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방목’ 호주서 실적 쑥쑥… 한국오니 바로 족쇄

김성모 기자

입력 2018-11-26 03:00 수정 2018-11-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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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금융 강한 경제 만든다]2부 눈앞만 보는 ‘우물안 금융’
<4>해외 나가 빛 본 코리아 핀테크
해외송금 업체 ‘와이어바알리’, 통신료 충전 서비스 ‘밸런스히어로’


세계 각국의 핀테크 시장에서는 혁신 아이디어로 무장한 ‘유니콘’(기업 가치 1조 원 이상 벤처기업)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와 달리 국내 핀테크 기업들은 유니콘이 될 잠재력을 갖고도 척박한 규제 환경에 묶여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신산업 분야 700여 개 기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설문 결과 47.5%가 “지난 1년 새 규제 때문에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핀테크 기업의 사업 차질 경험률이 70.5%로 가장 높았다. 또 핀테크(56.8%)는 국내 대표적 신산업 중 두 번째로 글로벌 경쟁력이 낮은 분야로 꼽혔다.

하지만 한국의 높은 규제 울타리를 벗어나 나라 밖에서 유니콘이 될 날개를 펴는 국내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호주에서 성공해 한국에 역(逆)진출한 ‘와이어바알리’와 인도에서 4년 새 고객 6000만 명을 끌어 모은 ‘밸런스히어로’가 대표적이다. 이들을 통해 한국의 핀테크 신산업을 육성할 과제를 들여다본다.
 
호주에서 첫 사업을 시작한 해외송금 서비스 업체 ‘와이어바알리’의 직원들이 호주 현지에서 서비스를 홍보하고 있다. 호주에서의 사업 성공에 힘입어 이 기업은 2년 전 한국시장에 역진출했다. 와이어바알리 제공
6년 전 연세대 경영학과 86학번 동기 3명이 뭉쳤다. 호주 현지에서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한 해외송금 서비스업체 ‘와이어바알리’를 설립한 것이다. 50대 늦깎이에, 국내도 아닌 외국에서의 창업이었지만 세 친구는 자신감이 넘쳤다. 삼성전자 해외본부 출신인 유중원 대표, 인터넷 커뮤니티의 원조로 불리는 프리챌 창업 멤버인 윤태중 부사장, 공인회계사 출신인 김원재 이사회의장의 풍부한 경험이 든든한 배경이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법 외에는 새로운 서비스를 모두 허용하는 호주의 ‘네거티브 규제’가 사업을 확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와이어바알리는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온 아시아 각국의 청년과 외국인 근로자를 타깃으로 해외송금 서비스를 선보였다. 베트남 필리핀 네팔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각국의 대형 금융사와 제휴하고 경쟁사보다 수수료를 최대 70% 낮췄다. 이를 기반으로 와이어바알리는 월평균 100억 원 이상의 송금 거래를 취급할 정도로 성장했다.

해외사업의 성공에 힘입어 세 친구는 2016년 한국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한국에서 영업 중인 해외송금 업체들보다 수수료를 낮출 수 있고, 와이어바알리의 ‘송금 허브’로 설립한 홍콩법인을 통해 환전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호주에서 빛을 발하던 이들의 사업은 오히려 한국에서 큰 부침을 겪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각종 규제의 족쇄가 사업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와이어바알리는 호주, 홍콩, 뉴질랜드 등 각국 법인의 사업 정보와 고객 정보를 하나의 서버(클라우드 서비스)로 관리해왔다. 하지만 한국 금융당국은 규정상 이 정보들을 한 서버에 둘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와이어바알리는 연간 1억 원의 비용을 들여 서버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2016년 한국법인을 설립하고도 실제 서비스를 시작하기까지 1년가량이 걸렸다. 국내에 마땅한 규정이 없어 해외송금 사업자가 고객 정보를 보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기획재정부가 금융실명법에 해외송금업을 추가해준 뒤에야 고객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금융실명법 개정이 발목을 잡았다. 와이어바알리가 벤처캐피털사로부터 40억 원을 투자받았지만 중소기업벤처부가 이를 불허한 것이다. ‘금융실명법에 따라 와이어바알리가 금융회사로 분류돼 벤처특별법에 따라 투자를 받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유중원 대표는 “결국 자회사를 만들어 우회적으로 투자금을 썼다. 스타트업은 속도와 효율이 생명인데 한국은 답답한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들어서야 이 규제 조항을 없앴다.

유 대표는 “한국 정부는 핀테크를 ‘혁신의 시각’이 아닌 ‘위험의 시각’으로 접근한다. 스타트업에 비협조적인 대형 금융사도 걸림돌이 돼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금만 관점을 바꾸면 핀테크 혁신 서비스들이 금융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해외투자도 늘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인도 국민앱’ 도전… 6000만명 마음 훔친 한국 IT ▼

한 인도인이 한국 핀테크 업체 ‘밸런스히어로’가 선보인 애플리케이션 ‘트루밸런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 앱 사용자는 최근 6000만 명을 돌파했다. 밸런스히어로 제공
“이제 고작 6000만 명이 쓰는 정도입니다. 진짜 ‘국민 애플리케이션’(앱)이 되려면 사업을 더 넓혀야죠.”

설립한 지 4년밖에 안 된 국내 신생 핀테크 기업이 한국도 아닌 인도 시장에서 최근 앱 사용자 6000만 명을 돌파했다. 국내 스타트업이 꿈도 꾸지 못할 놀라운 성과다. 인도의 ‘국민 앱’으로 통하는 ‘트루밸런스’를 선보인 핀테크 기업 밸런스히어로의 이철원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2015년 1월 인도 시장에 출시된 트루밸런스는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고도 통신 및 데이터료 잔액을 확인하고 충전할 수 있는 앱이다. 인도 국민 12억 명 중 95% 이상이 선불제 통신요금을 사용하고 있으며, 수시로 잔액을 확인하고 충전한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대표는 “2002년 국내 통신사의 자회사에서 일하면서 인도에 첫발을 들인 뒤 인도 통신시장에 눈을 떴다”며 “인도인도 잘 모르는 인도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철저하게 현지화에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인도에서는 2개 이상의 유심칩을 쓰는 사람이 많은데 트루밸런스에선 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또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마케팅을 할 때 인도 공용어인 힌두어 대신에 각 지역에서 쓰는 지방언어로 공략했다. 이 대표는 “인도 현지 사업가도 중산층 이상을 주로 상대하다 보니 ‘12억 인도 시장’ 전체를 꿰뚫는 경우가 많지 않다. 밸런스히어로는 이런 한계를 탈피했다”고 말했다.

트루밸런스의 사업성을 인정받아 밸런스히어로는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총 500억 원의 투자를 이끌어 냈다. 올 7월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순방 때도 초청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당시 “인도에 진출한 스타트업 중 가장 잘하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인도에 진출할 수 있도록 모범이 돼 달라”고 말했다.

인도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밸런스히어로의 본사는 한국에 있다. 또 전체 직원의 절반가량이 한국인이다. 이 대표는 “국내에 정보기술(IT) 등에 뛰어난 인재가 많기 때문에 주요 서비스 개발이나 기획, 디자인 등은 한국에서 맡고 있다”며 “사업이 확대되면 한국 인력을 더 많이 뽑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밸런스히어로는 트루밸런스에 이어 소액대출, 보험 서비스 등 새로운 금융 플랫폼 분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동남아시아로 사업을 넓힐 준비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IT 강국의 인프라를 잘 활용하면 한국도 영국, 싱가포르처럼 핀테크의 거점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좋은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을 두고도 각종 금융규제에 막혀 핀테크 산업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핀테크 기업은 글로벌 시장을 보고 사업을 시작한다. 한국도 국내 스타트업의 창업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손봐야 한다. 그래야 양질의 일자리가 늘고 금융산업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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