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나선 한국오라클 직원들... 문제는 불합리한 임금 체계
동아닷컴
입력 2018-05-16 18:32 수정 2018-05-16 18:42
한국오라클 노조가 외국계 IT 기업에 설립된 노조 가운데 처음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16일 한국 오라클 노동조합원 200여명은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 앞에서 "김형래(한국오라클 사장) 아웃", "부당매출 아웃", "욕설갑질 아웃"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굵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파업에 돌입했다. 아셈타워는 한국오라클 본사가 위치한 장소다. 한국오라클의 파업은 16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된다. 이 기간 동안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은 고객서비스 지원 등 모든 업무를 중단한다.
현재 한국오라클에는 1150여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이 가운데 노조 가입 대상이 될 수 없는 임원, 단기계약직 등을 제외하면 약 1000여명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약 600여명이 노조에 가입한 상태다. 전체 직원의 50% 이상이 노조에 가입할 만큼 근무조건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태였다.
한국오라클 노조는 왜 파업에 돌입한 것일까. 문제의 핵심은 불합리한 임금 체계다. 한국오라클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을 올려주는 기존 체계는 전혀 따르지 않는다. 오직 처음 입사할 때 정한 연봉을 바탕으로 영업에 따른 성과금만 지급하는 구조다. 때문에 입사 20년차 부장보다 최근 입사한 30대 경력직의 연봉이 더 높은 황당한 경우가 잦았다. 한국오라클 직원 사이에선 연봉을 올리고 싶으면 퇴사를 했다가 다시 복직하면서 연봉재계약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인 농담이 돌아다닐 정도였다. 실제로 1998년 입사해 근무한지 올해로 20년차가 된 직원의 월급이 고작 230만원의 불과하다는게 김철수 한국오라클 노조위원장의 설명이다.
물론 한국오라클이 아무런 이유 없이 임금 상승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국오라클에 소속된 많은 직원들은 기본급을 최소한으로 잡고 목표치 달성에 따른 성과급을 추가로 지급하는 방식의 임금 체계를 따르고 있었다. 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는 오라클의 주력 사업인 유닉스 서버와 데이터베이스 관련 영업이 잘되어 성과급으로 낮은 기본급에 따른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 클라우드 컴퓨팅이 대두되면서 유닉스 서버와 데이터베이스 관련 영업과 지원이 주춤하게 되었고, 이는 곧 직원들의 성과급이 줄어드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노조측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에는 설정한 영업 목표의 50%를 달성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신규 직원과 기존 직원 사이의 차별 대우도 한국오라클 직원들이 거리에 나선 이유다. 한국오라클은 작년 클라우드 관련 영업 조직인 오라클 디지털 프라임(ODP)을 신설하면서 신규 직원을 대거 확충했다. 이들 역시 오라클의 임금 체계를 따르지만 급성장하고 있는 클라우드 사업과 현상유지에 급급한 유닉스 서버, 데이터베이스와 영업 성과가 차이날 수밖에 없다. 결국 신규 직원이 기본급도 더 높고, 성과급도 더 받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오라클은 유한회사라 회사의 매출, 영업이익, 배당금, 임금 등이 공개되어 있지 않다. 회사가 많은 영업이익을 내더라도 대부분의 돈을 배당금, 로열티 등의 명목으로 미국 오라클 본사로 보낸다. 직원들은 회사의 경영실적조차 모른채 영업이익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 노조를 설립해서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직원들이 얼마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있는지 알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주장이다.
불안정한 고용 상황도 노조측이 파업을 시작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노조측에 따르면 작년 한국오라클은 100여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이나 해고를 진행했다. 전체 직원의 1/10에 달하는 수치다. 그러면서 클라우드 관련 영업 조직을 신설하고 관련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는 등 모순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김 위원장은 "현재 한국오라클은 수익을 해외로 빼돌리면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세청으로부터 약 3000억 원의 추징금을 받아 이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김앤장 등 법무법인에게 지급한 비용만 250억 원에 달한다"며, "이번 파업 이후에도 회사의 변화가 없을 경우 노조 대위원회의를 거쳐 파업 기간 연장 등의 추가 대응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오라클은 이러한 직원들의 파업이 공론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대외 홍보 활동을 중단했다. 17일 오라클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여겨지는 인공지능 기반의 '자율운영데이터베이스'를 한국에 선보이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취소했다. 기자들의 관심이 자율운영데이터베이스보다 노조와의 분쟁에 더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한국오라클 노조의 파업은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IT 외투법인의 현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매출과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의 한국법인이지만, 그 구성원들은 이에 따른 보상과 고용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빛좋은 개살구가 따로 없는 셈이다. HP코리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등 국내에 진출한지 오래된 IT 외투법인에서도 최근 노조가 설립되어 회사를 대상으로 단체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불합리한 임금 체계와 본사 영업지침에 따른 무리한 구조조정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과 노동계도 이들의 움직임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주로 정의당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정의당은 넷마블의 불합리한 근무시간을 지적하고, 네이버 노조 설립을 지원하는 등 IT 업계의 노동활동에 많은 관심을 보내고 있다. 이번 한국오라클의 노조설립 및 파업에도 정의당이 많은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IT 기업 노조는 민주노총 산별노조로 가입한 상태다. 다소 친기업적인 행보를 보이는 한국노총보다 노동자의 권리챙취에 초점을 맞추는 민주노총이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더 도움이 될것으로 판단되어서다. 민주노총 산별노조 역시 IT 기업의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는데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닷컴 IT전문 강일용 기자 zero@donga.com
현재 한국오라클에는 1150여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이 가운데 노조 가입 대상이 될 수 없는 임원, 단기계약직 등을 제외하면 약 1000여명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약 600여명이 노조에 가입한 상태다. 전체 직원의 50% 이상이 노조에 가입할 만큼 근무조건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태였다.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한국오라클 노조가 파업을 진행 중인 모습>(출처=IT동아)
한국오라클 노조는 왜 파업에 돌입한 것일까. 문제의 핵심은 불합리한 임금 체계다. 한국오라클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을 올려주는 기존 체계는 전혀 따르지 않는다. 오직 처음 입사할 때 정한 연봉을 바탕으로 영업에 따른 성과금만 지급하는 구조다. 때문에 입사 20년차 부장보다 최근 입사한 30대 경력직의 연봉이 더 높은 황당한 경우가 잦았다. 한국오라클 직원 사이에선 연봉을 올리고 싶으면 퇴사를 했다가 다시 복직하면서 연봉재계약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인 농담이 돌아다닐 정도였다. 실제로 1998년 입사해 근무한지 올해로 20년차가 된 직원의 월급이 고작 230만원의 불과하다는게 김철수 한국오라클 노조위원장의 설명이다.
물론 한국오라클이 아무런 이유 없이 임금 상승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국오라클에 소속된 많은 직원들은 기본급을 최소한으로 잡고 목표치 달성에 따른 성과급을 추가로 지급하는 방식의 임금 체계를 따르고 있었다. 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는 오라클의 주력 사업인 유닉스 서버와 데이터베이스 관련 영업이 잘되어 성과급으로 낮은 기본급에 따른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 클라우드 컴퓨팅이 대두되면서 유닉스 서버와 데이터베이스 관련 영업과 지원이 주춤하게 되었고, 이는 곧 직원들의 성과급이 줄어드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노조측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에는 설정한 영업 목표의 50%를 달성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신규 직원과 기존 직원 사이의 차별 대우도 한국오라클 직원들이 거리에 나선 이유다. 한국오라클은 작년 클라우드 관련 영업 조직인 오라클 디지털 프라임(ODP)을 신설하면서 신규 직원을 대거 확충했다. 이들 역시 오라클의 임금 체계를 따르지만 급성장하고 있는 클라우드 사업과 현상유지에 급급한 유닉스 서버, 데이터베이스와 영업 성과가 차이날 수밖에 없다. 결국 신규 직원이 기본급도 더 높고, 성과급도 더 받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오라클은 유한회사라 회사의 매출, 영업이익, 배당금, 임금 등이 공개되어 있지 않다. 회사가 많은 영업이익을 내더라도 대부분의 돈을 배당금, 로열티 등의 명목으로 미국 오라클 본사로 보낸다. 직원들은 회사의 경영실적조차 모른채 영업이익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 노조를 설립해서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직원들이 얼마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있는지 알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주장이다.
불안정한 고용 상황도 노조측이 파업을 시작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노조측에 따르면 작년 한국오라클은 100여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이나 해고를 진행했다. 전체 직원의 1/10에 달하는 수치다. 그러면서 클라우드 관련 영업 조직을 신설하고 관련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는 등 모순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김 위원장은 "현재 한국오라클은 수익을 해외로 빼돌리면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세청으로부터 약 3000억 원의 추징금을 받아 이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김앤장 등 법무법인에게 지급한 비용만 250억 원에 달한다"며, "이번 파업 이후에도 회사의 변화가 없을 경우 노조 대위원회의를 거쳐 파업 기간 연장 등의 추가 대응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오라클은 이러한 직원들의 파업이 공론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대외 홍보 활동을 중단했다. 17일 오라클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여겨지는 인공지능 기반의 '자율운영데이터베이스'를 한국에 선보이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취소했다. 기자들의 관심이 자율운영데이터베이스보다 노조와의 분쟁에 더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오라클(출처=IT동아)
한국오라클 노조의 파업은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IT 외투법인의 현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매출과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의 한국법인이지만, 그 구성원들은 이에 따른 보상과 고용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빛좋은 개살구가 따로 없는 셈이다. HP코리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등 국내에 진출한지 오래된 IT 외투법인에서도 최근 노조가 설립되어 회사를 대상으로 단체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불합리한 임금 체계와 본사 영업지침에 따른 무리한 구조조정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과 노동계도 이들의 움직임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주로 정의당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정의당은 넷마블의 불합리한 근무시간을 지적하고, 네이버 노조 설립을 지원하는 등 IT 업계의 노동활동에 많은 관심을 보내고 있다. 이번 한국오라클의 노조설립 및 파업에도 정의당이 많은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IT 기업 노조는 민주노총 산별노조로 가입한 상태다. 다소 친기업적인 행보를 보이는 한국노총보다 노동자의 권리챙취에 초점을 맞추는 민주노총이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더 도움이 될것으로 판단되어서다. 민주노총 산별노조 역시 IT 기업의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는데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닷컴 IT전문 강일용 기자 ze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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