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보조금 부추기는 이통사도, 때리는 방통위도 밉다"

동아닷컴

입력 2019-04-10 10:56 수정 2019-04-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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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0월, 혼탁한 이동통신 시장을 바로잡는다는 취지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이른바 '단통법'이 시행되었다. 이 법의 취지는 휴대전화 구입시 소비자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의 상한을 철저하게 제한함과 함께, 그 액수를 공시하게 하여 어디를 가더라도 동일한, 혹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가격으로 휴대전화를 살 수 있도록 하여 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이었다.

<이동통신 매장의 전경, 출처: IT동아>

그로부터 5년여의 시간이 지금, 이동통신 시장은 정말로 ‘정화’가 되었을까? 지난 3월 중순, 취재진은 익명을 요구한 한 이동전화 판매업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가 전한 내용은 사실상 불법행위를 조장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판매자들에게 떠넘기는 이동통신사들, 그리고 현실을 무시한 단속 우선주의만 강조하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대한 하소연에 가까웠다.


판매자끼리 서로 단속하는 '스나이퍼'의 딜레마

그의 주장에 따르면 3대 이동통신사들은 산하의 각 대리점에 이동전화 판매량을 할당함과 동시에 판매 실적에 따른 장려금(이른바 리베이트)을 설정하며, 대리점은 또다시 산하의 판매점에 판매 할당량과 장려금을 설정한다.

<불법 보조금 지금과 관련해 이동통신사가 판매자들에게 내린 제재 관련 공지의 일부, 출처: IT동아>

그리고 이동통신사는 이와 더불어 경쟁사 판매점이 공시된 액수 이상의 보조금을 고객에게 지급할 경우, 증거를 수집해 신고할 것(이른바 스나이퍼)을 대리점을 통해 판매점에게 지시한다. 불법 보조금이 확인될 경우 해당 대리점에 판매이익 및 장려금 환수, 전산정지 등의 불이익을 가하며, 반대로 이를 적발한 판매점에는 포상금을 준다고 제보자는 밝혔다.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이렇게 적발된 판매점의 명단을 매주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에게 발표한다며, 그 증거로 삼성전자 갤럭시S10 출시 즈음인 지난 2월 28일과 3월 6일 사이에 적발된 판매점들의 명단을 IT동아에 보여주었다. 해당 문서에는 30여개의 판매점명, 소속 대리점명, 장소 등이 적혀 있었다.

<2월 28일부터 3월 6일 사이에 불법 보조금 관련으로 단속된 판매점들의 명단, 출처: IT동아>

"서비스 경쟁? 저렴한 가격이 최고의 서비스인데?"

문제는 이동통신 시장이 심각한 포화상태라는 점이다. 이미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쓸 만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며, 신형 제품에 대한 구매 욕구도 그리 높지 않은 상태다. 휴대전화 판매 건당 마진율이 극히 낮은 수준이다 보니 판매자들은 이동통신사에서 지급하는 판매 장려금에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를 받기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휴대전화를 반드시 판매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현장의 판매점들이 판매량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사실상 불법 보조금 지급밖에 없다는 것이다.

꼭 불법 보조금 지급이 아니더라도 다른 서비스 강화로 판매량을 늘릴 수도 있지 않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서 제보자는 “다른 서비스의 강화로 판매량을 높이라는 이야기 자체에 어폐가 있다. 고객들이 가장 원하는 서비스는 저렴한 가격이다. 매장 인테리어 꾸미고 점원 늘린다고 고객들이 더 많이 사 줄 것 같은가?” 그런 방법으로만 판매량을 늘리라고 한다면 일부 대형 판매점 몇 곳 남기고 우리 같은 영세 판매점들은 다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라고 항변했다.


"단통법 시행 후에도 고객 기만행위 여전"

한편 과거 단통법 등장 이전, 상당수 이동전화 판매자들이 주로 고연령층 고객들을 대상으로 과도한 할부원금(실제 판매가)을 설정하거나 필요 이상의 부가 서비스를 가입하게 하고, 적정 기간 이상으로 긴 할부 기간을 지정하는 등의 소비자 기만행위를 한 사례가 많았다.

단통법은 이런 잘못된 판매행태를 바로잡는 순기능도 있지 않느냐는 지적과 관련해서 제보자는 “과거 일부 판매자들이 그런 식으로 소비자들을 기만하던 것을 인정하며, 당연히 바로잡아야 할 일” 이라면서도 "예전에 그런 식으로 소비자들을 속이던 판매자들은 방법만 좀 바뀌었을 뿐, 단통법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기만행위를 하며 영업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를 테면 선택약정을 통한 월 요금 25% 할인액까지 계산해서 기기 값을 깎아주는 것처럼 속여 필요 이상의 고가 단말기를 팔거나, 인터넷 TV 결합이나 특정 신용카드를 통한 요금 할인 등을 적용하면서 마치 자기 매장에서만 특별히 제공하는 혜택인양 강조하고, 고객이 원하지 않는 다른 서비스까지 가입하게 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라며 "단통법으로 소비자 기만행위를 막을 수 없고, 이를 통해 이득을 보는 건 이동통신사들 뿐"이라고 강조했다.


방통위와 이통사 "문제없다"

이러한 주장과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와 이동통신사는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단말기유통조사단의 임서우 사무관은 IT동아와의 통화에서 "아주 일부 판매점에서 지급되고 있는 불법 보조금이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어 이를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통화에서 “최근 5G 서비스 출시에 즈음해 관련해 불법 보조금 관련 보도가 있어 이동통신 3사의 임원을 불러 행정지도를 했다”고 밝혔다.

KT 언론홍보팀의 함영진 차장은 “판매 독려를 위해 판매 현장에 장려금을 지급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는 시장경제 하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라며, “판매점에서 장려금을 이용해 어떤 방법으로 판매 촉진활동을 하건 이는 자유다. 하지만 불법 보조금 적발 건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불이익을 주고 있으므로 우리가 불법 보조금을 조장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정 판매망 지목해 집중 단속 요청하기도

한편, 방송통신위원회측이 특정 판매망을 지목해 집중 단속하도록 이동통신사에게 요청한다는 정황도 포착되었다. 그 대상은 네이버 폐쇄형밴드 외에 온라인 쇼핑 커뮤니티인 ‘빠삭’ 등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단말기유통조사단의 P모 사무관이 단톡방 및 텔레그램 등을 이용, 이러한 특정 판매망에서 일어나는 불법 보조금 지급에 대한 증거 수집 강화를 이동통신사측에 요청했다고 제보자는 주장했다.

<특정 판매망을 지목, 불법 보조금 집중 단속을 예고하는 이동통신사의 공문, 출처: IT동아>

이와 관련해 빠삭의 김병수 대표는 IT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상호 신뢰 속에 최저가 쇼핑이 원활하게 이루지도록 돕는 플랫폼을 제공할 뿐, 불법 거래를 조장하거나 권장하지 않는다"면서도, "판매자들이 각자의 이윤을 줄이면서까지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판매조건을 제시하며 경쟁하는 행위가 유독 이동통신 시장에서만 불법으로 취급된다면 법 자체에 모순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 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한편, 지난 2014년에 시행된 단통법의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휴대전화 구매와 관련한 보조금 규모를 공개하고 모든 소비자가 공평한 가격으로 쇼핑을 할 수 있게 되어 시장의 건전성이 높아졌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시장경제 하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쟁을 억압하고 이동통신사 간의 암묵적 담합을 용이하게 만들어 소비자 주권을 침해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동아닷컴 IT전문 김영우 기자 peng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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