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장기불황 탈출’ 아베노믹스 설계자 “韓, 경제체질 바꿔라”
뉴시스
입력 2018-11-12 09:10 수정 2018-11-12 09:12
일본을 20년 장기불황에서 구출해 낸 주역은 ‘아베노믹스’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지난 9월 집권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3연임에 성공하면서 전후 최장수 총리 재임 기록을 세울 수 있게 된 것도 그의 경제정책에 대한 일본 정치권과 국민들의 평가와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베노믹스’의 철학과 정책, 그리고 공(功)과 과(過)에 대해 ‘아베노믹스’의 설계자로 불리는 가쿠슈인대학교(?習院大?)의 이토 모토시게(伊藤元重) 교수로부터 직접 들어봤다.
도쿄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유학한 이토 교수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아베 총리가 2012년 재집권하기 전부터 경제 분야에 대해 조언해왔다. 아베 총리 재집권 직후 경제재정자문회의 민간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아베노믹스’ 설계에 참여한 그는 특히 법인세 인하의 효과에 대해 강조해왔으며 실제로 법인세 인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최근 한국에서는 일본 경제 부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 한가운데 ‘아베노믹스’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데 ‘아베노믹스’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
“정부의 과감한 정책과 스피드있는 실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2012년 정권을 되찾은 아베 총리가 내놓은 경제정책, ‘아베노믹스’는 이른바 ‘세 개의 화살’, 통화정책, 재정정책, 성장정책으로 요약된다. 나는 이러한 정책을 제시하고 바로 스피디있게 실행하는 아베 정권의 ‘행동’이 ‘아베노믹스’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아베 정권은 35%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법인세를 여러 차례에 걸쳐 20%대까지 낮췄다. 이런 과감한 정책 실행이 ‘아베노믹스’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 ‘아베노믹스’의 구체적인 성과를 말해달라.
“아베 총리가 재집권하기 전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에 허덕이고 있었는데다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 등의 국제금융 위기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마이너스까지 내려가는 등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일본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급속히 진행됐다. 그러나 2009년 54년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당시 민주당 정권은 이러한 일본의 경제 상황에 맞는 정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고 이마저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12년 정권을 되찾은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라는 강력한 처방전을 내놓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이로인해 GDP는 2012년 493조엔(약 4930조원)에서 2017년 549조엔(약 5490조원)으로 증가했다. 주가도 2012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올랐고 이로인해 기업들의 영업실적도 향상됐다. 구직자 대비 구인자 비율, 즉 유효구인배율은 2012년 0.83배에서 2017년 1.56배로 사실상 완전고용상태이다. ‘아베노믹스’로 6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낸 것은 평가할만하다고 생각한다.”
▲ 2012년 ‘아베노믹스’의 청사진으로 내놓은 목표가 아직도 다 달성하지 못해 이제 꺾이는 것 아닌가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의 활성화에는 성공했지만 잠재성장률이 아직까지 1%에 머물러있는 등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잠재성장률이 낮으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가 2013년에 ‘2년 내 물가상승률을 2%로 올리겠다’고 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물가는 충분히 인상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업의 영업 이익은 늘어났지만 임금 상승이 동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본래 목적은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국가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경제는 호조지만 일본과 마찬가지로 잠재성장률이 1%대로 낮다.
이같은 결과는 정부가 금융정책 등으로 이끌고 가면서 경제 활성화의 분위기는 만들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는 점, 즉 정부의 역할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기업의 투자 등을 이끌어내는 환경을 만들 것인가가 아베노믹스의 과제이기도 하다.”
▲ ‘아베노믹스’의 출구전략을 세워야할 때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물가상승률 2% 목표를 위해 금융 양적완화정책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던 것이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제까지나 경제정책의 중심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앞으로 이에 대한 출구전략을 세우는 것이 향후 ‘아베노믹스’의 목표가 될 것이다. 중장기적 방향성을 생각해야하는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일본 기업들이 아베노믹스로 인해 영업 이익이 높아졌지만 아직 선뜻 투자하지는 않고 있다. 그래서 이를 투자로 이끌어내기 위한 환경을 만드는 정책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EV)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적극적인 정책을 마련해 기업의 투자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같은 정책을 통해 계속해서 일본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 ‘아베노믹스’를 설계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베 정권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앞으로도 계속 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노동개혁이다. 노동개혁과 관련해 2012년 아베 정권이 계획한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해고’ 유연성의 문제다. 일본에서는 기업이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해고가 어렵다는 것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측면도 있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새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의미한다. 그동안 아베 정권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늘리기 위해, 즉 해고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반발이 심해서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계시장에 발맞추려면 고용에 대한 생각도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한국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조언한다면?
“현 정권뿐만 아니라 이전 정권도 그렇고 한국 정부는 경제 체질을 바꾸는 정도의 과감한 정책을 시행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동안의 정책으로 잘 안됐다고 판단되면 그걸 과감하게 바꾸는 정책을 세우고 이를 바로 실행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아베노믹스의 경우 과감하게 금융 양적완화정책을 실시해 침체돼있던 일본 경제의 활성화를 이끌고 갔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의 소득분배를 고르게 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로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 할 수 있는 일은 과감히 실행하는 것이 지금 한국 정부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도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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