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출시땐 밥먹듯 밤샘 작업… 게임회사 80% 범법자 될 판”

신무경 기자

입력 2018-06-20 03:00 수정 2018-06-20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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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태풍이 온다]<3>게임업계의 아우성



#중견 게임회사 개발자 A 씨. 연초 두 달 동안 신작 개발에 몰두했다. 주중은 물론 주말까지 출근하며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회사에서 해결했다. 회사에서는 차 한잔 할 시간조차 아까워하는 개발자들을 위해 커피까지 대령했다. A 씨는 야근수당만 한 달에 100만 원도 넘는 돈을 받았다. 물론 야근을 시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보상이 뒤따를 것이란 확신에 자발적으로 근무했다. 게임은 대박을 터뜨렸고 A 씨는 두둑한 인센티브를 챙겼다. A 씨는 “직장인 중에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직종은 게임밖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며 “열심히 일한 만큼 최고의 보상이 뒤따르는 문화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없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국내 대형 게임회사에서 서비스 기획을 담당하는 B 씨. 회사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앞서 유연근무제를 적용했지만 석 달째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있다. 근무시간을 줄이겠다는 경영진의 의지는 분명하지만 24시간 돌아가는 서비스에 한시라도 눈을 떼면 매출 하락으로 이어진다. B 씨는 “월 단위로 근무시간을 관리하다 보니 시스템 업데이트 시점처럼 일이 몰리는 달에는 자칫 법을 위반하게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요즘 게임업계 최대 고민은 주 52시간 근무제다. 글로벌 게임 서비스를 위해 24시간 근무를 해야 하고 신작 출시를 앞두고 일을 몰아서 해야 하지만 업계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은 법 제도가 갑작스럽게 시행되기 때문이다. 게임업계에서는 경직된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세계로 뻗어 나가던 국내 게임 산업의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 한국 경제 미래 먹거리 훼손 우려

상당수 게임회사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 등을 통해 법을 준수하면서도 경쟁력을 잃지 않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때 ‘구로의 등대’로 불리며 야근이 많기로 유명했던 넷마블은 과거 관행에 제동을 걸고 좋은 기획과 전략을 통해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게임업계 특유의 성과 지향적이면서도 자유롭고 창의적인 문화를 송두리째 뒤흔들 것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한 게임회사 인사 담당 임원은 “성과를 내서 인센티브를 많이 지급받고 싶어 하는 직원들도 있을 텐데 획일적인 법은 이 같은 자발성을 무시할 수 있다”며 “프로야구 선수가 공을 잘 던지기 위해 근로시간 외에 연습하는 것을 막는다면 글로벌 경쟁 시대에 맞지 않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게임업계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선택적 근로시간제 같은 제도 안에 직원들을 강제로 가둬야 해 자유로운 문화에서 오는 창의성과 독창성이 사라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국내 게임 수출액은 39억 달러(약 4조3000억 원)로 전년보다 19.2% 증가했다. 하지만 업계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경직된 근로시간 단축은 모처럼 확보한 새로운 성장동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중국 게임회사들 사이에서는 최근 한국 게임회사들의 실시간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며 “주 52시간이라는 기계적인 근로시간 균형에 얽매이다 보면 글로벌 경쟁력을 잃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임업계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현실적인 적용을 위해 해당 제도의 단위 기간을 각각 3개월, 1개월이 아닌 각각 1년∼1년 6개월, 3∼6개월로 연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신작 출시 기간에 밤샘 작업을 하며 업무에 몰입해야 하는 ‘크런치 모드’ 등 업계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법 위반 시 징역과 벌금형에 대한 처벌 규정도 재검토해 달라는 입장이다.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은 “제도의 안착을 위해 처벌보다는 잘 준수할 수 있도록 계도하는 것이 우선이며, 이를 위해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작은 업체일수록 범법자 양산 우려

정부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달 8일 문화체육관광부와 고용노동부 주최로 열린 ‘콘텐츠 분야 노동시간 단축 대응방안 토론회’. 게임업계 관계자가 “게임회사들도 재량근로제를 실시할 수 있나”라고 묻자 고용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르면 ‘IT업계의 정보처리 시스템의 설계 또는 분석 업무’ 등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재량 근로시간제를 적용할 수 있다.

재량근로제는 업무 특성상 근로자가 얼마나 일했고 어떻게 일했는지 사용자가 뚜렷이 구분할 수 없을 때 노사가 합의한 경우 일정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보아 근로시간을 산정하는 방법이다. 큰 틀에서 게임업계도 정보처리 시스템의 설계 또는 분석 업무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지만 고용부는 판단을 보류했다.

업계에서 이러다 ‘범법자’를 양산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업계 고용의 70∼80%를 차지하지만 추가로 인력을 고용할 자금력이 떨어지는 중소·중견 게임회사들이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무경 기자 y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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