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우선, 순혈주의 내려놓은 인텔.. 변화의 신호탄될까
동아닷컴
입력 2019-02-01 17:09 수정 2019-02-01 17:17
인텔이 마침내 반 세기 동안 이어온 '자사순혈주의'와 '기술자우선주의'를 포기했다. 31일 인텔은 이사회를 열고 임시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던 로버트 스완을 CEO로 임명했다. 스완 CEO는 지난 7개월 동안 임시 CEO직을 맡았으며 2016년부터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인텔에 근무 중이었다.
로버트 노이스, 고든 무어, 앤디 그로브, 크레이그 배럿 등 스완 CEO 이전의 인텔 CEO들은 인텔에서 20년 이상 근무하고, 기술자 출신인 '인텔맨'들이었다. 인텔의 창업주인 노이스와 무어의 기술자 및 내부 직원 우대 정책이 반영된 결과다. 둘은 유명한 반도체 공학자들이었다. 특히 무어는 '무어의 법칙(반도체의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론)'을 제창해 지난 반 세기 동안 인텔이 반도체 업계의 패권을 쥘 수 있도록 한 인물이다.
이러한 인텔의 기조는 폴 오텔리니에 이르러 살짝 달라지게 된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마케팅 담당자였다. 기술자 우선이란 기조가 쌀짝 물러진 셈. 하지만 오텔리니 역시 1974년부터 인텔에 합류한 인텔 초기 멤버였다. 외부 인재 대신 인텔맨을 CEO로 임명한다는 그대로 이어졌다.
오텔리니의 뒤를 이은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역시 20년 이상 인텔에 근무한 경력과 기술자라는 정통성을 보유한 순혈 인텔맨이었다. 1982년 인텔에 합류한 크러재니치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후 제품 생산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외부영입 인사를 CEO로 임명하는 경우가 잦은 일반 기업들과 달리 내부에서 승진한 기술자 출신 임원을 CEO로 임명하는 것은 반도체 업계에선 상식이나 다름없었다. 원천 기술에 대한 이해와 기술 혁신이 바로 매출 증대로 이어지는 업계 특성 때문이다. 인텔의 경쟁사인 AMD의 리사 수 CEO 역시 기술자 출신으로, 트랜지스터 구조에 큰 혁신을 가져온 연구자였다.
스완 이전 CEO인 크러재니치는 인텔 역사상 최악의 CEO로 꼽힌다. 잘못된 전략 판단으로 인텔의 반도체 신규공정 도입 속도를 늦췄고, 때문에 경쟁사인 AMD가 부활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모바일 관련 대응은 퀄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나마 지속적인 인수 합병으로 통신칩셋, 자율주행차 분야 등에선 선방했다는 평가다. 퇴임 역시 급작스러웠다.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사내 추문으로 은퇴해 인텔이 치열한 반도체 업계에서 표류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크러재니치가 정작 순혈주의와 기술자우선이라는 인텔의 기조에는 딱 맞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스완 CEO는 이제 CFO로서 역할을 내려놓고 CEO로서 일에만 집중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재무관리자 출신 CEO들은 비용 관리를 통한 성과 개선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 인텔에게 필요한 것은 10나노 미만 공정으로 빠른 진입과 차세대 CPU 아키텍처 개발, 자율주행차 핵심 부품 영역에서 패권확보, 5G용 차세대 통신칩셋 개발 등 많은 비용을 필요로하는 R&D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반도체 업계의 리더였던 인텔의 자리를 AMD, 엔비디아, 퀄컴 등 경쟁사가 호시탐탐 넘보고 있다. 반 세기 넘게 이어진 인텔이 100년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스완 CEO에게 주어진 짐이 무겁다.
동아닷컴 IT전문 강일용 기자 zero@donga.com
스완 CEO는 인텔 최초의 외부영입 CEO이며, 동시에 비기술자 출신 CEO다. 스완은 인텔에 합류하기 앞서 GE, 일렉트로닉데이터시스템스, 이베이 등에서 재무관리자와 최고경영자로서 경력을 쌓았다. 인텔에 합류한 시기도 2016년으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렇게 재무관리에 강점이 있는 인물을 CEO로 임명한 것은 일반 기업에겐 매우 흔한 일이지만, 기술을 강조하는 반도체 업계에선 대단히 보기 드문 일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로버트 스완 인텔 CEO(출처=IT동아)
로버트 노이스, 고든 무어, 앤디 그로브, 크레이그 배럿 등 스완 CEO 이전의 인텔 CEO들은 인텔에서 20년 이상 근무하고, 기술자 출신인 '인텔맨'들이었다. 인텔의 창업주인 노이스와 무어의 기술자 및 내부 직원 우대 정책이 반영된 결과다. 둘은 유명한 반도체 공학자들이었다. 특히 무어는 '무어의 법칙(반도체의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론)'을 제창해 지난 반 세기 동안 인텔이 반도체 업계의 패권을 쥘 수 있도록 한 인물이다.
이들의 뒤를 이은 그로브도 둘 못지 않은 반도체 공학자였다. 비록 그로브는 '인텔 인사이드(기업의 PC와 노트북에 인텔 로고를 노출하고 인텔 칩셋을 탑재하는 조건으로 마케팅비를 보조해주는 마케팅 정책)'라는 희대의 마케팅 플랜을 제창해 인텔이 x86 시장 1위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했지만, 그 근간에는 기술우선주의를 강조하는 리더십이 있었다. 그로브의 뒤를 이은 배럿 역시 재료 공학을 전공한 화학자로서 인텔이 반도체를 만들 때 이용하는 실리콘 재질의 혁신을 주도했다.
인텔의 전 CEO들, 왼쪽부터 앤디 그로브, 로버트 노이스, 고든 무어(출처=인텔)
이러한 인텔의 기조는 폴 오텔리니에 이르러 살짝 달라지게 된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마케팅 담당자였다. 기술자 우선이란 기조가 쌀짝 물러진 셈. 하지만 오텔리니 역시 1974년부터 인텔에 합류한 인텔 초기 멤버였다. 외부 인재 대신 인텔맨을 CEO로 임명한다는 그대로 이어졌다.
오텔리니의 뒤를 이은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역시 20년 이상 인텔에 근무한 경력과 기술자라는 정통성을 보유한 순혈 인텔맨이었다. 1982년 인텔에 합류한 크러재니치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후 제품 생산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외부영입 인사를 CEO로 임명하는 경우가 잦은 일반 기업들과 달리 내부에서 승진한 기술자 출신 임원을 CEO로 임명하는 것은 반도체 업계에선 상식이나 다름없었다. 원천 기술에 대한 이해와 기술 혁신이 바로 매출 증대로 이어지는 업계 특성 때문이다. 인텔의 경쟁사인 AMD의 리사 수 CEO 역시 기술자 출신으로, 트랜지스터 구조에 큰 혁신을 가져온 연구자였다.
하지만 이러한 관례를 깨고 인텔은 외부인사, 비기술자 출신인 스완을 CEO로 임명했다. 임시 CEO로 재직하며 우수한 성과를 낸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순혈주의와 기술자우선주의에 대한 '맹신'이 깨진 것도 한 몫 한다는 평가다.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인텔 전 CEO(출처=IT동아)
스완 이전 CEO인 크러재니치는 인텔 역사상 최악의 CEO로 꼽힌다. 잘못된 전략 판단으로 인텔의 반도체 신규공정 도입 속도를 늦췄고, 때문에 경쟁사인 AMD가 부활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모바일 관련 대응은 퀄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나마 지속적인 인수 합병으로 통신칩셋, 자율주행차 분야 등에선 선방했다는 평가다. 퇴임 역시 급작스러웠다.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사내 추문으로 은퇴해 인텔이 치열한 반도체 업계에서 표류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크러재니치가 정작 순혈주의와 기술자우선이라는 인텔의 기조에는 딱 맞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스완 CEO는 이제 CFO로서 역할을 내려놓고 CEO로서 일에만 집중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재무관리자 출신 CEO들은 비용 관리를 통한 성과 개선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 인텔에게 필요한 것은 10나노 미만 공정으로 빠른 진입과 차세대 CPU 아키텍처 개발, 자율주행차 핵심 부품 영역에서 패권확보, 5G용 차세대 통신칩셋 개발 등 많은 비용을 필요로하는 R&D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반도체 업계의 리더였던 인텔의 자리를 AMD, 엔비디아, 퀄컴 등 경쟁사가 호시탐탐 넘보고 있다. 반 세기 넘게 이어진 인텔이 100년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스완 CEO에게 주어진 짐이 무겁다.
동아닷컴 IT전문 강일용 기자 ze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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