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소곤소곤 사이버 뒷담화

우경임 논설위원

입력 2018-11-19 03:00 수정 2018-11-19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인터넷 신상털기가 공론화된 것은 2005년 ‘개똥녀’ 사건 때문이었다. 서울 지하철 안에서 반려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린 여성의 사진과 신상이 인터넷에 공개돼 공분을 일으켰고, 비난에 시달리던 그 여성은 다니던 대학까지 그만뒀다. 2년 뒤인 2007년 ‘인터넷세상과 평판의 미래’라는 책을 낸 대니얼 솔로브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이 사건을 첫 장에 다루면서 진실이든, 아니든 인터넷에 유포된 기록은 영구적이므로 ‘디지털 주홍글씨’를 남길 것이라 우려했다.

▷‘내가 다 짊어지고 가겠다. 여기서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어린이집과 교사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 달라.’ 지난달 경기 김포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아동학대범이라며 신상이 공개된 지 이틀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포와 검단 맘카페에 ‘어린이집 소풍에서 보육교사가 원생 1명을 밀쳤다’는 글이 올라왔고, 삽시간에 어린이집과 보육교사 실명이 공개되면서 극도의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어린이집과 보육교사의 실명을 퍼뜨린 6명이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을 위반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처음 올린 게시자, 이 글을 다른 맘카페에 퍼 나른 게시자, 글을 본 뒤 어린이집에 교사 신상을 문의한 학부모와 답변해 준 어린이집 관계자 등 평범한 이웃들이다. “쉿, 너만 알고 있어.” 가까운 지인끼리 소곤소곤 나누던 귓속말이었는데 인터넷을 타고 확산되면서 비극을 초래했다.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에서 주인공 헤스터 프린은 간통(Adultery)을 뜻하는 ‘A’를 옷에 달고 살면서도 끊임없이 선행을 베풀고,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그를 경멸하던 이웃들과 화해한다. 나를 벌하려던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사는 것은 가혹한 형벌이지만, 그래서 평판의 반전도 가능했다. 반면 보육교사는 익명성이라는 갑옷을 입고 칼을 휘두르는 여론 재판에 항거할 방법이 없었을지 모른다. 서로서로 연결된 인터넷에선 소곤소곤 뒷담화도 멀리 퍼져 나가고, 오래 기록된다. 누구나, 너무 쉽게 타인에게 ‘디지털 주홍글씨’를 찍을 수 있게 된 세상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h@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