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다 전기 잘 통하는 구리 제작… “녹슬지도 않아 무궁무진 활용”[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허진석 기자
입력 2024-03-02 01:40 수정 2024-03-04 16:44
단결정 구리 박막으로 회로 소재 혁신 CIT
30년 넘게 금속 結晶 연구 정세영 부산대 교수와 협업
구리 원자 가지런히 정렬해 전도율 탁월한 박막 제작
원자 1개 두께 박막을 어떤 소재에도 붙이는 ASE 기술
5G-6G 통신기기 쓰이는 연성동박적층필름 시장 노려
CIT가 구리 박막을 절연체에 증착시켜 만든 연성동박적층필름(FCCL)은 고주파 통신 기기 주요 부품인 연성인쇄회로기판(FPCB)의 핵심 소재다. 정 대표는 “빠른 데이터 통신이 필요한 확장현실(XR)과 자율주행, 스마트 팩토리 시장을 보고 통신 기판용 필름 소재를 먼저 개발했다”며 “전기 전도성이 탁월하고 녹이 슬지 않는 구리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단결정 구리는 자연산 구리를 진공 상태에서 녹인 뒤 결정을 인공적으로 키워 만든다. 섭씨 1200∼1300도에서 0.1도 단위로 온도를 제어하는 기술은 만만치 않다. 결정이 성장하는 동안 결정을 키우는 축의 회전 속도나 방향 제어도 중요하다. 결정성장은 조그만 진동에도 큰 영향을 받기에 진동도 제대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구리를 단결정 박막으로 만드는 기술은 원자 증착 결정성장(ASE·Atomic Sputtering Epitaxy) 기술로 불린다. 아르곤 가스를 플라스마 형태로 만든 고압실에서 단결정 구리를 원자 단위로 분리해 원하는 절연체 표면에 고르게 입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뒤쪽이 훤히 보일 정도로 얇게 박막을 만들 수 있다. 그 표면은 원자 1개 두께 정도 편차만 날 정도로 ‘완벽하게’ 편평하다. CIT 측은 향후 10∼20년 내에는 이런 기술을 구현하는 곳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정 교수는 부산대에서 물리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독일 쾰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지내고 1991년부터 부산대에 재직하고 있다. 여러 단결정 금속을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단결정은행연구소장도 맡고 있다. 오디오 스피커에서 잡음을 없애주는, 단결정 구리로 만든 오디오 라인 제조 회사를 차린 경력도 있다.
정 대표는 러시아 모스크바 금속합금대에서 금속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실트론과 LS전선 등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기업에 있을 때 정 교수와 인연이 닿아 구리 박막 제조를 의뢰한 적이 있다. 그걸 해내는 정 교수의 실력에 탄복했다. 그리고 평소 교류가 있던 정 교수 연구실을 방문했다가 정 대표의 다양한 사업 경험을 아는 정 교수 제안으로 창업하게 됐다.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TFE)이 그런 절연체로 주목을 받아 왔다. 흔히 테프론이라고 부르며 프라이팬 코팅에도 쓰이는 이 소재는 다른 물질과 접착이 힘든 게 문제였다. 다른 기업이나 연구소에서는 구리 박막을 PTFE와 붙이기 위해 접착제 등을 만들어 봤다. 하지만 접착제 때문에 신호 손실이 커지고 속도가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CIT의 ASE 기술을 이용하면 PTFE 소재에 아무런 접착체 없이 증착시킬 수 있다. 정 대표는 “구리 박막의 균일한 분포로 생기는 자연 흡착력이 PTFE 소재에도 그대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용화된 FCCL 중 가장 높은 효율을 내는 일본 기업 제품(리퀴드 크리스털 폴리머)보다 더 신호를 잘 보내는 자체 테스트 결과를 얻었다”며 “5G나 6G는 물론 그 이후 나오는 고주파 대역 통신 기술까지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5G 통신 장비 구축이 더딘 요인 중에 이러한 원천 소재 기술 부족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IT는 올해 안으로 FCCL 양산 설비를 구축할 계획이다. 필름 두께는 후처리 공정을 고려해 300nm 수준으로 제작할 계획이다.
CIT는 웨어러블 전자 기기에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신축성 기판 필름 시제품도 만들어 뒀다. 정 대표는 “구리 박막을 신축성 있는 적절한 소재에 결합시킬 수 있는 ASE 기술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기판 소재를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박막 뒤쪽이 훤히 보일 정도 수준으로 구리 박막을 만들 수 있기에 최근 소개된 투명 디스플레이에 적용할 수 있는 박막 필름도 개발해 뒀다.
정 대표는 “올 2월 미국 하버드 메디컬스쿨과 의료용 센서를 공동 연구하기로 협약을 맺었다”며 “어떤 소재에도 붙일 수 있고 전기 전도성이 탁월한 구리 박막 기술이 더 다양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30년 넘게 금속 結晶 연구 정세영 부산대 교수와 협업
구리 원자 가지런히 정렬해 전도율 탁월한 박막 제작
원자 1개 두께 박막을 어떤 소재에도 붙이는 ASE 기술
5G-6G 통신기기 쓰이는 연성동박적층필름 시장 노려
정승 CIT 대표가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5세대(5G) 통신용 구리 필름 소재로 만든 성능 테스트용
안테나를 선보였다. 고주파 신호 손실이 거의 없어 6G 통신용 소재로도 쓸 수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부산 금정구 부산대 안에 있는 스타트업 CIT(정승 대표이사)는 구리 박막을 만든다. 자연 상태 구리를 물리적으로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단결정(單結晶·single crystal) 형태 구리로 만든 뒤 이를 이용해 박막을 만든다. 단결정 구리는 구리 원자들이 하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렬되도록 만든 ‘인공적인’ 구리다. 자연산 구리는 원자 배열 형태가 뒤죽박죽인 다결정(多結晶·polycrystal) 구리다. 원자들 연결이 끊긴 곳이 많고 비스듬히 연결된 곳도 많다. 이런 구조에서는 전기가 상대적으로 더디게 흐르지만 인류는 그런 구리에 익숙해 있다. 하지만 첨단 소재가 늘어나면서 단결정 구리가 주목받고 있다.투명판 위에 ASE 기술로 단결정 구리 박막을 입힌 시제품들. 뒤 글자가 보일 만큼 얇게 입힐 수 있다. 맨 왼쪽 박막 두께는
5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구리 원자 1개 두께(0.2nm) 박막도 만들 수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정승 대표(46)는 “단결정 구리는 최고급 산업 재료이기도 한 금보다 전기 전도성이 40% 정도 좋고 녹이 슬지도 않는다”고 했다. CIT는 이런 단결정 구리를 수십∼수백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두께 박막으로 만들며 이를 응용해 5세대(5G) 통신의 고주파(28GHz) 신호를 거의 손실 없이 전송될 수 있도록 해준다.CIT가 구리 박막을 절연체에 증착시켜 만든 연성동박적층필름(FCCL)은 고주파 통신 기기 주요 부품인 연성인쇄회로기판(FPCB)의 핵심 소재다. 정 대표는 “빠른 데이터 통신이 필요한 확장현실(XR)과 자율주행, 스마트 팩토리 시장을 보고 통신 기판용 필름 소재를 먼저 개발했다”며 “전기 전도성이 탁월하고 녹이 슬지 않는 구리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네이처’ 논문 게재 정세영 교수와 공동 창업
단결정 구리 ASE 기술을 개발한 정세영 부산대 교수. CIT 공동 창업자이자 기술개발책임자(CTO)다. CIT 제공
CIT는 실제로 구리 원자 1개 두께(약 0.2nm)로도 박막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정세영 부산대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가 개발한 기술이다. 정 대표와 정 교수가 CIT를 공동 창업했다. 금속 결정을 30여 년간 연구한 정 교수는 단결정 구리 제조 기술과 이 단결정 구리를 이용해 단결정 박막을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2022년에는 평평한 단결정 구리 표면에는 산소가 결합하기 힘들어 녹이 슬지 않는 현상을 규명한 논문을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에 게재하기도 했다.단결정 구리는 자연산 구리를 진공 상태에서 녹인 뒤 결정을 인공적으로 키워 만든다. 섭씨 1200∼1300도에서 0.1도 단위로 온도를 제어하는 기술은 만만치 않다. 결정이 성장하는 동안 결정을 키우는 축의 회전 속도나 방향 제어도 중요하다. 결정성장은 조그만 진동에도 큰 영향을 받기에 진동도 제대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구리를 단결정 박막으로 만드는 기술은 원자 증착 결정성장(ASE·Atomic Sputtering Epitaxy) 기술로 불린다. 아르곤 가스를 플라스마 형태로 만든 고압실에서 단결정 구리를 원자 단위로 분리해 원하는 절연체 표면에 고르게 입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뒤쪽이 훤히 보일 정도로 얇게 박막을 만들 수 있다. 그 표면은 원자 1개 두께 정도 편차만 날 정도로 ‘완벽하게’ 편평하다. CIT 측은 향후 10∼20년 내에는 이런 기술을 구현하는 곳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정 교수는 부산대에서 물리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독일 쾰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지내고 1991년부터 부산대에 재직하고 있다. 여러 단결정 금속을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단결정은행연구소장도 맡고 있다. 오디오 스피커에서 잡음을 없애주는, 단결정 구리로 만든 오디오 라인 제조 회사를 차린 경력도 있다.
정 대표는 러시아 모스크바 금속합금대에서 금속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실트론과 LS전선 등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기업에 있을 때 정 교수와 인연이 닿아 구리 박막 제조를 의뢰한 적이 있다. 그걸 해내는 정 교수의 실력에 탄복했다. 그리고 평소 교류가 있던 정 교수 연구실을 방문했다가 정 대표의 다양한 사업 경험을 아는 정 교수 제안으로 창업하게 됐다.
●“고주파 통신 소재로 5G 이후도 대비”
정승 CIT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4’ 전시회에서 5G 통신 기기 신호 손실을 최소화한 단결정 구리 필름을 설명하고 있다. CIT 제공
CIT가 노리는 시장은 5G 통신 기기에 쓰이는 FCCL이다. 구리 박막이 절연체에 붙어 있는 필름이다. 전자부품 회사들은 이 필름을 가져다가 그 위에 회로도를 그린다. 고주파를 신호 손실이나 속도 저하 없이 전송하려면 절연체도 중요하다.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TFE)이 그런 절연체로 주목을 받아 왔다. 흔히 테프론이라고 부르며 프라이팬 코팅에도 쓰이는 이 소재는 다른 물질과 접착이 힘든 게 문제였다. 다른 기업이나 연구소에서는 구리 박막을 PTFE와 붙이기 위해 접착제 등을 만들어 봤다. 하지만 접착제 때문에 신호 손실이 커지고 속도가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CIT의 ASE 기술을 이용하면 PTFE 소재에 아무런 접착체 없이 증착시킬 수 있다. 정 대표는 “구리 박막의 균일한 분포로 생기는 자연 흡착력이 PTFE 소재에도 그대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용화된 FCCL 중 가장 높은 효율을 내는 일본 기업 제품(리퀴드 크리스털 폴리머)보다 더 신호를 잘 보내는 자체 테스트 결과를 얻었다”며 “5G나 6G는 물론 그 이후 나오는 고주파 대역 통신 기술까지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5G 통신 장비 구축이 더딘 요인 중에 이러한 원천 소재 기술 부족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IT는 올해 안으로 FCCL 양산 설비를 구축할 계획이다. 필름 두께는 후처리 공정을 고려해 300nm 수준으로 제작할 계획이다.
정 대표는 “올 2월 미국 하버드 메디컬스쿨과 의료용 센서를 공동 연구하기로 협약을 맺었다”며 “어떤 소재에도 붙일 수 있고 전기 전도성이 탁월한 구리 박막 기술이 더 다양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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