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정차 차량에 큰 사고 났는데…내 책임?
동아일보
입력 2013-01-14 03:00 수정 2013-01-14 09:35
[시동 꺼! 반칙운전] <7> 주행차로 불법주정차
불법주정차 잠깐인데 어때?… 대형 추돌사고 부르는 폭탄
8개월여 전 주행차로에 멈춰서 있는 불법 정차 차량 때문에 크게 사고를 낸 직장인 최모 씨(27·여)는 아직까지 핸들을 잡지 않고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왕복 4차로의 오른쪽 차로로 주행하던 중이었다. 앞에 가던 차가 급히 왼쪽으로 차로를 변경했다. 앞차가 사라지자마자 김 씨 앞에 택시가 나타났다. 택시는 비상등도 켜지 않은 채 멈춰 섰다. 이미 차로를 바꾸기엔 흐름을 놓쳐 멈춰야 했다. 그 사이 신호는 적색으로 바뀌었고 다시 녹색신호가 됐다. 하지만 택시는 여전히 움직일 줄 몰랐다. 최 씨는 결국 왼쪽 차로로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순순히 끼워 주는 차량은 없었다. 잠깐의 틈이 생긴 순간 재빨리 핸들을 꺾었지만 하필 그 순간 빠르게 달려오던 차에 받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택시 불법 주차 때문이라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택시는 이미 자리를 떴고 결국 최 씨는 상대방보다 9배 많은 책임을 떠안고 손해를 물어줬다.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 마장동. 오토바이를 몰고 가던 자영업자 송모 씨(39)는 도로에 차를 세워 놓고 생수통을 내리던 이모 씨(60)의 트럭을 들이받았다. 왕복 2차로의 좁은 도로였다. 코너를 돌자마자 트럭이 나타나 피할 겨를이 없었다. 송 씨는 “길가에 차를 대 놓고 작업 중이면서도 누구도 안전조치를 해 놓지 않았다”라며 “도로가 작업장으로 변한 지 오래됐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행차로 내 불법 주정차는 ‘반칙운전’의 대표 격이다. 불법 주정차된 차를 만난 운전자는 어쩔 수 없이 차로를 바꿔야 하지만 양보를 잘 하지 않는 운전자 성향 때문에 운전은 더욱 짜증나고 사고 위험성은 높아진다.
○ 얌체 운전자들의 천국
9일 오후 3시 9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서울시 교통지도과 불법 주차 단속반이 도착했다. 혼잡한 도심에서 13대의 차가 오른쪽 차로를 차지한 채 일렬로 죽 늘어서 있었다.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이 열린 후 스케이트를 타러 온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도로에 불법 주차를 해 놓는 경우가 많아요.” 단속반 김종관 조장(65)이 고개를 저었다. “대중교통으로도 편히 올 수 있는 시내 한복판에 왜 차를 몰고 와서 불법 주차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단속반과 기자가 탄 폐쇄회로(CC)TV 설치 차량이 불법 주차된 차들의 번호판을 찍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맨 마지막에 서 있는 흰색 SUV 차량은 초코과자 상자를 찢어 뒤쪽 번호판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단속 카메라에 번호판이 찍히지 않게 하려는 ‘꼼수’였다. 보다 못한 단속반이 차에서 내려 다가가자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멀쩡한 차림의 건장한 남성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그는 단속반에 얼른 차를 빼겠다며 상자를 치운 뒤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단속반이 서울역 인근 상가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군데군데 트렁크를 열어 둔 승용차들이 눈에 띄었다. 짐 싣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단속 카메라에 찍히지 않으려고 번호판이 달려 있는 트렁크를 열어두는 것. 단속반원들은 “저런 차량 운전자 중에는 실제론 오랫동안 주차를 해 놓으면서도 잠시 멈춰 있는 것처럼 눈속임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단속반원이 차에서 내리면 근처 상가에서 나와 단속을 막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연구원은 도로상 불법 주정차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연간 4조3565억 원으로 추산했다. 꼬리물기 718억 원, 진출입로 끼어들기 277억 원과 비교하면 불법 주정차가 미치는 폐해의 규모가 엄청난 것이다. 연구원은 “주행차로 내 불법 주정차 문제만 완전히 해결된다면 교통 혼잡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62%는 줄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기자가 7일 오후 서울에서 불법 주정차가 제일 심각하다는 남대문로 일대 1.2km 구간의 불법 주정차 차량을 직접 세어 본 결과 63대나 됐다. 약 19m당 한 대꼴이었고 이중으로 주차된 경우도 많았다. 이륜차나 리어카는 제외한 수다.
○ “민간에 단속 맡겨야 공정”
하지만 단속은 여러모로 쉽지 않다. ‘얌체’ 운전자들은 물론이고 단속반이 가진 CCTV에는 햇빛에 반사된 차량 번호판이 제대로 찍히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도로에서 장사하고 있는 ‘생계형’ 불법 주정차는 너무 가혹하다는 이유로 단속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영국이나 일본처럼 주차 단속을 민간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교통연구원 윤장호 연구위원은 “불법주정차 단속은 반발 민원이 많아 지금처럼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게 되면 당연히 민원을 피하고자 제대로 안 하기 마련”이라며 “그러다 보니 단속에 걸리면 ‘재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주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실적으로만 평가받는 민간 업체가 단속을 맡는 것이 더 공정한 법 집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연구위원은 최근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재래시장이나 점심시간 불법 주정차 봐주기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정한 시간대나 상황에서는 불법도 괜찮다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라며 “영세 상인 보호와 쾌적한 도로 만들기 중 어느 것이 우선순위인지를 확실히 정하고, 영세 상인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제대로 된 주차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 [채널A 영상] ]선로 위 불법주차…“얘들아 옮기자”
불법주정차 잠깐인데 어때?… 대형 추돌사고 부르는 폭탄
8개월여 전 주행차로에 멈춰서 있는 불법 정차 차량 때문에 크게 사고를 낸 직장인 최모 씨(27·여)는 아직까지 핸들을 잡지 않고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왕복 4차로의 오른쪽 차로로 주행하던 중이었다. 앞에 가던 차가 급히 왼쪽으로 차로를 변경했다. 앞차가 사라지자마자 김 씨 앞에 택시가 나타났다. 택시는 비상등도 켜지 않은 채 멈춰 섰다. 이미 차로를 바꾸기엔 흐름을 놓쳐 멈춰야 했다. 그 사이 신호는 적색으로 바뀌었고 다시 녹색신호가 됐다. 하지만 택시는 여전히 움직일 줄 몰랐다. 최 씨는 결국 왼쪽 차로로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순순히 끼워 주는 차량은 없었다. 잠깐의 틈이 생긴 순간 재빨리 핸들을 꺾었지만 하필 그 순간 빠르게 달려오던 차에 받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택시 불법 주차 때문이라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택시는 이미 자리를 떴고 결국 최 씨는 상대방보다 9배 많은 책임을 떠안고 손해를 물어줬다.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 마장동. 오토바이를 몰고 가던 자영업자 송모 씨(39)는 도로에 차를 세워 놓고 생수통을 내리던 이모 씨(60)의 트럭을 들이받았다. 왕복 2차로의 좁은 도로였다. 코너를 돌자마자 트럭이 나타나 피할 겨를이 없었다. 송 씨는 “길가에 차를 대 놓고 작업 중이면서도 누구도 안전조치를 해 놓지 않았다”라며 “도로가 작업장으로 변한 지 오래됐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행차로 내 불법 주정차는 ‘반칙운전’의 대표 격이다. 불법 주정차된 차를 만난 운전자는 어쩔 수 없이 차로를 바꿔야 하지만 양보를 잘 하지 않는 운전자 성향 때문에 운전은 더욱 짜증나고 사고 위험성은 높아진다.
○ 얌체 운전자들의 천국
9일 오후 3시 9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서울시 교통지도과 불법 주차 단속반이 도착했다. 혼잡한 도심에서 13대의 차가 오른쪽 차로를 차지한 채 일렬로 죽 늘어서 있었다.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이 열린 후 스케이트를 타러 온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도로에 불법 주차를 해 놓는 경우가 많아요.” 단속반 김종관 조장(65)이 고개를 저었다. “대중교통으로도 편히 올 수 있는 시내 한복판에 왜 차를 몰고 와서 불법 주차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단속반과 기자가 탄 폐쇄회로(CC)TV 설치 차량이 불법 주차된 차들의 번호판을 찍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맨 마지막에 서 있는 흰색 SUV 차량은 초코과자 상자를 찢어 뒤쪽 번호판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단속 카메라에 번호판이 찍히지 않게 하려는 ‘꼼수’였다. 보다 못한 단속반이 차에서 내려 다가가자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멀쩡한 차림의 건장한 남성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그는 단속반에 얼른 차를 빼겠다며 상자를 치운 뒤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단속반이 서울역 인근 상가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군데군데 트렁크를 열어 둔 승용차들이 눈에 띄었다. 짐 싣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단속 카메라에 찍히지 않으려고 번호판이 달려 있는 트렁크를 열어두는 것. 단속반원들은 “저런 차량 운전자 중에는 실제론 오랫동안 주차를 해 놓으면서도 잠시 멈춰 있는 것처럼 눈속임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단속반원이 차에서 내리면 근처 상가에서 나와 단속을 막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연구원은 도로상 불법 주정차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연간 4조3565억 원으로 추산했다. 꼬리물기 718억 원, 진출입로 끼어들기 277억 원과 비교하면 불법 주정차가 미치는 폐해의 규모가 엄청난 것이다. 연구원은 “주행차로 내 불법 주정차 문제만 완전히 해결된다면 교통 혼잡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62%는 줄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기자가 7일 오후 서울에서 불법 주정차가 제일 심각하다는 남대문로 일대 1.2km 구간의 불법 주정차 차량을 직접 세어 본 결과 63대나 됐다. 약 19m당 한 대꼴이었고 이중으로 주차된 경우도 많았다. 이륜차나 리어카는 제외한 수다.
○ “민간에 단속 맡겨야 공정”
하지만 단속은 여러모로 쉽지 않다. ‘얌체’ 운전자들은 물론이고 단속반이 가진 CCTV에는 햇빛에 반사된 차량 번호판이 제대로 찍히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도로에서 장사하고 있는 ‘생계형’ 불법 주정차는 너무 가혹하다는 이유로 단속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영국이나 일본처럼 주차 단속을 민간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교통연구원 윤장호 연구위원은 “불법주정차 단속은 반발 민원이 많아 지금처럼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게 되면 당연히 민원을 피하고자 제대로 안 하기 마련”이라며 “그러다 보니 단속에 걸리면 ‘재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주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실적으로만 평가받는 민간 업체가 단속을 맡는 것이 더 공정한 법 집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연구위원은 최근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재래시장이나 점심시간 불법 주정차 봐주기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정한 시간대나 상황에서는 불법도 괜찮다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라며 “영세 상인 보호와 쾌적한 도로 만들기 중 어느 것이 우선순위인지를 확실히 정하고, 영세 상인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제대로 된 주차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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