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티콘 톡톡]“하트도 뽀뽀도 나 대신 네가 날려줘”
신무경 기자 , 정혜리 인턴기자
입력 2019-01-11 03:00 수정 2019-02-08 14:35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아직도 글로 말하면 당신은 아재.’ 메신저 쓸 때 긴 말보다 이모티콘 하나가 효과적일 때가 있지요. 카카오톡에서 하루 6667만 건의 이모티콘이 오갑니다. 이모티콘을 그리는 전업 작가가 생겼습니다. 크리스마스실을 이모티콘으로 보내기도 하고요. 감정을 뜻하는 ‘이모션’과 기호를 의미하는 ‘아이콘’의 합성어, ‘감정의 대변인’이 된 이모티콘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지갑 기꺼이 열어요
“소개팅 예정인 분과 메신저로 처음 대화를 나누는데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더라고요. 망설이다 인기 웹툰 대학일기 작가가 그린 이모티콘을 보냈어요. 마침 상대방도 똑같은 이모티콘을 갖고 있더라고요. 이모티콘 이야기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답니다. 결과적으로 소개팅이 잘되지는 않았지만요.” ―김모 씨(20·대학생)
“이모티콘은 문장보다 풍부한 감정 표현이 가능하고, 어색함을 없애주면서도 친밀감을 높여주는 장점이 있어요. 무엇보다 얼굴을 맞대고 직접 커뮤니케이션(대화)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현대인의 성향에 잘 부합하는 것 같아요.” ―송으뜸 씨(리서치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과장)
“처음에는 이모티콘이 뭐라고 2000원이나 주고 사나 싶었어요. 하루는 딸이 이모티콘을 선물해줬는데 귀엽더라고요. 토끼가 하트를 날리고, 뽀뽀를 하고…. 이모티콘을 쓰다 보니 딸과 교감하게 됐고, 젊어진 느낌도 들었어요. 지인들과 주고받는 이모티콘을 보며 키득거리기도 해요. 소소한 ‘힐링’이죠.” ―박경숙 씨(53·가정주부)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이모티콘을 사는 ‘프로 구매러’예요. 무료 이모티콘을 주는 이벤트는 무조건 참여하고요. 많이 사다 보니 이모티콘 구매에도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유행어가 적힌 건 나중에 유치해서 못 쓰게 되니 피하세요. 글보다는 그림이 많은 이모티콘을 사면 더 오래 쓸 수 있답니다.” ―조민경 씨(24·대학생)
“카카오톡에서 월 2700만 명이 이모티콘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발신되는 이모티콘 메시지 수만 한 달에 무려 20억 건에 이릅니다. 온라인 이모티콘 스토어(상점)에 등록된 누적 상품만 5500개가 넘어요. 이모티콘을 구경하려 스토어를 클릭한 수만 260억 건에 달해요. 이제는 이모티콘 구매가 콘텐츠 소비 습관이자 문화로 자리매김한 것이죠.” ―류현정 씨(카카오 커뮤니케이션실 매니저)
이모티콘의 효시는?
“이모티콘 트렌드 중 하나는 ‘B급 감성’이에요. 재밌고 공감 가기 때문 아닐까요? 제가 그린 ‘갹갹티콘’ 이용자들은 ‘이거 내 얘기 아냐?’ ‘너 아냐?’라는 말을 많이 해요. 귀엽고 예쁜 이모티콘은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고 싶어서 쓴다면, B급 감성 이모티콘은 진짜 나 같아서 쓴다고 생각해요. 이모티콘이 채팅창에서 나를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인 만큼 점점 더 재미있고 개성 있는 것을 찾는 거죠.” ―송영은 씨(필명 갹갹·이모티콘 작가)
“중국에 있으면서 최근까지 ‘위챗’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았어요. 한국에서 ‘삼둥이’로 유명한 민국이(송민국)가 인기여서 친구들이 ‘민국이 이모티콘’을 많이 쓰더라고요. 중국에서 민국이라니…. 이모티콘에는 국경 없나 봐요.” ―권모 씨(20대·대학생)
새로운 일자리 창출
“이모티콘 제작을 배우고 싶어 하는 수요가 많아 ‘이모티콘 디자인’이라는 강좌를 개설했습니다. 최근 연 강좌에서는 20, 30대 여성들의 참여율이 높아서 고무적이었습니다. 수강생들이 강좌를 듣고 제작한 이모티콘이 라인, 카카오 등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걸 보면 뿌듯합니다.” ―배경찬 씨(인천콘텐츠코리아랩 교육운영사무국·㈜웨이드 팀장)
“수년간 게임 그래픽 디자인을 하다 쉬고 있을 때 한 지인이 이모티콘을 만들어 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러다 미술학원 강사를 시작했는데 일하던 중에 문득 지인의 말이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제가 피부가 하얗고 살이 많아 학원에서 별명이 ‘말랑쌤’이었어요. 이를 계기로 ‘말랑 토끼’라는 이모티콘을 만들었고, 라인에 출시하며 이모티콘 작가로 데뷔하게 됐어요. 제가 예전에 한 말도 있고 해서 몰래 출시했는데 웬걸. 당시 이모티콘 인기 순위 2위인 거예요! 그때 기분은 말로 다 표현 못하죠.” ―유준석 씨(필명 Uju·일러스트레이터 겸 입시미술학원 강사)
“이모티콘 제작은 기획부터 플랫폼 등록까지 복잡하고 긴 단계를 거치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해요. 일반 이모티콘을 제작하는 데만 2주, 움직이는 이모티콘을 만드는 데만 한 달 등 꼬박 두 달 넘게 걸리는 셈이죠. 그렇게 ‘민두’라는 이모티콘이 탄생했어요. 현재 네이버 라인 등 다양한 곳에서 판매 중이고 카카오 입점도 준비 중입니다.” ―최혜영 씨(필명 화유·캐릭터 디자이너)
기부도 가능합니다
“‘크리스마스실을 스마트폰으로 주고받을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 이모티콘으로 만들어봤어요. 이벤트성이었음에도 전량 소진시켜 성공적인 마무리를 할 수 있었죠. 이모티콘은 결핵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경각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대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이모티콘을 활용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대한결핵협회 관계자
“공기업을 비롯해 예전에는 없었던 다양한 업체들에서 이모티콘 제작 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기관의 정책 등을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이모티콘을 활용하는 것이죠. 행정안전부, 경기 하남시청 등의 요청으로 제작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모티콘 제작사 코핀커뮤니케이션즈 유영학 대표
신무경 기자 yes@donga.com·정혜리 인턴기자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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