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팀, 집단지성으로 ‘뇌 지도’ 발판 만들었다
동아일보
입력 2018-05-21 03:00 수정 2018-05-21 05:15
눈-뇌 연결 세포 47종 분류 성공… 녹내장 등 치료-연구에 응용 기대
美-유럽선 6조원 투자 ‘초대형 연구’
김진섭 한국뇌연구원 뇌신경망연구부 책임연구원과 배준환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팀은 쥐의 망막을 얇게 저민 뒤에 전자현미경으로 찍어 평면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다시 결합해 3차원 영상으로 전환시켰다. 그 뒤 일종의 온라인 게임이자 시민과학 프로그램인 ‘아이와이어’(eyewire.org) 참여자의 도움을 받아 396개 신경절세포를 각각 분류했다. 게임 참여자들이 이미지에 색을 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포의 입체 구조가 완성되는 게임이다. 이렇게 파악된 입체 구조를 비슷한 유형끼리 묶은 결과 세포가 최소 47종으로 전문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움직임’이나 ‘사물의 윤곽’ 등 성격이 다른 시각정보를 각기 따로 포착해 뇌에 전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 결과는 생명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셀’ 17일자(현지 시간)에 발표됐다.
김 책임연구원팀은 이 연구가 신경절세포 손상에 의해 발생하는 녹내장 등 질병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배경에는 더 큰 목적이 있다. 장차 시각 특화 뇌지도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건물 구조를 알기 위해 곳곳에 사용된 건축자재가 유리인지 철근인지 파악했다면, 이제는 이들이 연결된 구조를 조사해 진짜 구조를 볼 예정이다. 한국뇌연구원은 이렇게 만든 뇌지도를 바탕으로 소뇌와 대뇌의 뇌지도까지 만들 계획이다.
뇌지도는 뇌 속 정보처리 ‘길’을 찾기 위해 860억 개에 이르는 신경세포가 갖는 총 수백조 개의 연결망을 분석하겠다는 프로젝트다. ‘우주 최후의 신비’로 꼽히는 뇌를 이해할 최선의 방법으로 약 5년 전부터 국제 과학계 최대의 이슈였다. 유럽연합(EU)은 2005년부터 인공뇌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2013년 ‘휴먼브레인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뇌라는 ‘오지’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약 10년간 1조 원을 투자하는 초대형 연구였다. 같은 해 미국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뇌과학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규모는 더욱 커져서 10여 년 사이에 5조 원을 오롯이 뇌지도 등 뇌 연구에 쏟아붓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이후 5년이 지난 뒤 상황이 변했다. 자신만만했던 미국과 EU는 간절히 세계 각국과의 공동 연구를 논의하고 있다. 2016년 미국, EU, 일본, 중국, 이스라엘, 호주, 한국 등이 주축이 돼 ‘국제뇌과학이니셔티브(IBI)’라는 국제협력 선언이 이뤄진 데 이어 10, 11일에는 대구 한국뇌연구원과 서울 국회에서 ‘제1회 IBI 대표자회의’가 열렸다. 미국과 EU는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할 테니 모두 함께 연구하자”고 손짓했다.
이유는 데이터. 김 책임연구원팀이 시민과학의 힘을 빌린 데에서 알 수 있듯 뇌 연구는 천문학적인 데이터 처리가 필수다. 미국이나 유럽도 혼자는 감당이 안 된다. 미국 비영리과학재단 캐블리의 미국·국제 뇌과학이니셔티브 책임자인 캐럴라인 몬토조 과학프로그램담당관은 “중력파 발견 때처럼 각국의 다양한 분야 뇌과학자들이 모여 함께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품앗이 연구’로 급박한 사회 문제에 효율적으로 공동 대응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일본이 10년 동안 약 4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진행하고 있는 영장류 뇌과학 연구 프로젝트 브레인/마인즈(Brain/MINDS)의 총괄 책임자인 오카베 시게오 도쿄대 교수는 “한국과 일본, 중국은 공통적으로 고령화와 치매 문제가 심각하다”며 “일본의 영장류 연구와 한국의 쥐 및 인간 뇌 연구가 결합하면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美-유럽선 6조원 투자 ‘초대형 연구’
김진섭 한국뇌연구원 뇌신경망연구부 책임연구원(오른쪽)팀이 전자현미경 영상을 통해 만든 신경세포 말단의 구조를 확인하고 있다. 신경세포의 구조와 연결망을 일일이 파악하면 뇌지도를 만들 수 있다. 한국뇌연구원 제공
한국 연구팀이 눈의 망막에 맺힌 이미지를 뇌까지 전달하는 신경세포인 ‘신경절세포’의 세부 유형을 집단지성 프로젝트로 풀어내 화제다. 신경절세포는 망막에 존재하는 다섯 가지 신경세포 중 하나로, 눈이 본 이미지를 뇌에 전달하는 유일한 창구다. 이번 연구는 이 창구 역할을 하는 세포를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하나하나 전수 조사해 기능을 밝히고, 비슷한 유형끼리 분류했다. 미국, 유럽 등이 시도 중인 뇌신경 전체의 연결망지도(뇌지도)를 우리 나름의 영역에서 구축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도 나온다.김진섭 한국뇌연구원 뇌신경망연구부 책임연구원과 배준환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팀은 쥐의 망막을 얇게 저민 뒤에 전자현미경으로 찍어 평면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다시 결합해 3차원 영상으로 전환시켰다. 그 뒤 일종의 온라인 게임이자 시민과학 프로그램인 ‘아이와이어’(eyewire.org) 참여자의 도움을 받아 396개 신경절세포를 각각 분류했다. 게임 참여자들이 이미지에 색을 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포의 입체 구조가 완성되는 게임이다. 이렇게 파악된 입체 구조를 비슷한 유형끼리 묶은 결과 세포가 최소 47종으로 전문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움직임’이나 ‘사물의 윤곽’ 등 성격이 다른 시각정보를 각기 따로 포착해 뇌에 전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 결과는 생명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셀’ 17일자(현지 시간)에 발표됐다.
김 책임연구원팀은 이 연구가 신경절세포 손상에 의해 발생하는 녹내장 등 질병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배경에는 더 큰 목적이 있다. 장차 시각 특화 뇌지도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건물 구조를 알기 위해 곳곳에 사용된 건축자재가 유리인지 철근인지 파악했다면, 이제는 이들이 연결된 구조를 조사해 진짜 구조를 볼 예정이다. 한국뇌연구원은 이렇게 만든 뇌지도를 바탕으로 소뇌와 대뇌의 뇌지도까지 만들 계획이다.
뇌지도는 뇌 속 정보처리 ‘길’을 찾기 위해 860억 개에 이르는 신경세포가 갖는 총 수백조 개의 연결망을 분석하겠다는 프로젝트다. ‘우주 최후의 신비’로 꼽히는 뇌를 이해할 최선의 방법으로 약 5년 전부터 국제 과학계 최대의 이슈였다. 유럽연합(EU)은 2005년부터 인공뇌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2013년 ‘휴먼브레인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뇌라는 ‘오지’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약 10년간 1조 원을 투자하는 초대형 연구였다. 같은 해 미국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뇌과학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규모는 더욱 커져서 10여 년 사이에 5조 원을 오롯이 뇌지도 등 뇌 연구에 쏟아붓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이후 5년이 지난 뒤 상황이 변했다. 자신만만했던 미국과 EU는 간절히 세계 각국과의 공동 연구를 논의하고 있다. 2016년 미국, EU, 일본, 중국, 이스라엘, 호주, 한국 등이 주축이 돼 ‘국제뇌과학이니셔티브(IBI)’라는 국제협력 선언이 이뤄진 데 이어 10, 11일에는 대구 한국뇌연구원과 서울 국회에서 ‘제1회 IBI 대표자회의’가 열렸다. 미국과 EU는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할 테니 모두 함께 연구하자”고 손짓했다.
이유는 데이터. 김 책임연구원팀이 시민과학의 힘을 빌린 데에서 알 수 있듯 뇌 연구는 천문학적인 데이터 처리가 필수다. 미국이나 유럽도 혼자는 감당이 안 된다. 미국 비영리과학재단 캐블리의 미국·국제 뇌과학이니셔티브 책임자인 캐럴라인 몬토조 과학프로그램담당관은 “중력파 발견 때처럼 각국의 다양한 분야 뇌과학자들이 모여 함께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품앗이 연구’로 급박한 사회 문제에 효율적으로 공동 대응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일본이 10년 동안 약 4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진행하고 있는 영장류 뇌과학 연구 프로젝트 브레인/마인즈(Brain/MINDS)의 총괄 책임자인 오카베 시게오 도쿄대 교수는 “한국과 일본, 중국은 공통적으로 고령화와 치매 문제가 심각하다”며 “일본의 영장류 연구와 한국의 쥐 및 인간 뇌 연구가 결합하면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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