..." 예의 '다만'이라는 단어가 판사의 입에서 나오자 이전처럼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끝나겠지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징역 6월에 처하고 법정구속한다고?? 이게 정말? 정말 실형이 선고된거야?' 판사의 판결 주문에 집행유예라는 꼬리말은 없었다.
1991년 동물보호법 제정 이후 28년 만에 사실상 처음 동물학대범에게 실형이 선고되는 순간이었다.
지금껏 아무리 동물을 잔인하게 죽여서 징역이 선고됐다고 해도 집행유예가 항상 따라다녔다. 징역형까지 가는 것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대부분 벌금이었다.
방청석 맨뒷열에 있던 죽임을 당한 고양이 자두의 주인 예 모씨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서울 신도림에서 식당을 하면서 길고양이들을 돌봐왔던 50대 후반의 그녀. 고양이들을 데리고 경의선 숲길로 이전했다가 자두 일을 겪으면서 내내 가슴에 한이 맺힌 터였다.
재판은 유 판사가 정 모씨에게 항소 절차에 대해 고지하고, 법원 경위들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유창훈 판사는 1973년생으로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법무관을 거쳐 2003년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중앙지법, 광주지법,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경력을 쌓았고, 2015년부터 부장판사로서 부산지법과 인천지법을 돈 뒤 올 2월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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