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전자파흡수율, 국제 권고치 10% 이하”

동아일보

입력 2019-03-23 03:00 수정 2019-03-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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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파 유해론… 무선 전자기기 정말 괜찮나

18일 영국의 데일리메일 등 외신과 일부 국내 언론에서 “전 세계 과학자 247명이 무선 이어폰, 특히 애플의 ‘에어팟’에서 발생하는 비이온화 전자기장(EMF)이 암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에 호소문을 제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사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 널리 공유되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오보였다. 해당 기사의 원문이 된 외신 기사들이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됐다는 지적이 나왔고 제출된 호소문도 4년 전 것으로 확인됐다. 특정 제품이나 제조사 역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기사를 보도한 언론사는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며 오보를 사과했다.

무선 이어폰 전자파 논란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무선 전자기기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을 알게 해 줬다. 실제로 무선 전자기기 사용이 늘면서 전자파 노출이 더 많아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미 WHO가 30년 동안 전 세계에서 이뤄진 2만5000건 이상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불안한 맘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선 전자기기 전자파, 정말 괜찮은 걸까.


○ WHO “전자파 유해론 근거 없어”

전자파 유해론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잡지 ‘뉴요커’에 석면 등 환경과 건강, 역학에 대한 기사를 자주 쓰던 폴 브로더 기자는 1976년 ‘마이크로파’라는 시리즈 기사를 썼다. 당시 아직 낯설고 새로운 존재였던 전자파를 자신의 주특기인 건강 위험과 연결 지은 기사다. 그는 “미국인들은 위험한 수준의 마이크로파에 노출돼 있고, 배후에는 국방부와 전자업체의 음모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로 미국에서 전자파 유해론이 큰 힘을 받기 시작했다. 브로더 기자는 1977년 관련된 책을 내고 1989년에도 극저주파 전자파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기사를 쓰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기사의 내용은 기우로 밝혀졌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전자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 쓴 엉터리 기사”라며 “브로더 기자가 일으킨 전자파 논란은 세계적으로 유행을 했고, 1990년대에 바다 건너 한국에도 와 지금까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브로더 기자가 기사를 쓸 때엔 전자파의 영향을 검증할 충분한 연구 결과가 쌓이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로서 ‘사전 예방’ 차원에서 누군가 제기해 볼 수 있는 문제였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WHO는 여러 해에 걸쳐 방대한 양을 연구했고, “낮은 수준의 전자파가 생물학적 영향을 유발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화학물질보다 증거가 탄탄히 쌓여 있다”며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확신이 강하다.


○ “무선이어폰 전자파 휴대전화보다 낮아”

전자파는 자연에 없는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태양이나 지구의 자기장 등 자연에서도 발생한다. 부엌의 가스레인지 등 일상에서도 흔하게 나온다. 휴대전화, 기지국, 가전제품, 전선에서만 나오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항상 접하는 빛(가시광선)과 라디오 전파, 병원에서 찍는 X선은 다 전자파의 다른 모습이다. 전자파의 정확한 명칭은 ‘전자기파’인데, 빛을 이루는 알갱이(광자)가 마치 파도가 치듯 주기를 갖고 빛의 속도로 뻗어 나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빛 알갱이의 파도가 잘게, 자주 치면(파장이 짧으면) 자외선이나 X선이 된다. 이들은 물질의 화학 결합을 끊는 힘을 지닌 ‘이온화방사선’으로 건강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강한 햇빛 속 자외선에 피부가 타는 것도 이런 영향의 일부다. 반대로 파도가 크게, 가끔 치면(파장이 길면) 적외선이나 마이크로파, 라디오파가 된다. 이들은 화학 결합을 끊는 힘이 없다. 무선 이어폰이나 휴대전화 등 무선 전자기기에 쓰이는 전자기파는 다 마이크로파에 속한다. 무선 이어폰도 마찬가지다.

WHO가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밝힌 전자파는 바로 무선 전자기기에 사용되는 마이크로파다. 이 교수는 “통신용 마이크로파가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는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문제가 없다고 확실히 검증됐다”며 “이미 우리 주변에 수많은 통신용 마이크로파가 지나다니고 있는 만큼 추가로 무선 이어폰을 가까이 가져간다고 해서 추가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전파 분야 국내 유일의 국가연구기관인 국립전파연구원도 “시중에 유통되는 무선 이어폰의 전자파는 휴대전화보다 낮은 수준으로 안심하고 사용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전파연구원은 휴대전화, 무선 헤드셋, 스마트워치, 디지털카메라와 같이 인체에 근접해서 사용하는 휴대용 송신 무선설비의 전자파흡수율을 측정하고 관리한다. 전자파흡수율은 인체에 흡수되는 전자파 양을 측정한 값이다. 체중 1kg에 흡수되는 전자파 에너지 양(W·와트)으로 나타낸다. 에너지 양을 기준으로 하는 이유는 전자파가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이 결국 ‘열’이기 때문이다. 만약 전자파흡수율이 kg당 1W라면 인체는 kg당 1W의 전자파를 흡수한다. 체중 60kg의 사람이면 60W를 흡수한다는 뜻이다.

전자파흡수율의 국제 권고 기준은 kg당 2W이다. 2W는 꼬마전구 1, 2개를 1초 동안 켜는 에너지다. 한국은 이보다 엄격한 기준인 kg당 1.6W를 기준치로 정하고 있어 이 수치를 넘어서는 기기는 시중에 유통될 수 없다. 전파연구원은 “휴대전화의 전자파흡수율 최대 허용값은 kg당 0.2∼1.0W 정도이며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때에는 이 수치가 더 떨어진다”고 밝혔다. 무선 이어폰의 경우 최대 허용값이 kg당 0.2W이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때에는 그 10분의 1 수준인 kg당 0.02W 선으로 더 낮아진다.

김기회 전파환경안전과 연구관은 “무선 이어폰은 인체 가까이에서 사용하는 기기지만, 안테나 출력이 5∼8mW(밀리와트·1mW는 1000분의 1W)로 고시에서 규정하는 기준치 20mW에 미치지 못한다. 아예 측정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많이 듣는데, 이 음악 데이터는 휴대전화가 전송한다. 이어폰은 수신만 하기 때문에 전자파가 발생하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사용해도 된다”고 밝혔다.

현재 그나마 일각에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분야는 새로 등장한 전자기기를 장기간 이용할 때의 영향이다. 기존 WHO 등의 연구가 롱텀에볼루션(LTE)이 등장하기 전에 이뤄진 연구로, LTE 시대 이후의 휴대전화 전자파에 대해서 장기 연구가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경우도 연구를 통해 건강 영향이 없다는 확실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과학적 검증 과정일 뿐, 실제로 건강 영향을 우려해서는 아니다. 한 예방의학과 교수는 “3세대(3G) 등 기존 전자파와 마찬가지로 LTE 역시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없을 것으로 전망하지만 사전 예방을 위해 과학적 연구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재원 jawon1212@donga.com·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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