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산업의 강자될 것” “대기업을 스타트업으로”…獨 vs 프랑스 大戰
베를린·파리=조은아 기자
입력 2018-06-21 16:52 수정 2018-06-21 21:17
퇴근길 월드
유럽에서는 4차 산업혁명 전환기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계기로 경제 강국을 차지하려는 ‘창업 대전(大戰)’이 한창이다. 18세기 중반 산업혁명 초기 영국에 뒤졌던 독일과 프랑스는 이번엔 밀릴 수 없다는 듯 주력 신산업을 앞세운 창업단지를 키우고 해외 스타트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독일의 창업 붐이 두드러진다. 독일 외교부 협력 포털 도이치랜드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1~6월) 베를린의 스타트업들이 유치한 투자금은 15억 유로(약 1조9300억 원)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7%나 증가했다. 이로써 베를린은 파리를 제치고 런던에 이어 유럽 제2의 스타트업 도시로 부상했다. 독일의 디지털화 수준이 비교적 낮은 편임을 고려하면 놀랍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는 최근 독일에 비해 저조했던 경제를 부활시키려 창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 “미래 광(光)산업은 독일이 선점”
지난달 29일 독일 베를린 외곽의 과학기술단지 아들러스호프. 1990년 독일 통일 뒤 동독 연구자들과 서독 자본가들이 신산업을 일으켜 통일 독일 경제에 동력을 보탰던 이곳은 이제 미래 산업의 요람이 됐다. 이곳의 특징은 독일 통일 초기 시절부터 입주한 탄탄한 중견기업과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신생기업들이 뒤섞여 사업 시너지를 낸다는 점이다. 단지에서 만난 기업가들은 “한국이나 중국은 반도체에 강하지만 우리는 광(光)산업의 강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단지 중앙에 자리 잡은 중견기업 ‘LLA 인스트루먼츠’ 실험실에선 약 2m 길이의 컨베이어벨트 기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기계 윗부분에서 밝은 빛이 나와 벨트 중앙을 비추고 있었다. 한 직원이 각종 재활용 쓰레기를 벨트 위에 놓자 벨트 끝까지 흘러간 쓰레기 중 빈 플라스틱만 튕겨 나가 박스에 담기고 나머지 쓰레기는 아래로 떨어졌다. 플라스틱을 자동으로 분류하는 빛의 기술이다. 기계에서 나오는 빛이 플라스틱 표면에 반사돼 플라스틱 고윳값을 기기에 보내면 기기가 벨트의 속도를 늦춰 플라스틱 병이 자연스럽게 튕겨 나가게 만든다.
이 회사의 리잔 지몬 매니저는 “재활용 분야에서 우리 같은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유럽에 4곳밖에 없다. 쓰레기 분류 사업비용의 약 40%를 이런 기계 구입비용이 차지할 정도이기 때문에 재활용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1993년 설립된 이 기업은 당초 레이저 장비를 생산하다 미래 수익성이 불확실해지자 최근 아들러스호프 연구진과 협업해 이런 신기술을 개발했다. 이 연구단지에서 만난 신생기업 ‘시코야’도 광산업에 쓰이는 칩을 설계하는 회사다. 지난해 1월 이 단지에 입주한 시코야는 급성장해 사무실을 기존의 2배로 늘리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대학 동료를 중심으로 5명이 세운 이 기업 직원은 현재 40여 명. 한조 리 시코야 공동 설립자는 “우리가 보유한 빛을 데이터로 바꾸는 칩 설계 기술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정보기술(IT) 산업의 발달로 데이터 사용이 늘어날수록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우리 칩에 대한 수요가 늘 수밖에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 대기업을 스타트업으로 변신시키는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 바람이 한창인 프랑스는 ‘창업 국가’를 자처하며 대기업까지 스타트업 체질로 바꾸려고 독려 중이다. 기존 산업 구조로는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1일 파리의 민간 창업 플랫폼 ‘스쿨랩’에는 우정국 ‘라포스트’, 금융사 ‘BNP파리바’ 등 대기업들이 스타트업들과 뒤섞여 있었다. 3층에 위치한 ‘라포스트’의 ‘팝랩’은 관성에 길들여진 대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한 혁신 조직이다. 다비드 랑크리 스쿨랩 매니저는 “우체국 사업이 사양 산업이 되자 ‘라포스트’가 새로운 산업을 키우기 위해 일종의 사내 스타트업을 만들어 창업가들이 많은 스쿨랩에 입주시켰다. 젊은 감각과 도전적인 분위기에서 일해야 혁신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에선 심사를 통해 입주한 청년들이 간단한 사업 아이디어만 갖고 있어도 대기업 관계자들과 자유롭게 의논할 수 있다. 스쿨랩에 입주한 패션 스타트업 르스틸리스트의 사무엘 사도앵 최고경영자(CEO)는 “대기업과 협업하는 워크숍이 마련돼 함께 작업하며 경영 노하우를 묻고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전했다.
프랑스의 스타트업은 낙후된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날 창업 플랫폼 ‘르카르고’가 들어선 파리 외곽의 막도날드가 주변엔 마침 경찰들이 노숙하던 빈곤층 이민자들을 퇴거시킨 뒤 감독하고 있었다. 빈곤층이 장기 노숙을 할 정도로 노후했던 이 지역에 창업 시설이 들어서고 트램 철로가 들어오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르카르고를 관리하는 파리앤코의 멜라니 놀로 매니저는 “르카르고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구도심에 활력을 주기 위해 못 쓰게 된 공장을 개조한 시설이다. 국내외 스타트업들이 입주하면서 주변에 식당이 많이 들어서고 주택 가격도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 마르셀 프라처 회장 “제조업 강국 독일도 디지털 전화 총력” ▼
“독일에 대한 해외 투자가 줄고 있어 큰 걱정입니다.”
유럽의 ‘경제 우등생’ 독일도 미래 경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해법을 마련하고 있었다. 경제연구소 ‘DIW 베를린’의 마르첼 프라처 회장은 지난달 28일 베를린의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독일 경제의 고민을 이같이 소개했다. 그는 “오늘의 투자는 내일의 국가 생산력을 뜻하는데, 투자가 줄고 있으니 독일 경제의 경쟁력이 떨어질까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독일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2006년 약 874억 달러(약 97조 원)에서 2016년 약 581억 달러로 감소했다.
이에 대해 프라처 회장이 제시한 해법은 외국 스타트업을 적극 유치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 베를린시가 스타트업 유치에 매우 공을 들이고 있다. 기존 산업의 디지털화에 투자를 많이 하는 이유도 이 분야 스타트업과 협업을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라처 회장은 기존 제조업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는 독일 정부의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소개하며 “우리는 기존 제조업에 너무 치중하고 있는데 앞으로 자동화 기술 등 소프트웨어가 중시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제조업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독일은 ‘제조업 강국’으로 꼽히지만 정작 그는 제조업에 치중된 경제 구조를 독일의 리스크로 보고 있는 셈이다. 그는 “스타트업 육성을 통해 정보통신기술(ICT)이 미래 독일 경제를 강하게 만들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프라처 회장은 해외로부터의 투자를 늘리는 또 다른 해법으로 “규제를 개선하고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보완하면서 조세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법조계, 약사계로 대표되는 서비스업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독일 경제의 또 다른 고민은 인구 고령화다. 프라처 회장은 “앞으로 2, 3년간 근로자 수가 줄기 시작해 우리가 사회보장연금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워진다”며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이민정책을 마련해 숙련된 인재일 경우 유럽연합(EU) 회원국 국민이 아닌 사람들도 쉽게 이민을 올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를린·파리=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유럽에서는 4차 산업혁명 전환기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계기로 경제 강국을 차지하려는 ‘창업 대전(大戰)’이 한창이다. 18세기 중반 산업혁명 초기 영국에 뒤졌던 독일과 프랑스는 이번엔 밀릴 수 없다는 듯 주력 신산업을 앞세운 창업단지를 키우고 해외 스타트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독일의 창업 붐이 두드러진다. 독일 외교부 협력 포털 도이치랜드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1~6월) 베를린의 스타트업들이 유치한 투자금은 15억 유로(약 1조9300억 원)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7%나 증가했다. 이로써 베를린은 파리를 제치고 런던에 이어 유럽 제2의 스타트업 도시로 부상했다. 독일의 디지털화 수준이 비교적 낮은 편임을 고려하면 놀랍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는 최근 독일에 비해 저조했던 경제를 부활시키려 창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 “미래 광(光)산업은 독일이 선점”
지난달 29일 독일 베를린 외곽의 과학기술단지 아들러스호프. 1990년 독일 통일 뒤 동독 연구자들과 서독 자본가들이 신산업을 일으켜 통일 독일 경제에 동력을 보탰던 이곳은 이제 미래 산업의 요람이 됐다. 이곳의 특징은 독일 통일 초기 시절부터 입주한 탄탄한 중견기업과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신생기업들이 뒤섞여 사업 시너지를 낸다는 점이다. 단지에서 만난 기업가들은 “한국이나 중국은 반도체에 강하지만 우리는 광(光)산업의 강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단지 중앙에 자리 잡은 중견기업 ‘LLA 인스트루먼츠’ 실험실에선 약 2m 길이의 컨베이어벨트 기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기계 윗부분에서 밝은 빛이 나와 벨트 중앙을 비추고 있었다. 한 직원이 각종 재활용 쓰레기를 벨트 위에 놓자 벨트 끝까지 흘러간 쓰레기 중 빈 플라스틱만 튕겨 나가 박스에 담기고 나머지 쓰레기는 아래로 떨어졌다. 플라스틱을 자동으로 분류하는 빛의 기술이다. 기계에서 나오는 빛이 플라스틱 표면에 반사돼 플라스틱 고윳값을 기기에 보내면 기기가 벨트의 속도를 늦춰 플라스틱 병이 자연스럽게 튕겨 나가게 만든다.
이 회사의 리잔 지몬 매니저는 “재활용 분야에서 우리 같은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유럽에 4곳밖에 없다. 쓰레기 분류 사업비용의 약 40%를 이런 기계 구입비용이 차지할 정도이기 때문에 재활용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1993년 설립된 이 기업은 당초 레이저 장비를 생산하다 미래 수익성이 불확실해지자 최근 아들러스호프 연구진과 협업해 이런 신기술을 개발했다. 이 연구단지에서 만난 신생기업 ‘시코야’도 광산업에 쓰이는 칩을 설계하는 회사다. 지난해 1월 이 단지에 입주한 시코야는 급성장해 사무실을 기존의 2배로 늘리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대학 동료를 중심으로 5명이 세운 이 기업 직원은 현재 40여 명. 한조 리 시코야 공동 설립자는 “우리가 보유한 빛을 데이터로 바꾸는 칩 설계 기술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정보기술(IT) 산업의 발달로 데이터 사용이 늘어날수록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우리 칩에 대한 수요가 늘 수밖에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 대기업을 스타트업으로 변신시키는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 바람이 한창인 프랑스는 ‘창업 국가’를 자처하며 대기업까지 스타트업 체질로 바꾸려고 독려 중이다. 기존 산업 구조로는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1일 파리의 민간 창업 플랫폼 ‘스쿨랩’에는 우정국 ‘라포스트’, 금융사 ‘BNP파리바’ 등 대기업들이 스타트업들과 뒤섞여 있었다. 3층에 위치한 ‘라포스트’의 ‘팝랩’은 관성에 길들여진 대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한 혁신 조직이다. 다비드 랑크리 스쿨랩 매니저는 “우체국 사업이 사양 산업이 되자 ‘라포스트’가 새로운 산업을 키우기 위해 일종의 사내 스타트업을 만들어 창업가들이 많은 스쿨랩에 입주시켰다. 젊은 감각과 도전적인 분위기에서 일해야 혁신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에선 심사를 통해 입주한 청년들이 간단한 사업 아이디어만 갖고 있어도 대기업 관계자들과 자유롭게 의논할 수 있다. 스쿨랩에 입주한 패션 스타트업 르스틸리스트의 사무엘 사도앵 최고경영자(CEO)는 “대기업과 협업하는 워크숍이 마련돼 함께 작업하며 경영 노하우를 묻고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전했다.
프랑스의 스타트업은 낙후된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날 창업 플랫폼 ‘르카르고’가 들어선 파리 외곽의 막도날드가 주변엔 마침 경찰들이 노숙하던 빈곤층 이민자들을 퇴거시킨 뒤 감독하고 있었다. 빈곤층이 장기 노숙을 할 정도로 노후했던 이 지역에 창업 시설이 들어서고 트램 철로가 들어오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르카르고를 관리하는 파리앤코의 멜라니 놀로 매니저는 “르카르고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구도심에 활력을 주기 위해 못 쓰게 된 공장을 개조한 시설이다. 국내외 스타트업들이 입주하면서 주변에 식당이 많이 들어서고 주택 가격도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 마르셀 프라처 회장 “제조업 강국 독일도 디지털 전화 총력” ▼
“독일에 대한 해외 투자가 줄고 있어 큰 걱정입니다.”
유럽의 ‘경제 우등생’ 독일도 미래 경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해법을 마련하고 있었다. 경제연구소 ‘DIW 베를린’의 마르첼 프라처 회장은 지난달 28일 베를린의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독일 경제의 고민을 이같이 소개했다. 그는 “오늘의 투자는 내일의 국가 생산력을 뜻하는데, 투자가 줄고 있으니 독일 경제의 경쟁력이 떨어질까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독일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2006년 약 874억 달러(약 97조 원)에서 2016년 약 581억 달러로 감소했다.
이에 대해 프라처 회장이 제시한 해법은 외국 스타트업을 적극 유치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 베를린시가 스타트업 유치에 매우 공을 들이고 있다. 기존 산업의 디지털화에 투자를 많이 하는 이유도 이 분야 스타트업과 협업을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라처 회장은 기존 제조업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는 독일 정부의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소개하며 “우리는 기존 제조업에 너무 치중하고 있는데 앞으로 자동화 기술 등 소프트웨어가 중시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제조업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독일은 ‘제조업 강국’으로 꼽히지만 정작 그는 제조업에 치중된 경제 구조를 독일의 리스크로 보고 있는 셈이다. 그는 “스타트업 육성을 통해 정보통신기술(ICT)이 미래 독일 경제를 강하게 만들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프라처 회장은 해외로부터의 투자를 늘리는 또 다른 해법으로 “규제를 개선하고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보완하면서 조세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법조계, 약사계로 대표되는 서비스업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독일 경제의 또 다른 고민은 인구 고령화다. 프라처 회장은 “앞으로 2, 3년간 근로자 수가 줄기 시작해 우리가 사회보장연금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워진다”며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이민정책을 마련해 숙련된 인재일 경우 유럽연합(EU) 회원국 국민이 아닌 사람들도 쉽게 이민을 올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를린·파리=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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