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연봉 없던 일로… 재계 “수익성 없는데 응하면 배임죄”
김현수 기자 , 이형주 기자 , 김성규 기자
입력 2018-11-16 03:00 수정 2018-11-16 13:59
[광주형 일자리 좌초 위기]광주시-노동계, 당초 제안 번복
“벽 보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협상에 참여한 광주시와 현대자동차, 지역 노동계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광주형 일자리를 두고 협상을 진행할수록 서로의 동상이몽(同床異夢)만 확인하고 있다는 얘기다.
3월 광주 노사민정협의회가 ‘광주형 일자리 사업 실현을 위한 공동결의문’을 채택하면서 광주형 일자리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이후 8개월이 지났지만 선뜻 투자하겠다는 기업은 없다. 그나마 5월 530억 원 투자 의향을 밝힌 현대차와의 협상마저 6개월째 제자리다. 광주시와 지역 노동계는 14일 최종 합의문을 도출했지만 이 안에 대한 현대차의 입장은 회의적이다. 데드라인으로 설정한 15일에도 양측은 서로의 이견만 확인했다.
광주시는 현대차가 2대 주주로 참여하는 합작법인을 설립해 2022년까지 빛그린산단 부지 62만8000m²에 연간 10만 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을 세우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광주시민들도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며 추진되길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을 정치논리로 접근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시각, 뿌리 깊은 노사 갈등의 벽 등이 얽혀 광주시민들의 희망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줄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반값 연봉 어디로
현대차의 입장은 분명하다.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에 투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5월 ‘주 44시간 평균임금 3500만 원’ 제안이 왔을 때 1000cc 이하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을 위탁한다면 수익성이 있다고 봤다. 경형 SUV는 마진이 적어 생산비용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 게다가 현대차는 아직 경형 SUV를 생산하지 않고 있어 기존 공장에서 물량을 빼오지 않아도 된다. 자사 노조를 설득할 수 있다고 본 이유다.
그런데 9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중심으로 한 지역 노동계가 광주시와 현대차의 ‘밀실협상’을 반대하며 협상 불참을 선언했다. 그러다 10월부터 논의가 재개된 후 이달 14일에 공개된 합의문이 나왔다. 현대차 측은 ‘기존 합의와 180도 달라졌다’며 황당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수익성 담보가 어려워졌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조건은 가까운 곳에 공장을 두고 있는 기아차 평균 임금(9300만 원) 수준으로 임금이 높아질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임금 상승 결정도 애초에 물가에 연동하기로 했다가 매년 노사가 합의해야 하는 사안으로 바뀌었다. 협력사 임금과 단가까지 노동계와 협의해야 한다는 문구도 있다.
이에 대해 광주시와 지역노동계는 5월 ‘44시간 평균임금 3500만 원’은 구두로 제안했을 뿐 적정임금은 공장 설립 후 확정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광주시 투자유치단 관계자는 “2021년 공장 설립 후 경영수지 분석을 해서 이익규모 등을 파악해 임금과 근로시간을 정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했다.
○ 기업 모르는 자치단체
시가 기업의 생리를 너무 모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을 유치할 만한 사업모델을 만들어야 할 주체가 노동계에 휘둘려 엉뚱한 제안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협력업체 임금과 납품 단가를 연계해 정하자는 주장이나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경영권 침해 소지가 커 기업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세계 어디를 가도 지역 정부는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온갖 혜택을 약속한다. 현대차에 투자하라고 하면서 덩달아 노동계 주장도 받아들이라 한 뒤, 정치권이 덩달아 압박하면 기업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광주형 일자리의 본질은 시가 주체가 돼 매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한 뒤 위탁생산할 ‘고객’을 찾는 것인데 시는 스스로를 중재자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요즘 기업 실적도 안 좋은데 붙들고 압박하는 게 온당한가”라고 말했다.
뿌리 깊은 노사 갈등도 협상 난항에 영향을 미쳤다. 지역 노동계는 현대차가 노사협상 경험이 적은 광주시를 상대로 ‘평균임금’과 ‘초임 평균임금’ 구분 없이 무조건 3000만∼3500만 원으로 해 이득을 챙기려 했다고 보고 있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은 15일 기자와 만나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위해 지역 노동계에서는 양보를 할 만큼 해 더 이상 양보할 것도 없다. 현대차가 더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할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현대차는 투자 확약서에 적정임금 수준, 근로조건을 명시하지 않으면 향후 노무 리스크에 시달릴 것으로 보고 있다. 협상 중인 광주시 관계자는 “수십 년간 쌓여온 노사 간 불신의 장벽을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 / 광주=이형주 / 김성규 기자
“벽 보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협상에 참여한 광주시와 현대자동차, 지역 노동계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광주형 일자리를 두고 협상을 진행할수록 서로의 동상이몽(同床異夢)만 확인하고 있다는 얘기다.
3월 광주 노사민정협의회가 ‘광주형 일자리 사업 실현을 위한 공동결의문’을 채택하면서 광주형 일자리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이후 8개월이 지났지만 선뜻 투자하겠다는 기업은 없다. 그나마 5월 530억 원 투자 의향을 밝힌 현대차와의 협상마저 6개월째 제자리다. 광주시와 지역 노동계는 14일 최종 합의문을 도출했지만 이 안에 대한 현대차의 입장은 회의적이다. 데드라인으로 설정한 15일에도 양측은 서로의 이견만 확인했다.
광주시는 현대차가 2대 주주로 참여하는 합작법인을 설립해 2022년까지 빛그린산단 부지 62만8000m²에 연간 10만 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을 세우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광주시민들도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며 추진되길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을 정치논리로 접근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시각, 뿌리 깊은 노사 갈등의 벽 등이 얽혀 광주시민들의 희망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줄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반값 연봉 어디로
현대차의 입장은 분명하다.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에 투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5월 ‘주 44시간 평균임금 3500만 원’ 제안이 왔을 때 1000cc 이하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을 위탁한다면 수익성이 있다고 봤다. 경형 SUV는 마진이 적어 생산비용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 게다가 현대차는 아직 경형 SUV를 생산하지 않고 있어 기존 공장에서 물량을 빼오지 않아도 된다. 자사 노조를 설득할 수 있다고 본 이유다.
그런데 9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중심으로 한 지역 노동계가 광주시와 현대차의 ‘밀실협상’을 반대하며 협상 불참을 선언했다. 그러다 10월부터 논의가 재개된 후 이달 14일에 공개된 합의문이 나왔다. 현대차 측은 ‘기존 합의와 180도 달라졌다’며 황당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수익성 담보가 어려워졌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조건은 가까운 곳에 공장을 두고 있는 기아차 평균 임금(9300만 원) 수준으로 임금이 높아질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임금 상승 결정도 애초에 물가에 연동하기로 했다가 매년 노사가 합의해야 하는 사안으로 바뀌었다. 협력사 임금과 단가까지 노동계와 협의해야 한다는 문구도 있다.
이에 대해 광주시와 지역노동계는 5월 ‘44시간 평균임금 3500만 원’은 구두로 제안했을 뿐 적정임금은 공장 설립 후 확정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광주시 투자유치단 관계자는 “2021년 공장 설립 후 경영수지 분석을 해서 이익규모 등을 파악해 임금과 근로시간을 정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했다.
○ 기업 모르는 자치단체
시가 기업의 생리를 너무 모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을 유치할 만한 사업모델을 만들어야 할 주체가 노동계에 휘둘려 엉뚱한 제안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협력업체 임금과 납품 단가를 연계해 정하자는 주장이나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경영권 침해 소지가 커 기업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세계 어디를 가도 지역 정부는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온갖 혜택을 약속한다. 현대차에 투자하라고 하면서 덩달아 노동계 주장도 받아들이라 한 뒤, 정치권이 덩달아 압박하면 기업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광주형 일자리의 본질은 시가 주체가 돼 매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한 뒤 위탁생산할 ‘고객’을 찾는 것인데 시는 스스로를 중재자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요즘 기업 실적도 안 좋은데 붙들고 압박하는 게 온당한가”라고 말했다.
뿌리 깊은 노사 갈등도 협상 난항에 영향을 미쳤다. 지역 노동계는 현대차가 노사협상 경험이 적은 광주시를 상대로 ‘평균임금’과 ‘초임 평균임금’ 구분 없이 무조건 3000만∼3500만 원으로 해 이득을 챙기려 했다고 보고 있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은 15일 기자와 만나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위해 지역 노동계에서는 양보를 할 만큼 해 더 이상 양보할 것도 없다. 현대차가 더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할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현대차는 투자 확약서에 적정임금 수준, 근로조건을 명시하지 않으면 향후 노무 리스크에 시달릴 것으로 보고 있다. 협상 중인 광주시 관계자는 “수십 년간 쌓여온 노사 간 불신의 장벽을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 / 광주=이형주 / 김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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